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3. 18:27ㆍLetter
인디언밥 2월 레터
와아, 살아야겠다
요즘처럼 생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적인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되뇌였습니다. 빈센트 밀레이의 시 <비가>를 소리 내 읽었고, 예람의 노래 <꿈에 택시를 타>를 들었습니다. 왜였을까요.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서일지도, 그 첫 스케줄이 함께 작업하던 동료의 장례식이었어서 일지도, 그 가운데에서도 일을 해야했어서, 혹은 일을 너무 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은 지원서의 계절 같습니다. 인터뷰에서 만난 한 창작자는 ‘야생의 연극을 해야 하는데 사냥법을 잊어버린 동물이 된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바득바득 각종 지원사업을 썼습니다. 성과가 있기도 했고, 주어진 기회를 제 발로 차버리기도, 무심하게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인디언밥의 차원에서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어요. 올해는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제가 요즘 제일 자주 만나는 작업은 전시도, 공연도 아닌 메일링 서비스입니다. 그 ‘인디-’한 매력 덕분인지, 예술을 후원하는 마음들덕인지 나름의 대안적인 매체로 자리 잡은 같습니다. 문학살롱 초고에서 발행하는 메일링은 ‘순한맛’과 ‘매운맛’으로 나뉘어있어요. 그 이름처럼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의 고군분투가 느껴집니다. 10여 년 전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인연을 맺은 이세인 작가의 메일도 지난달부터 받아보고 있어요. 천만 원 가량의 사기를 당한 중증 우울증 환자로서 글을 보내겠다면서 ‘우리는 모두 울음을 터뜨림으로써 세상에 나온다. 일단 한 번 얻어맞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번 주도 어떻게든 살아가 보자’같은 문장을 보내곤 합니다. 음악가 한희정의 메일링은 안부를 묻는다면서 작업기로 시작해 ‘무대를 잃은 음악가들이 어떻게 서로의 공간을 인지하고 반응하게 될지’같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어쩐지 모든 글이 살아야겠다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오래전 여행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았고.
우울한 얘기는 집어치우고 내일로 갑시다. 2월엔 더 즐거운 일들이 많을 거예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공연도 예매해놨고, 더욱더 바쁘게 지낼 겁니다. 코로나 확진자 수도 줄고 있고요, 새로운 필진을 만날 생각에도 설렙니다. 방금 변방연극제의 일정이 공지되었네요. 차지량 작가의 작품집도 기대하고 있어요. 중고로 36색 마카를 만 원에 샀습니다. 여러 깊이의 회색을 그릴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아아, 살아야겠습니다. 살아남아서 다음 레터에는 조금 더 멀쩡한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저에게 기회를 제발!
2021년 2월 3일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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