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목요일오후한시 즉흥연극 일기 ⑧ 마지막회_ 많이 웃고 더러 정색하고

 

0530 <매일같이 사춘기> 사진 은옥



2009년 5월 31일 일요일 맑음 : 스페이스 빔 테라스는 바람 쐬기에 정말 좋다.


12:00~12:40 인천문화재단 연습실 몸풀기

12:40~1:00 소리통로 풀기

1:00~1:45 즉흥훈련

2:00~3:00 이동 및 식사

3:00~3:30 의상체크, 꽃단장 or 스페이스 빔 1층 연습

3:30~4:00 무대와 객석 세팅

4:00~5:10 리허설

5:10~5:30 개인시간

5:30~5:40 무대 최종 확인 및 소리난장

5:40 공연장 open, house music, 유리창 안내

6:00 공연시작


그동안 <매일같이 사춘기> 공연 당일에 목요일오후한시는 위와 같은 스케쥴을 기준으로 움직였다. 관객들로부터 어떻게 연습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했는데, 초단순 대답이 될 수도 있겠다. 물론 저 사이사이와 평소 연습에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와 반짝이는 순간, 어둡게 흐르는 시간들이 있다. 그걸 매번 정리해내거나 머릿속에 각인시키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건 어떤 방식으로든 목한시의 몸에 쌓여나간다는 것이다.


5월 초에는 비가 많이 쏟아져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러다 공연 때마다 비가 오는 건 아닐까’ 불안하기도 했었는데 다행히 해가 쨍 떴고 선선한 바람도 공연을 도와주었다. 비가 많이 오던 날에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주신 관객들이 있었다. 고맙고 신기하고 떨리고 기분 좋은 날들이었다.


이제 2009년 인천 스페이스 빔에서 열리던 <매일같이 사춘기>는 막을 내렸다. 각자 맡은 역할과 스케쥴에 따라 뛰어다니고 연습하고 공연하면서, 목한시는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동인천역을 지나는 사람들, 상인들, 경비아저씨, 근처 중학교의 학생들, 지인들, 이웃한 아티스트와 활동가들, 스페이스 빔의 방문자들, 잡지와 방송의 취재팀,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른 관객들…… 기획자 마뇨와 그날의 스태프가 동인천역에서 스페이스 빔에 이르는 길들을 훑고 나면 사람 대신 까만 바탕의 우주 포스터와 입간판에 끼워진 공연 팸플릿이 사람들을 만났다. 실제로 관객 중에는 포스터만을 보고 찾아온 관객들이 꽤 되었다. 연리목의 포스터 디자인과 홀이 쓰고 다듬은 문장들이 힘을 발휘했다. 멋지다.


                                                               0530 <매일같이 사춘기> 사진 은옥


어제 토요일 공연에서 만났던 이야기들 중 하나를 떠올려본다. 청소년들이 단체로 공연장을 찾아온 날이다. 초록색 티셔츠에 모자를 쓰고 있던 남학생은 ‘사춘기’하면 목젖과 목소리가 떠오른다고 했다. 여자 목소리가 남자 목소리로 변했다며. 변성기로 자연스레 이야기가 옮겨가는 형국을 보며, 변성기 이후의 목소리를 스스로 이상하게 느낀다거나 맘에 들지 않아 할지도 모른다고 순간 내 멋대로 생각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갔다. 변성기 이후 자신의 목소리가 듣기 좋아져서 전보다 훨씬 더 자주 노래를 부르게 된다는 거다. 예상이 빗나갈수록 공연장의 분위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배우들은 점입가경, 노래를 한 소절 불러달라고 청했다. 텔러는 ‘나중에 가수 되어서 부를게요.’라며 능청스레 거절했다. ‘아, 그럼 가수가 꿈인가 봐요’라고 배우가 말하자 ‘아니요. 요리사가 꿈이에요.’라고 대답해서 관객들이 한바탕 웃는다.


