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이 ( ) Eye ( ) I ( ) 愛 : 황바롬 개인전 «사이의 아이»

2025. 12. 10. 20:17Review

아이 ( ) Eye ( ) I ( )

황바롬 개인전, «사이의 아이»  전시 리뷰

 

글_조 은

 

  고백하건대, 이 원고의 첫 문단은 필자가 탈고를 앞둔 시점에 가장 마지막으로 작성한 내용이다. 뒤이어 이어지는 글들의 흐름이 한 전시의 비평이라기엔 성글게 짜여 구멍이 숭숭 뚫린 어설픈 목도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원고의 맵시를 지나치게 다듬어가며 쓰고 싶지는 않았다. 돌봄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놓인 조건과 감각을 가능한 한 원고에 함께 담고 싶었다. 그것은 엄마들의, 혹은 돌봄 수행자들의 흩어진 목소리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수시로 침범하는 (심지어는 반복적이기까지 한) 요청과 방해는 그들의 몸과 시간에 생채기를 내고 시공간 사이사이 침범한다. 아직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경험을 가져보진 못했지만, 필자 역시 돌봄의 관계에 얽혀있는 한 사람이기도 하다.

저는 작년에 미수를 맞으신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어요.’

  황바롬은 그날 자신의 개인전에서 가만히 나의 이야길 들어주었다. 며칠 뒤 그는 감사하게도 내게 전시 리뷰를 청했고, 이렇게 그의 첫 개인전에 함께 할 수 있는 지면을 건네받았다. 엄마됨motherhood이라는 복잡다단한 정체성의 한가운데에 놓인 이들에 비하면, 필자가 가지는 노동은 이야기하기 민망한 수준일지도 모르겠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한 노인과 주고받는 돌봄의 교환, 할머니가 나의 엄마가 되고, 내가 할머니의 엄마가 되는 순간들. 어떻든 간에 세대를 걸쳐서까지 얽히고설킨 이 돌봄이라는 지독한 노동은 늘 우리의 일상을 침범한다. 황바롬의 전시 리뷰를 작성하는 동안 가장 가까이에서 방해 공작을 펼친 나의 할머니, 안영자 여사. 나는 이 글의 중간중간에 안영자 여사와 나 사이의 장면들을 괄호 안에 남겨두었다. 황바롬이 전시에서 발화한 사이의 감각에 필자가 답신하는 고백의 일종이다. 돌봄 수행자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대신할 순 없겠지만,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당신들의 이야기를 대신해 본다. 황바롬 작가도 그것을 반길 것이 분명하기에.

« 사이의 아이 » 전시 전경_ 제공 황바롬

  황바롬의 첫 개인전 전시명인 «사이의 아이»는 그가 돌봄에 직접 부딪히고 마주하면서 얻게 된 삶의 태도에 관한 중요한 은유로 읽힌다. [아이](a child). 그리고 나(I[아이]). 서로의 시선이 마주하는 눈(Eye[아이]). 사랑([아이]). 그에게 아이는 단지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상실과 기다림, 욕망과 불안을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는 감정의 형상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입구 벽면에는 동명의 에세이집 사이의 아이가 놓여 있다. 황바롬 개인의 생을 구성하는 여러 장면들 사이에서 라는 존재가 끊임없이 위치를 바꾸어가는 과정이 글 속에서 나타난다. 결혼, 유산,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는 매번 위치를 잃고 다시 쓰인다. 완결된 가 아니라 사이의 나로서의 자의식인 셈이다.

『 사이의 아이 』 에세이집_제공 황바롬

  서울이라는 공간을 향한 집착, 유산의 경험, 몸 안에서 낯선 생명을 품는 일은 라는 주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상실과 동시에 확장으로 작동한다. ‘아이사이, ‘세계사이, ‘편안함불편함사이에서 작가는 그 사이를 메우거나 넘어서기보다 머무르고 견디는 법을 배운다. 그 머묾은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자에게로 스며드는 경험, 즉 고립을 넘어서 연결로 향하는 태도이다. 에세이 말미에 등장하는 모든 생각이 아이로 귀결되는 나를, 모든 아이마다 떠올려본다라는 구절은, 돌봄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나를 지워가지만 그 지워짐 속에서 또 다른 나(I)를 생성함에 대한 깨달음일 것이다. 이때 사이는 부재의 공간이 아니라 감각과 기억이 교차하며 새 생명을 잉태하는 내면의 장으로 발화한다.

(시간이 몇 시냐며 언제 잘 거냐 성을 내는 안영자 여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만 또 할머니에게 짜증을 내버린다. 방 불을 끄겠다고 협박하는 그. 내가 알아서 자겠다는 고성. 한 새벽에 다 큰 성인이 잠에 들지 않았다고 이렇게 큰 목소리를 낼 것이 무언가.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나는 아침까지 제출해야 할 서류의 업무를 보고 있었다. 집중하던 흐름이 끊겼다. 곧 아흔을 넘길 노인의 손녀에 대한 염려와 협박은 꽤나 귀찮고 번거롭다.)

