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essay in 서교예술실험센터

2009. 6. 24. 11:25Feature


First essay in 서교예술실험센터

-서교예술실험센터의 개관에 즈음한 쓴소리와 단소리 

| 유용석(연출가, 예술창작집단 디렉팅스튜디오 대표)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69-8 서교예술실험센터 2층 디렉팅스튜디오 작업실.’


    필자의 현 주소이다. 필자의 작업실을 잠시 소개해보자면 바닥에는 노란 장판을 깔았으며, 현관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둘러싼 3면의 벽은 ‘베스트셀러’라는 폐간된 문학잡지로 도배를 했고, 그 중 가운데 벽을 이용해서 희곡, 시나리오, 예술총서, 문학도서, 인문, 사회과학 도서 등으로 이루어진 작은 서재를 꾸며놓았다. 유리로 된 나머지 벽은 여러 가지 계획들을 기록해놓는 등의 ‘칠판’으로 사용하고 있다. 책들을 제외한 살림살이들을 얘기해보자면 ‘대안공간 길’에서 얻어온 오래된 프로젝션TV, 더욱 오래된 오디오데크(테이프만 플레이가 가능하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던 기업 <대우>의 낡은 앰프 두 개, 멤버의 집에서 반강제적으로 강탈(?)하다시피 장만해온 데스크탑 컴퓨터와 침대겸용 소파 등이다. 말이 길었지만 정리하자면, 전형적인 ‘자취방’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렇다. 필자를 포함한 다섯 명의 젊은 연출가들은 서교예술실험센터 2층의 작업실 한켠에 ‘자취하고’ 있다.



소통의 부재, '문'만 열어놓은 오픈스튜디오

 

    2009년 6월19일 오후. 작업실 주변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당시 필자를 포함한 멤버 몇몇은 7월 초에 예정된 프로젝트 기획회의를 하느라 며칠간 밤을 지새우며 바깥나들이를 통 하지 못했던 상태였는데, 작업실 문 밖으로 나와 보니 무언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곳에는 ‘작업하기 편한 복장을 한 작업에 시달린 몰골’의 우리들과 ‘새끈한 복장을 한 행사 준비에 시달린 몰골’의 그들이 있었다.  ‘아주 난리구만.’ 이라고 필자는 생각했던 것 같다. ‘저 사람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행사인가보다.’ 라고도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들은 그들의 행사준비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왜 이 행사준비를 구경하고 있는 걸까?’ 왠지 무언가 이 행사를 ‘정말로 구경하러 올’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엄습하면서, 동시에 답답함보다 훨씬 더 큰 엄청난 무관심의 무게가 필자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행사를 준비하며 바쁘게 돌아다니던 이들 중 한 사람이 스치듯 얘기했다. “오늘 오픈스튜디오 잘 부탁드려요.” 필자는 대답했다. “……아, 그러니까 작업실 문을 열어두란 이야기인거죠?” 왠지 모르게 필자는 시종일관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리라고 굳게 마음먹었던 것 같다.

    하긴 그럴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필자의 머리 속에는 개관행사 전 날, 이른바 ‘M본부’의 ‘문화응응’이라는 프로그램 작가와 진행했던 전화인터뷰가 떠올랐으니까.


    작가: 그러고 보니 개관프로젝트에 입주단체들은 전혀 참여하고 있지 않네요. 좀 의외인데요?


    고백하자면 원래 서교예술실험센터의 개관행사에는 필자가 속한 단체와 또 다른 한 단체의 프로젝트가 계획되어있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취소된 바 있다. 지금 이 글에 프로젝트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일일이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운영사무실 측과 입주단체들간의 소통의 부재’ 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의 부재’에 대한 위기감은 비단 필자가 속한 단체뿐 아니라 입주한 단체들 모두가 느끼고

있었고, 지금도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마침 근시일내로 입주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종의 ‘반상회’를 열기로 한 터라 무언가 개선의 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그 날 입주단체들은 2층에서 ‘단지 사무실 문을 열어놓고’ 꽤나 어색할 수 있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1층에 손님들이 입장‘하시기’ 시작했고, 지하와 옥상에서는 다른 예술가들의 프로젝트들이 준비되고 있었다.


