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7월 레터] BPM 119 정도로만 무더운 날

 

BPM 119 정도로만 무더운 날

 

여름입니다. 황당하지요. 뭘 했다고 2021년이 반이나 갔대? 하지만 돌이켜보면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름 시즌송을 낸지도 좀 됐으니까 한여름이 될 만했지-생각합니다. 아뿔싸 그건 작년이었다고요? 그럼 도대체 제 지난 시간은 어떻게 지나간 거죠? 선생님 저는 왜 통속의 뇌가 아닌 겁니까? 저에게 제발 행복한 전기신호를 흘려보내주세요!

 

사진1. 유튜브 채널 <발명!쓰레기걸> ‘친구를 통속의 뇌로 만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편지의 도입부가 썩 정신없었지요. 요즘 일상이 이렇습니다. 벌여놓고 방치해뒀던 이들이 자꾸 문 앞에 찾아오는 기분이에요. 젠틀하게 문을 두드리며 “안녕하세요 선생님, 당신의 업보입니다.”하고 서있으면 문을 안 열수가 없잖아요. 하지만 얼른 문을 열어야한다는 생각만 하면서 문 앞에서 괴로워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만 바쁜 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마찬가지로 바빠왔던 동료 예술가분들의 작업을 많이 보러 다녔어요. 자극과 영감이 되어주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엶 페스티벌’의 프로그램이었던 <육일봉의 아마조네스>는 공연을 빙자한 파티 혹은 네트워킹 자리같은 기분이었어요. 윤숭님에게 어떤 이펙터 쓰는지 물어서 비슷한 걸 구입하기도, 공연자로 참여한 친구들을 소개하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첫 대형 음악축제로 주목받은 ‘뷰티풀민트라이프’에도 다녀왔습니다. 꼼짝 못하고 잔디밭에 앉아있어야 했지만 그 공간이 주는 감각은 여전했습니다.

 

‘변방연극제’에서 두 편의 작품을 보았고, ‘산울림 고전극장’에서 한 편을 보았습니다. 지난 해 예술계 내 검열에 대해 얘기할 때 ‘자기 안의 검열’에 대한 얘기를 저는 귀담아 듣지 않았는데, 이홍도X병소사이어티의 <2032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보니 그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우리는 다들 보이지 않는 것에 영향 받으며 그 영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잖아요. 원의 안과 밖의 <재주는 곰이 부리고> 역시 미묘한 유머와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산울림에서 만난 극단 동네풍경의 <동물농장>은 고전적인 연극의 맛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작품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 배우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면 같이 움찔거리기도 했습니다. 

 

사진2. 2021 산울림 고전극장 포스터
사진3. 엶페스티벌 포스터

 

언젠가 그런 비유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군대 훈련소에서 육체적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딱 2주 째 되는 주말에 탄산음료를 처음 먹는데,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그게 그렇게 맛있더라고, 요즈음의 축제들이 꼭 그런 것 같다는 얘기였습니다. 지난 1년 반은 작품을 만나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했지만 여러모로 괴로운 날들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은 매일 전체 노쇼를 맞은 오마카세 셰프처럼 살아왔고, 사회 전반의 포용력이 점점 떨어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은 무가치하게 여겨졌고 작고 여린 이들부터 바깥으로 밀려나곤 했잖아요. 그 가운데 몇 개의 축제가 제게도 꼭 훈련소 2주 째에 만난 콜라 같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위가 매섭습니다. 사람이 죽는 더위라지요. 팬데믹은 다시 전환기를 맞아 역대급으로 높은 거리두기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숨쉬기가 쉽지 않네요. 대충 습도 때문이라고 퉁쳐봅니다. 저도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 같이 좋은 작업을 만들 수 있을까요? 일단 달려봅니다. 여름은 낭만적인 은유로 쉽게 쓰이잖아요. 아, 참고로 저는 사업자가 없어서 6시 이후엔 연습실에 3명 이상 모일 수가 없습니다. 제가 참여하는 두 팀 다 2인조라서 정말 다행이에요. 헬스클럽에서 BPM120 이상의 음악은 틀면 안 된다던데 원체 느린 음악을 만들어서 그것도 다행이네요.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전 실패할 것입니다)

사진4. 디지몬 어드벤쳐 중

 

버텨봅시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이를 열심히 나누다보면 서로의 힘이 될지 모르지요. 저는 그럼 이만 8월에 있을 독립예술집담회와 프린지 공연과 다른 음악 공연과 조감독으로 일하는 가을 축제와 비대면으로 전환된 창작 작업을 준비하러 가보겠습니다. 아이고 더워! 우리 딱 BPM119 정도로만 더워합시다. 그리고 꼭, 건강하세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