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목요일오후한시 즉흥연극 일기 ⑦ 바람이 분다


* 인디언밥은 극단 ‘목요일오후한시’(이하 목한시)의 즉흥연극 일기를 4~5월 약 2개월 동안 연재합니다. 목한시는 호기심과 즐거움을 원동력으로 하는 집단으로, 플레이백씨어터 공연 및 워크샵, 퍼포먼스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플레이백씨어터Playback Theater는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와 악사가 바로 그 자리에서 연극으로 만들어 보이는 즉흥연극으로, 목한시는 오는 5월 인천 스페이스 빔에서 <매일같이 사춘기>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펼칩니다.(16일부터 31일까지 매주 토·일 저녁6시) 또 올해 10월까지 야외 퍼포먼스·게릴라 공연이 계속됩니다. 인디언밥에서 연재하는 즉흥연극 일기에는 목한시 단원 해진(곱슬)이 보고 겪는 목한시의 일상이 담깁니다.


                                                                                    <매일같이 사춘기> (5.24)  사진 마뇨 


2009년 5월 24일 일요일 흐렸다 맑음 : 발효실에서 발효되는 햇빛


놀라운 것들이 때로는 긴장 속에서 사라진다. 공연이 끝나고 평가회의를 할 때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부끄러움, 혹은 기분 좋은 뿌듯함, 좀처럼 정돈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먼저 떠밀려온다. 그러다가 좀 더 시간이 지나 들떠있던 감정들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나면, 처음 관객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았던 신기함, 놀라움, 공감, 낯설음 등의 통로가 다시 열린다. ‘보았던’이라구? 그렇다. 보는 것 같다. 나 혼자만 보는 것도 아니다. 배우들과 악사가 보고, 맞은편에서는 관객이 본다. 특히 이야기를 꺼낸 텔러는 더욱 똑똑히 볼 것이다. 입을 열어 발음하는 순간 이야기가 흘러나와 다른 공간을 열어놓는다. 그건 특별한 경험이다. 텔러에게도,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어제 토요일 공연에서는 미지의 공간이 여러 번 열렸다. 데미안과 바람을 좋아했었다는 이야기가 그랬고 자주 상상하며 환상을 꿈꾼다는, 그게 참 소중하다는 이야기가 그랬고,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사랑한 이야기가 그랬다. 잠시 포포님이 들려주신 데미안과 바람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태풍이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태풍주의보가 발효되면 사람들은 대피하는데 자신은 일부러 더 나가서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는 것이다. 


  “저는 길거리로 막 나가는 거예요…… 나무가 흔들리고…… 하염없이 거리를 걷다가…… 바람이 막 불면 마음이 위로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그리고 해방감…시원하니까…저는 아까 저 유리창에 ‘나의 사춘기는 찾기다’라고 적었거든요… ‘나는 누구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데미안』이라는 책에 몰두했던 기억도 나구요. ‘데미안’이라는 커피숍도 있었어요…그 때가 사춘기였던가?”

                                                            <매일같이 사춘기> (5.24)  사진 마뇨


목요일오후한시는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 보여드리겠습니다!”

잔잔하게 흐르는 배우의 목소리 위로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겹쳐졌다. 오션드럼과 썬더드럼 소리가 한바탕 폭풍우를 만들었다. 배우들은 이 때 뭔가 더 휘몰아치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대피령이 나고 한참 그렇게 바람이 불다가 서서히 멎었다. 다른 배우가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 “나는 찾고 있어.” 악사 보노보노가 목소리 사이사이에 서정적인 기타소리로 응수한다. 화자 포포가 자신을 찾아 헤매는 사이 “인간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얘기하고 싶으면 데미안으로 와-”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건 공간이 바뀌는, 전환 지점이다. 목요일오후한시는 모두 알아챈다. 커피향을 실은 밤색 천이 커피숍 안의 인물들에게 드리워진다. “저기 있지 않을까?” “성당 꼭대기는 너무 높잖아. 어른이 되려면 멀었잖아.”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누구지?” “저는 지금 폭풍 속을 걸을 시간이 없어요.” 여러 목소리가 공간을 채울수록 악사 또한 상승하는 기운을 더욱 실어 연주한다. 커피숍 바닥에서도 아까 그 태풍이 그치지 않았다는 듯이 파란 천이 잔잔히 흔들린다. 


그랬다. 어릴 적에는 바람과 더욱 가까웠다. 포포님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니 더욱 그 바람이 그리워졌다. 비가 많이 와서 도로에 물이 차올랐을 때 슬리퍼를 신고 철퍼덕철퍼덕, 혹은 맨발로 찰박찰박 뛰어다니던 일, 센 바람이 부는 날 가느단 나무를 붙들고 몸이 떠오를지도 모른다고 신나하던 일이 생각났다. 지켜본 관객들의 눈동자 안에서 저마다의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모두를 간지럽힌다. 그래서 자연스레 다음 이야기로, 다음 이야기로 목요일오후한시는 <매일같이 사춘기>를 살아나간다.


오늘 일요일 공연에서는 ‘야생 그 자체’였던, ‘전쟁같았던’ 사춘기가 펼쳐졌다. 어느 고등학생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하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한다고 당차게 말해서 스페이스빔 발효실에 모인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예민하게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들.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도 내 발목을 잡고 있거나, 별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사춘기. 막걸리를 만들었던 옛 인천양조장의 발효실 터에서 이야기와 연극이 발효되는 중이다.  


                                                                                                     글 | 김해진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난 소감을 적고 있다.                                                사진 마뇨
           <매일같이 사춘기>는 '사춘기'를 주제로 한 전시 <기이한 공동생활>과 함께 열리고 있다.
           김은옥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 
                                           사진 은옥 
         최윤정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                                                     사진 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