  전시장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벽면을 가로질러 설치된 아이들은 이러한 글쓰기의 정서를 물질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종이 콜라주로 구성된 설치에는 작가가 아이를 돌보던 날들의 일과표, 병원기록, 시간과 단위로 환산된 육아의 현실이 놓여 있다. 숫자로 포착되는 노동과 발췌된 문장으로 남겨진 감정이 서로를 비춘다. 이 작업은 사이의 아이를 써오던 시절 작가를 버티게 한 기록이자 기억이며, 한 개인을 넘어 숱한 돌봄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¹ 누군가를 돌보고 있을 또 다른 자는 작품 사이를 거닐며 자신이 기억하는 아이들을 떠올리고, 타인의 돌봄이 남긴 흔적 속에서 자신의 시간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일을 잠시 미루고 아이의 일을 하는 시간은, 사회적 생산성의 기준에서는 비가시적인 노동이지만, 작가에게는 관계의 윤리와 세계와의 접속을 다시 배우는 시간으로 변주된다. 이때 서로를 연결하려는 태도는 기술이나 제도의 산물이 아닌 반복되는 작은 행동들에서 자란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잠깐의 배려를 건네는 일,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일. 이 모든 소소한 관습은 사이를 친절하게 만드는 방법들이다. 전시에서 관객이 작품 사이를 머물며 다른 사람의 반응을 관찰하거나, 타인의 흔적을 발견하는 경험은 바로 그런 미시적 연결의 훈련장이다. 그렇게 전시는 하나의 초대의 장, 서로의 돌봄이 이어지는 장소로 열리게 된다.

« 사이의 아이 » 아이들_제공 황바롬

(치과를 같이 가주면 좋겠는데틀니가 영 불편하다. 할머니 한의원에 가서 침 좀 맞아야 될 것 같아. 하루 쉴 수 있니? 전시 열어서 지금은 많이 안 바쁘잖아? 바빠? 할머니 파스가 떨어졌다. 은아 날이 추워졌는데 입을 조끼가 없다. 미안해. 너 바쁜데, 은아 미안해서 어쩌니. 주말에 너 하루 빼면 되잖아. 무슨 약속이 그렇게 많아. 이제 할머니는 그냥 헌신짝 신세구나. 할머니, 할머니, 제발 말 좀 그렇게 하지마. 포스트잇에 해야 할 미술관 업무와 할머니 OO 모시고 가기’, ‘ 할머니 OO 사드리기같은 사적인 일들이 뒤섞여 쓰여있다. 상단에는 사이의 아이 리뷰 작성이 남아있다.)

  이러한 사이의 감각은 8.5kg의 사랑이라는 대화기록집 작업에서 한층 더 분명한 비평적 실험으로 전환된다. 황바롬은 아이를 양육하지 않는 미술계 종사자 다섯 명 ² 을 각기 다른 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뒤, 그들에게 8.5kg의 무게에 해당하는 소중한 무언가를 가져오도록 요청한다. 이 수치는 생후 1세인 아이의 체중이지만 여기서 무게는 단순한 계량이 아닌, 추상적인 사랑과 가치를 물질적 단위로 환산하려는 시도이다. 무게는 소중함을 측정 불가능한 영역에서 끌어내 사회적 대화의 장 위에 올려놓는 장치로 기능한다. 작가는 그들이 가져온 물건을 함께 만지고 바라보며, 그것이 품고 있는 기억과 의미, 질문들을 나눈다. 여기서 돌봄은 더 이상 엄마와 아이라는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세계를 조심스레 들여다보고, 그것을 잠시 품어보는 행위 자체가 돌봄의 또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

  이 작업은 돌봄이 특정한 역할의 의무가 아니라, 타자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수용하고 그 무게를 함께 견디려는 태도임을 드러낸다. 황바롬은 여기서 아이를 부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의 몸을 기준점으로 삼아 우리가 무엇을 사랑이라 부르고 어떤 존재를 돌봄의 대상으로 선택하는지를 되묻는다. 따라서 8.5kg의 사랑은 사적인 돌봄의 경험을 사회적 질문으로 전환시키는 비평적 장치이다. 이 질문 속에서 전시는 더 이상 엄마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돌봄을 둘러싼 우리의 감각과 윤리를 재구성하는 하나의 사유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제 8.5kg의 무게는 아이의 무게이자, 각자가 삶 속에서 지켜내고 있는 사랑의 무게로 변주되며 전시는 또 하나의 사이를 생성한다.

« 사이의 아이 » 8.5kg의 사랑(대화기록집)_제공 황바롬

(어째 요즘은 할머니가 굶어 죽던말던. 집안에 신경을 안 쓰냐. 불고기라도 볶아주더니, 냉장고가 텅텅 비었어. 냉장고 좀 열어봐라 먹을게 있나. 요즘은 인터넷으로 시키면 바로 오는걸 그걸 못해서. 맨밥에 물이나 말아 먹어야겠다. 아이고. 이번 주는 근래 들어 가장 바쁜 주였다. 집인데 집에 가고 싶다. 내가 누굴 굶겨 죽일 위인까지 되는 건가. 근데 신경을 못 써드리고 있는건 사실이잖아. 퍼뜩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말들이 떠올라 쿠팡에서 불고기 거리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 이걸 또 언제 볶냐.)

