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3. 17:16ㆍReview
“송정현 좀 기억해달라고 그카면 좋을 것 같은데...”
송정현<정현 씨는 왜 문화예술도 모르면서, 포항장애인문화예술활동센터를 만들었어요?>리뷰
글_손성연
저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장애정의, 이 단어는 그저 사랑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라고요.
연대, 접근성, 접근 친밀성도 그렇습니다. 모두 사랑을 말하는 다른 방식일 뿐입니다.
저는 해방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그 자체로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매우 깊고 심오한 실천이지요.
...그리고 이런 공간을 창조하는 것도 사랑의 행동입니다.
- <장애정의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미아 밍거스1 -

예술이 도착한 그곳에서부터 다시 출발한다
《정현 씨는 왜 문화예술도 모르면서, 포항장애인문화예술활동센터를 만들었어요?》(이하 왜 문화예술도 모르면서)를 혜화동 1번지 극장에서 경험했다. 관객석에 정현 씨와 성직 씨가 나란히 앉아있다. 의자 밑에는 물티슈와 생수가 있다. 무대는 텅 비어져 있다. 공연이 시작됐다. 성직 씨가 정현 씨의 수동 휠체어를 밀고 나온다. 성직 씨는 무대 바닥에 플랜카드를 펼친다. ‘포항어울림장애인권문화예술활동지원센터 창립총회’ 오늘은 함께 창립총회를 하는 날이다. 정현 씨는 포항에서부터 센터를 짊어지고 왔다. 정현 씨가 설립한 센터를 함께 바라보면서, 예술이 해야 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었다. 정현 씨는 좋은 동료를 만나서 우연히 단편영화에 출연했고 영화제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면서 예술에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정현 씨는 문화예술을 모른다고 고백한다. 정현 씨가 문화예술을 모른다고 말할 때마다 반짝, 반짝 빛이 났다. 그 빛이 극장 밖으로 뻗어 나간다.
제 주위에는 저처럼 무엇인가 하고 싶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들도 그렇고, 욕구는 있지만 방법을 모르거나 함께 할 수 있는 매개체가 없어서. 꿈을 묻어 두고 있는 동료 장애인들도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저를 비롯해 이러한 동료들을 찾아 함께 할 수 있는 문화예술 활동들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2.
대부분 문화예술에 관심이 생기면 전문가를 찾아가 배운다. 정현 씨는 묻힌 꿈을 되찾기 위해 동료 장애인과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센터를 설립했다. 예술은 장애인이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는 ‘매개체’다. 예술을 통해 장애를 재해석함으로써, 숨겨진 언어를 표현하면서 장애 정체성을 발견한다. 장애 정체성은 고정되지 않고 쉼없이 움직인다. 이 움직임은 기존의 비장애인중심주의를 교란한다. 정현 씨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자신을 무대 위에 드러내면서 예술이 하지 않은 일이 무엇인지 말한다. 예술은 사회적 역할을 통해 삶을 복원하는 것이다. 삶의 복원은 장애인이 자신의 삶과 사회적 문제를 연결하고 표현하면서 대안을 모색하고 서로를 돌보면서 이루어진다.