    필자가 속해 있는 공간을 비롯해, 다른 네 예술단체들의 사무실 문이 열렸다. (사실 행사를 준비하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미리 열어놓았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오픈스튜디오가 개시된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작업실을 찾아왔다. 언론사, 홍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타 단체 혹은 개인 예술가들, 공무원들, 공무원 느낌의 사람들, 그리고 극소수의 일반 시민들……

    그 중 한 사람이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이 지역 일대를 기반으로 한 라디오방송국의 PD라 했다. 그 방송국과는 필자가 예전에 조연출로 참여했던 연극작품을 라디오드라마로 기획했던 인연이 있었던지라 개인적으로 반가운 마음에 짧지만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PD: 여기서 어떤 작업을 진행하실 계획이세요?

필자: 이것저것 요모조모 …… (연극, 영화, 잡지, 교육프로그램 주저리주저리)


    […]


필자: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올라오셨어요? (1층에서 한창 오픈행사가 진행중이었으므로)

PD: …… 분위기가 좀 어색하드라구요.

필자: 뭐가요?

PD: 관계자들 외에는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별로 없는 것 같고……

필자: 음, 아무래도 그렇죠? ……



서교예술실험센터,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이쯤 되면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조성 의도와 운영 논리에 대해 한 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사실 아까부터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좀이 쑤셨다.)


    뭐, 개관과 관련해서 또는 공간운영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이외에도 많지만 이쯤에서 접고 다음 기회를 도모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어쨌든 서교예술실험센터에 대해 긍정적으로 기대해볼 부분들도 꽤 있을테니까. 그런 부분들 중에서 이제부터는 입주단체로서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도모하고픈 비전 일부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위에 말한 모든 프로젝트들은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작업실에서 기획되었으며, 서교예술실험센터를 거점으로 하고 있기에 진행할 수 있었던 부분들임을 밝혀두고 싶다.

    필자의 개인적인 입장에선 위에 언급한 프로젝트들은 올해 팀을 창단한 이후에 첫 발을 내딛는다는 의미도 있고, 서교예술실험센터 입주단체의 입장으로도 본격적인 첫 선을 보이는 셈이다. 그렇기에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을 여름을 앞두고 젊은 예술가로서 홍대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다는 기대감, 또한 서교예술센터 입주단체로서의 부담감 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조급해하진 않으리라. 필자도 서교예술실험센터도 이제 시작이기에……



그럼에도불구하고
혹은
따라서 서교예술실험센터는 설렌다.


    여름에 이 곳,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여러분들과 만나게 될 그 아름다운 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아니, 그 전에 언제라도, 또한 누구라도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69-8 서교예술실험센터 2층 디렉팅스튜디오 작업실을 방문해주셨으면 좋겠다. 바닥에 편안히 앉아, 음악을 들으며, 또는 텔레비전을 보며(케이블TV도 나온다. 작업실의 기적이라고나 할까. 물론 돈 내고 신청한 것이지만) 차 한잔 하며 사는 얘기 나누고픈 마음은 언제나 가득하니까.

    

    두서없는 잡설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작품들 외에도 종종 이런 기회에 여러분들과 소통할 기회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유용석 | 예술창작집단 디렉팅스튜디오 대표

본업은 연극연출가이며, 부업으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로의 극단에서 7년가량 활동하다가 올해 들어 새로 집단을 꾸려 홍대 앞으로 거점을 옮겼다. ‘나는 예술가가 될 수 있어서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예술이란 소통을 위한 과정’이라고 굳게 믿는다. 끊임없이 인간 개인에 대해, 집단에 대해, 사회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을 꾀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