  영국의 미술사학자이자 페미니스트 로지카 파커Rozsika Parker둘로 찢긴 감정: 모성애의 양면성 경험³ 에서 어머니들이 자녀에 대해 갖는 혼란스럽고 상충하는 감정은 불가피하고 정상적이며, 그 양가성을 인지하는 행위 자체가 마음을 재생시킨다고 언급한 바 있다. 황바롬의 작업은 바로 인지의 자리, 즉 돌봄의 양가적 감정이 생명의 활력으로 전환되는 현장을 가시화한다. 작가는 돌봄의 피로와 무력함, 동시에 그 안에서 발견되는 감각적 기쁨을 작업의 형태로 인지하며 우리에게 기꺼이 고백한다. 이러한 인지와 고백은 여성의 몸과 노동을 둘러싼 기존의 서사에 균열을 내며 그 균열의 사이에서 새로운 돌봄의 윤리를 자라나게 한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엄마됨motherhood을 개인적 체험의 기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돌봄의 감각을 사회화하는 시도로 읽힐 수 있게 된다. 

(너 마시라고 물 떠 왔어. 전기포트에 손수 끓인 물을 유리컵에 따라 혹시 데일까 찬물을 섞어가며 내게 가져오는 영자. 허리가 굽어 엉거주춤 위태롭게 컵을 든 모습. 주름진 손이 미세하게 바들바들. 컵을 내려놓고는 본인이 오늘 해야 할 일을 다 끝냈다는 듯이 숨을 크게 내쉬곤 옆에 앉아 물을 마시는 손녀를 가만히 바라봄. 으이그. 내가 너 어릴 때 맨날 업고 다녔는데- 그때 경비아저씨가 다 큰 애를 왜 업고 다니시냐고. 동네 부끄러워서 너 좀 내려놓으려고 하면 아주 울고불고. 문방구 데려가라고 생난리를 아이고. 감사하단 말도 없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마신 물. 할머니 그만 얘기해! 나 일하잖아! 괜히 민망하니 내지르는 호통과 밀려오는 부끄러움.)

  결국 사이의 아이, 완성이나 소유의 형태로 존재하는 아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연결의 감각이 된다. 아이는 누군가의 품 안에만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나와 너,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이며, 그 다리 위에서 우리는 다시 를 발견한다. 이 전시가 은유하는 것은 바로 그 가능성, 삶의 수많은 사이들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아이같은 감각, 그리고 서로를 잇는 행위로서의 존재이다.

« 사이의 아이 » 토끼쉼터_제공 황바롬

  아이는 세계사이에서, ‘상실탄생사이에서, ‘돌봄자기회복사이에서 태어난다. 이때 황바롬이 모색하고자 하는 삶의 의미는 어떠한 완전함이나 확신보다도 사이에 머물며 불완전함과 공존을 선택하는 돌봄의 방식일 것이다. 모성의 양가성, 돌봄의 피로,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감정의 회복, 이 모두가 사이에서 응축된다. 그 응축된 감각은 우리가 결국 누군가의 돌봄 속에서 태어나고, 또 누군가를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어쩌면 괴로울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생명을 함께 목격하며 머무는 법을 배운다. 그 머무름 자체가 전시가 전하고자 하는 윤리이자 감성일 것이다. 

(나는 이 원고가 마무리 되어갈 때, 침대에 누워있는 안영자에게 가 그를 안아주고 돌아왔다. 그때 그도 가만히 나를 안아주었다.)


1) «사이의 아이»(2025.10.11.-10.19., 갤러리 광명) 리플렛에 실린 임나래 독립 큐레이터의 서문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참고하여 작성한 문장이다. (원문: 이 둘은 <사이의 아이>에 실린 글들을 써오던 시절의 그를 버티게 해줬던 기록이자 기억이다. 그래서 이것은 일과를 기록하면서 문장을 수집한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객이 어디에서든 언제든 만나왔고 만날 것인 숱한 아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 전지, 오로민경, 한톨, 김해찬,

3) 원제는 Torn in Two: The Experience of Maternal Ambivalence (Virago, 1995)

 

필자소개

조 은 (수원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황바롬 개인전 《사이의 아이》
 
기 간 | 2025.10.11(토) - 2025.10.19(일) 10:00 - 18:00 
장 소 | 갤러리 광명(경기 광명시 양지로 19 어반브릭스 B동 438호)
기획·작가 | 황바롬
협력 큐레이터 | 임나래
협력 작가 | 김동희, 오로민경
서 문 | 임나래, 이서영
사 진 | 김동희
디자인 | 모어댄뷰(이하경)
대화 참여자 | 전지, 오로민경, 한톨, 김해찬, 민
후원 | 경기도, 경기도미래세대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