포항장애인문화예술활동센터 방향성3
‘첫째. 각자의 욕구를 담아 도전하고 싶은 분야별로 할 수 있도록 함께 하는 것.’
‘둘째. 장애 예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장애인 예술가들이 일상적으로 협업하고 창작함으로써. 함께 문화영역을 폭넓게 만들고 알려내는 것.’
‘셋째. 이런 활동들을 통해 장애와 비장애란 표현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문화적 공동체가 형성되어서 모두가 빛나는 보석이 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
정현 씨는 센터의 방향성을 통해 문화예술계의 보이지 않았던 장벽4을 드러낸다. 첫째, 장애인이 문화예술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한정적이다. 문화예술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창작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만들어져야 한다. 일단 장애인이 정체성을 탐색할 수 있는 창작 방법론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예술 교육 기관이 없다. 창작 방법론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전문성을 구축해왔다. 장애인이 전문성을 터득하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에서 장애 정체성이 훼손될 위험이 있다. 장애는 통제불가능하며, 통제불가능성은 전문성의 언어 그 자체다.
둘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예술을 매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 최근에 장애 예술이 활성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장애예술과 비장애예술로 구분짓기는 더 선명해졌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상적으로 협업하기 위해서는 접근성을 함께 발명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접근성을 함께 발명하면서, 서로의 역할이 무엇인지, 예술을 통해 무엇을 해야 되는지 찾아나갈 수 있다.
예술은 빠르게 성장했다. 예술은 빠른 속도로 앞으로 치고 나간다.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존재는 뒤에 남겨졌다. 정현 씨는 예술이 전문성을 향해 달렸던 그 길 위에 있다. 정현 씨는 뒤에 남겨진 존재를 만나기 위해 뒤를 향해 굴러간다. 멀고 험한 길이다. 땀이 난다. 머리카락이 다 젖었다5. 검정색으로 가려져 있던 지도가 뜨거워지고 환해진다. 센터에서만큼은 장애인들의 존재, 문화, 신체, 사고로서6예술을 실천할 수 있다. 센터는 이미 미래에 도착했다. 아니, 현재에서 미래를 다른 방법으로 조립하고 있다.

어, 그 힘, 내가 모르는 그 힘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어요
정현 씨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경험했다. 정현 씨는 자신이 출연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것은 알 수 없었지만 정현 씨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느낄 수 있었서 재미있었다. 정현 씨가 사는 집과 센터를 중심으로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일상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센터 제 1차 운영위원회’에서 김영재 운영위원은 “어, 그 힘, 내가 모르는 그 힘이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힘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한 것인지 궁금했다.
아서 프랭크는 당사자가 질병 서사를 탐구하는 과정을 여행에 비유한다. 여행은 경계를 지나간다. 반대편에 다다랐을 때, 그 여행객은 새로운 정체성을 띠게 된다.7이제 새로운 목적지를 갖게 된다. 질병과 장애는 자기 자신이 살아온 삶, 그 삶을 돌아보게 한다. 다큐멘터리가 끝난 후, 정현 씨의 독백이 시작된다. 정현 씨는 10년 이상을 센터에서 활동가로서 운동을 했다. 정현 씨는 자신이 진짜 원해서 활동가가 되었는지 질문한다. 정현 씨는 왜 활동가가 된 것일까. 앨리슨 웡은 인터뷰에서 활동가가 되는 맨 처음 순간을 기억하는지에 관해 질문을 받는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으로서,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저는 늘 활동가였다고 생각해요. 비장애인의 세계에서 그저 살아가고 존재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저는 저를 ‘어쩌다 활동가’라고 말해요”8 정현 씨가 활동가를 했든 하지 않았든 살아간다는 것은 투쟁이자 갈등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과거를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맥락들은 저의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삶에서 제가 진짜 원하는 것을 해 보거나 찾아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는 느낌도 솔직한 마음입니다.9

정현 씨는 여행의 반대편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새로운 송정현’이다. 리뷰를 쓴다는 핑계로 창작진과 함께 잡담회를 할 수 있었다. 그때 정현 씨는 예술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새로운 송정현’이라고 표현했다. ‘새로운 송정현’은 위험을 무릅쓰고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시도하려고 한다. 정현 씨는 경계를 지나가면서 예술과 나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한다. 정현 씨는 예술이 자신의 사적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인지, 사회적인 활동의 수단인지 고민한다. 정현 씨는 섣불리 확신하지 않고 불확실한 자신의 마음을 따라간다. ‘새로운 송정현’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내 모습”이다. 이러한 자아는 새로 발견된 것이 아니라 정현 씨 자신의 기억에 새롭게 연결된 것이다. 과거는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되고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10 “지금에 저는 많이 포장지도 덮어 써져 있는 모습이고 제 본모습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적어도 아는 것도 해본 거밖에는 아는게 없고 하니깐11” 정현 씨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많다. 정현 씨는 ‘포장지’를 벗고 새로운 송정현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성직 | 토크 콘서트 하잖아요. 토크 콘서트에서 정현 씨가 가장 하고 싶은 말. 아까 정현 씨는 문화예술을 말, 자기표현이라고 했는데 저희가 하는 것도 토크 콘서트니깐 하고 싶은 말이...
정현 | 토크 콘서트 끝날 때... 미래 예술인이라고 소개하고 끝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지금도 예술인인지 모르겠어서... 송정현 좀 기억해달라면 그카면 좋을 것 같은데...12

