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문화연대는 계속된다" <문화연대 10주년 기금마련전> ‘장수의 비결’


"그리고, 문화연대는 계속된다" <문화연대 10주년 기금마련전> ‘장수의 비결’


                                                                                                                                      스카링

나는 청소가 귀찮다. 주말만 되면 진공청소기와 걸레가 반강제로 손에 쥐어진다. 이번엔 ‘쓸 데 없는 옛 물건 버리기’ 추가 미션도 들어왔다. ‘매우, 격하게, 귀차니즘’이다. 그러나 이를 거스른다면 엄마의 ‘잔소리 무한콤보’에 귀는 물론 정신이 떨어져 나갈 터. (이 나이 되도록 엄마를 이긴 적이 없다. 아니, 그럴 생각도 못했다. 엄마는 감히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이것은 진리.) 툭 나온 입을 애써 다물고 청소를 시작했다.

첫 번째 버릴 것은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에 교내 백일장에서 상 탄 엣뭐시기 국어사전. 먼지와 습기를 잔뜩 빨아들인 사전에선 텁텁한 냄새가 났다. 무얼 그리 알고 싶었는지, 단어마다 형광색 동그라미와 줄로 도배를 해놓았을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이었을 리 없다. 기억이 없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사전을 뒤적였다. ‘o'편에서 멈칫, 찾고자 한 단어에도 줄이 그어져 있다. 

연대[連帶] : 여럿이 모여 책임감을 갖고 함께 일을 하는 것.
 

아아, 이런 뜻이었지. 뜻있는 자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로 행동하는 것. 이상적이지만 아직도 낯설다. 26년 째 혼자 놀기의 달인이었으니. 그런 내가 ‘서울프린지네트워크(이하 프린지)’라는 단체에 합류한 것은 특종 그 자체이다. (사실 스탭 모집 즈음에, 새로운 생활이 절실히 필요했었다.) 프린지에 들어오고 나서, 콜트콜텍기타노동자 사건, 용산참사 사건 등 어긋난 사회 이슈와 함께 ‘문화연대’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사회적인 시민단체인 것 같은데, 문화연대라니? 문화는 우리 프린지가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우스운 생짜초보의 첫 반응.

이번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도 문화연대를 만났다. ‘예술로 사회를 말하다.’라는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문화연대는 콜트콜텍기타노동자 이야기를 전시, 공연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했다. 이렇게 문화연대가 주관하는 프로그램을 종종 접하면서 그 뜻에는 같이 개굴개굴 공명은 하였으나, 밤에 글공부 좀 한다는 이 알량한 존심은 문화연대의 활동 방식에 힘주어 박수치지는 않았다. 사회를 위해 예술을 이용하고 있지 않나 싶은 인식이 없잖아 있었던 탓이다.
 

 


나에게 그런 인상이었던 ‘문화연대’가 어느덧 열 살이 되었다고 한다. ‘10년’이란 딱 끊어지는 수치에 사람들은 움직인다. 문화연대의 첫 생일파티는 ‘전시회’였다. 의외였다. 문화연대가 주관하는 콘서트 현장을 곧잘 가봐서인 지 머릿속엔 ‘문화연대 행사=뜻을 같이 하는 뮤지션 많음=콘서트’라고 입력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정적인 파티를 열다니, 음.

 

아무튼 전시회 중인 오후 4시, 문화연대 10주년 기금마련전이 열리고 있는 북촌미술관을 기습했다! 단아한 미술관 입구에 붙은 포스터 제목이 끌린다. ‘장수의 비결’. 문화연대의 장수비결을 알 수 있는 자리구나 싶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안에는 57명 작가들의 100 여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특별한 프로그램, 작가와의 소개팅(정말 프로그램명이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디에도 문화연대의 연혁이라든가 문화연대를 소개하는 것은 없었다. 그나마 프로그램북 앞뒤 페이지 정도뿐이랄까. 얼떨떨해하며 잠시 작품들을 감상했다.

몇 몇 작품에는 빨간 동그라미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판매되었다는 표식이란다. (가난이 이리 슬픈 단어였던가. 나의 가난에 절망했다. 좋아하는 작가들 작품이 눈앞에 있건만.) 문화연대를 위해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내놓은 것이라니, 문화연대는 정말 많은 예술인들과 친한가 보다. 조금 부러웠다.

전시작품을 일부를 소개한다. 조금 덜 가난한 사람들은 작품도 갖고, 후원도 하는 일석이조의 좋을 일을 해보기를. 엣헴. 

 

                

 
김정헌 <거문오름, 2009년, 목판에 유화>          윤석남 <108, 2008-2009년, 나무위에 아크릴>

 

그 날의 '소개팅' 자리에서 만난 이는 박영숙 사진작가다. ‘무척이나 신선도 높은’사람이었다. 할머니의 느낌은 조금도 없는, 젊은이보다 더 젊은 아티스트. (문화연대와 같은 분야에서 많이 활동을 못했다며 송구스러워 했지만 이번 전시회에 멋진 사진 작품을 선뜻 내놓은 걸 봐서는 대인배임이 분명하다.) 몇 안 되는 청강생들이었음에도, 작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과 세계관에 관한 멋진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려주었다. 이 페미니스트 사진작가는 지난 날 ‘페미니즘 또한 하나의 편견일 뿐.’이라 단정 지었던 생각을 와르르 깨트려주었다. 작가가 말하는 ‘여성’은 편견이 아니라 견해이며, 생물학적 단어가 아닌 새로운 사고로의 전환이었다. 

