[인디언밥 12월 레터] 좋은 소식 (단) 하나

2020. 12. 7. 17:47Letter

 

 

인디언밥 12월 레터 

 

좋은 소식 (단) 하나

 

여러분 저는 지금 호텔 룸에 앉아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있습니다. 로봇이 컵라면과 맥주를 가져다주었어요. 그리고 문워크를 하며 사라졌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진입하고 나서 작업실과 같던 카페가 문을 닫은 이후로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마감일도 지키지 못하고, 마음이 불편해 아이도 잘 돌보지 못했던 저는 작업실을 물색하다가 ‘데이 유즈 호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8시간~12시간 정도 호텔을 사무실처럼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상품입니다. 자택 근무가 힘든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네요. 저도 해보았습니다. 호텔 대실!

얼굴이 열리면 음식을 꺼낼 수 있다. 고맙다고 말해도 대답하지 않는게 사람하고 똑같다. _ 사진출처_필자

 

앞으로 3주간 저는 아이와 함께 서식지에 칩거하게 됩니다.(매일같이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만…) 어린이집이 문을 닫았거든요. 집합금지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필수산업 군이나 경제 부문에 해당하지 않는 부분은 운영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입시 교습과 직업능력 개발 훈련과정은 예외를 두어 9시까지 운영이 가능) 돌봄이 필수산업 군이 아니라면 무엇이 필수산업 군이 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동안 비가시화되어 있었던 돌봄 노동의 경제적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는 저와 제 주변인들만 나눠왔나 봅니다. (그리고 저의 SNS 친구들)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던 주인공에게 썰매의 방울을 건네주는 장면 _영화 <폴라 익스프레스> 중 _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연말이라 크리스마스 영화가 보고 싶었습니다. <폴라 익스프레스>를 선택했는데요, 크리스마스 스피릿을 잘 담고 있는 영화라고 합니다. (뭔.. 스피릿?) 산타클로스의 존재에 의심을 갖기 시작한 어린 주인공이 폴라 익스프레스에 뛰어 올라탔을 때부터 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게 슬펐습니다. 비상식적인 것을 의심한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니까요. 기차 안에서 마스크 없이 둘러앉아 장난을 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생경해서 가슴 아팠습니다. 그리고 마스크를 하면 숨이 모자란지 항상 입을 벌리고 있는 저희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이후로는 영화와 상관없는 생각들 때문에 계속 울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제 상담이 필요한 것 같아요.)

 

14회 여성인권영화제 포스터 _ 여성인권영화제 FIWOM 페이스북 페이지

 

자 이제 마지막 문단입니다. 저의 유쾌하지 못한 레터를 참고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좋은 소식 하나 전해드립니다. 지금 14회 여성인권영화제가 온라인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각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영화제 트레일러는 몇 번을 봐도 너무 좋습니다. 중년으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하는 트레일러 끝에 ‘우린 흔들리지 않지’라는 영화제의 표어를 볼 때마다 평범하게, 요란하지 않게 미래로 가는 우리가 떠오르거든요. 여러분도 그 두 사람의 표정을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4회 여성인권영화제 링크 www.fiwom.org/main/main.html

 

제14회 여성인권영화제 2020.12.1-10

 

www.fiwom.org

 

2020년 12월 7일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채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