《왜 문화예술도 모르면서》가 끝났다. 무대 위에서 관객과 창작진이 모여 앉아 소감을 나누었다. 극단<무적의 무지개> 대표 진준엽은 소감을 얘기하고 나서 정현 씨를 연극에 캐스팅했다. 정현 씨의 예언이 적중했다. 관객은 각자 정현 씨를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제 정현 씨는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필자 소개
손성연 _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작가
<미친존재감 프로젝트>에서 미친 존재13와 함께 연극을 하고 있습니다. ‘나’와 ‘미쳤다’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알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공연 소개
<정현 씨는 왜 문화예술도 모르면서, 포항장애인문화예술활동센터를 만들었어요?>![]() 일시: 2026.04.18 20:00 장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출연: 송정현 영상: 김운영 프로듀서: 이성직 드라마터그: 신재욱 그래픽 디자인: 김은정 주최/주관: 송정현 후원: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
- 앨리슨 웡,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 – 장애인 신탁 예언자가 전하는 지구 행성 이야기, 김승진 옮김 (오월의 봄, 2024), 202쪽. [본문으로]
- 송정현, 정현 씨는 왜 문화예술도 모르면서, 포항장애인문화예술활동센터를 만들었어요? 대본 [본문으로]
- 송정현, 정현 씨는 왜 문화예술도 모르면서, 포항장애인문화예술활동센터를 만들었어요? 대본 [본문으로]
- 보이지 않는 장벽이란,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장벽이다. 비물질적인 장벽은 물질적인 경계로 변형되면서 장애인의 삶을 저해한다. 장애인에 관한 ‘부정적인 낙인, 편견, 차별’을 부추긴다. 장애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되도록 표현하지 않거나 숨긴다. 능력중심주의와 비장애인중심주의는 미친존재의 노동, 교육,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사회적 분야에서 활동을 하는 것을 저해한다. 보이지 않는 장벽은 모든 일상적 공간에 있다.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혔을 때 장애인은 스스로 자책하거나 포기하는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생존하게 된다. [본문으로]
- 정현 씨는 있는 힘껏 자신을 소개했다. 성직 씨는 물티슈로 땀을 닦아주고 물을 챙겨줬다. [본문으로]
- 앨리슨 웡,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 – 장애인 신탁 예언자가 전하는 지구 행성 이야기, 김승진 옮김 (오월의 봄, 2024), 320쪽. [본문으로]
- 아서 프랭크, 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최은경 옮김, (갈무리, 1994) 43쪽 [본문으로]
- 앨리슨 웡,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 – 장애인 신탁 예언자가 전하는 지구 행성 이야기, 김승진 옮김 (오월의 봄, 2024), 304쪽. [본문으로]
- 송정현, 정현 씨는 왜 문화예술도 모르면서, 포항장애인문화예술활동센터를 만들었어요? 대본 [본문으로]
- 아서 프랭크, 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최은경 옮김, (갈무리, 1994) 251쪽 [본문으로]
- 잡담회 중 정현 발언 발췌 [본문으로]
- 다큐멘터리 중 정현-성직 대화 발췌 [본문으로]
- 누구는 정신장애인이라고 부르고 누구는 정신질환자라고 부른다. 미쳤다는 것은 장애와 질병 그 사이를 넘나든다. 미친존재란, 무작정 미쳤다는 것을 믿는다. 미쳤다는 것이 나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찾아나가는 존재를 뜻하는 호칭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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