 



그러나 이 황홀경에 마냥 머무를 수는 없는 법. 나의 표적은 문화연대이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결국 물어물어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문화연대의 송수연 씨를 콱 붙잡았다. 이 중 알짜배기만 끄집어 본다면,

 

- Q : 10주년 기념으로 전시회를 준비한 이유는?

   A : 문화연대가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전시회는 그 중 첫 번째로 준비된 프로그램이다. 기금마련을 위해 문화연대와 직∙간접적으로 연을 맺어 온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해보았다.

 

- Q : 어떻게 구매하면 되는가?

  A : 가격은 비공개이다. 그러나 시장에 측정된 가격보다는 무척 저렴하다. 회화 사진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직접 보러 온 후에 구매여부를 결정하시기를 바란다.

 

- Q : 전시회 외의 다른 행사가 마련되어 있는 지?

   A : 우선 이번 전시회는 22일까지 열리며, 23일에는 문화연대를 평가하는 포럼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24일에는 조계사에서 후원의 밤 행사가 있다. 그리고 올 연말에는 문화연대의 활동내용을 담은 책 출간도 예정되어 있다.

 

- Q : 문화연대에게 ‘10주년’은 어떤 의미인가?

   A : 이번 행사는 10주년을 잘 해왔다는 정리라기보다는, 향후 연대활동을 지속하기 위하여 뒤돌아보기 위한 자리이다. 제목인 ‘장수의 비결’처럼, 다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연대를 다져나가는 방법을 모색해보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 Q : 마지막으로 문화연대를 모르는 사람에게, 문화연대를 짧게 홍보해 달라.

   A : 문화연대는 사회적 이슈에 개입하고, 현장에서 실천하는 단체이다. 어려운 시기를 모두 합심하여 문화적으로 지혜롭게 풀어내고자 하는 것이 목표이다.

 

또한 프로그램북에서 좋은 말을 찾았다.

 

[문화연대가 10년을 힘 있게 버텨 온 것은 바로 ‘문화의 힘으로 바꾸는 세상’을 긍정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시민, 예술가, 지식인, 활동가, 노동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회 자체가 곧 문화연대의 장수 비결이었다. ‘문화민주주의’를 통하여 ‘문화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의 결과 중 하나가 이들의 뜻에 동참한 예술인들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문화는 가장 비폭력적이며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다. 전 세계 뮤지션들이 평화를 외치며 콘서트를 여는 것도 같은 이유일까. 문화연대는 사회의 고뇌를 예술 안에 담아 더욱 깊이 있는 모습을 선보인다.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부드럽다. 그러나 결코 강압적이지 않다. 틀어진 것을 바로잡으려는 그들의 의지는 끈끈하게 이어져 있어보였다. 우리 사회의 부당한 것들이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이라는 접착제로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시대의 우직한 친구 같다는 느낌이 마음 안에서 서서히 피어났다.


밖에 나오니 해는 이미 산허리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깨달은 것 하나. 자기밖에 모르던, 예술은 특별하니깐 예술이 최고라고 깐죽거리던 나의 껍데기에 금이 가고 있었다.
프린지를 만나고, 문화연대를 알게 되면서 점점 밝고 강한 사람들과의 연결 고리가 생겨난다. 나는 아직도 조금 부끄럽다. 의미 있는 좋은 ‘연대’들 속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인 지 망설임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연결되고 싶다는 욕구를 이젠 받아들이려 한다. 프린지의 꿈, 문화연대의 꿈인 독립예술 부흥과 문화사회 실현에 대한 나의 짝사랑을 숨기지 않겠다.

 

청소하자. (엄마 반응이 궁금하다.) 내 안의 묵은 이기심과 편견의 먼지를 털어내자. reset이 필요한 때이다. 그래, 집에 돌아가면 책도 제자리에 껴 놓고, 옷도 가지런히 개켜놓고, 이불도 한 번 털어야겠다.

 




'혼자서 꾸는 꿈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 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 Ono Yoko -

(토스 받고)

연대[連帶]
:
나의, 너의, 우리의, 그들의 꿈이 이어져 현실이 되는 것. (스카링 사전)

 

그렇기에 문화연대는 당연히 - 프린지 표현을 빌리자면- 계속 ‘ing'이다!

 

 

글 ㅣ 스카링
       scar★wing 줄임말. 프린지에서 '익살'을 담당하고 있는 신참내기.


 


  1. 좋은 기사 감사드려요 ^^

    지난 10년간 언제나, 특히 문화연대가 힘들고 외로울 때
    든든한 친구가 되어준 프린네트워크의 모든 활동가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2. 아...스카링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이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3. 재미있게 깊이있게 잘 읽었습니다. ^^
    문화민주주의, 문화사회.
    모두가 문화로운 삶을 위해서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