“그럼 보여드리겠습니다!”


                                                                            0530 <매일같이 사춘기> 사진 은옥


장면은 “응애응애~” 울음소리로 시작됐다. 갑자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나오는 노래 ‘지금 이 순간’이 떠올랐다. 가사를 다 아는 것도 아니었다. 이걸 가지고 무대로 나갈 수 있을까. 그렇지만 떠오른 걸 가지고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주저하는 나를 앞서 나갔다. 어느새 무대 위 하얀 사다리를 올라서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로 시작하는 부분을 ‘지금 이 순간~ 내 목소리~’로 바꾸어서 부르기 시작했다. 변성기 이전의 목소리를 상상했다. 현수는 곁의 배우가 변성기 이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목젖이 불거져 나오던 그때로 상황을 이어갔다. 캐스터네츠를 목 앞에 대고 딱딱 소리를 내면서. 관객들의 눈빛이 보이지 않는 파장이 되어 무대 쪽으로 슬며시 넘어오고 있었다. 홀도 캐스터네츠 목젖에 합류했고 세 명의 배우는 초반보다 웅장한 목소리로 ‘지금 이 순간’을 반복해 부르기 시작했다. 손을 뻗고 입을 크게 열어가며 더듬더듬 불러나갔는데, 오정이 사다리로 올라가 속 시원하고 멋들어진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현수, 홀, 나는 맡은 인물로서도 방방 뛰며 기뻐했지만, 동시에 배우 개인으로서도 반갑고 기뻤다.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이 채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정은 텔러의 네 번째 자아인걸까? 순간 현수가 “엄마!”라 호명했고 오정은 짧게 당황했지만 엄마 역할을 수용했다…하하! 엄마는 재치 있게 “요리사가 되어라~” 노래했고 아들(들)은 중저음의 “네~~~”로 대답하며 장면을 마무리 지었다.


오늘 일요일 공연에 만난 모녀의 이야기는 공연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어린 날 초경날짜를 다 기억하는 한 관객은 학생인 딸과 함께였다. 딸과 어머니는 전력을 다해 서로 다투던 어느 날을 떠올렸고,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장면을 보고나서는 눈시울이 붉어져 서로 화해하고 있었다. 그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도, 연기를 한 사람도, 다른 관객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또 어떤 관객은 내내 답답하고 힘들었던 사춘기 시절을 들려주었다. 특별히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소소하게나마 자신의 방식대로 계속 반항했던 그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전쟁터에 핀 한 송이 꽃’이라고 유리창에 적었던 이야기였다. 큐빅과 앉은뱅이 의자를 들고 두 명의 배우가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작은 원을 맴맴 돌았다. 그렇게 시작된 장면에 꽃이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서진은 텔러의 소심한 가출을 알아채지 못했던 어머니의 역할을 맡아 “우리 딸은 가출도 안하고 속도 한 번도 안 썩이고 얼마나 말을 잘 들었는지 몰라요.”라며 숨어있던 대사를 발견했다. 선생님이 된 텔러의 현재 모습에까지 이르며 장면은 마침표를 찍었다.


                                                                                                 0530 <매일같이 사춘기> 사진 은옥


목요일오후한시의 사춘기는 어떤 모습일까.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있는 이 팀이 매일같이 겪는 사춘기는 무엇일까. 특정한 시기로서의 사춘기가 아닌, 함께 꾸려가며 좌충우돌하는 그런 열기(熱氣)! 여기에 이르자 최근 집에 배달되어 온 잡지 월간 웹이 떠오른다. 공연기간 동안 취재를 다녀간 강창대 편집장은 6월호 월간 웹에 이렇게 적고 있다. 한참을 웃었다.


 “(…) 기자가 이들을 처음 만난 곳 역시 공원이었다. 한낮의 햇볕이 내리쬐던 공원 한가운데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공연을 하고 있었다. (…)


누군가에게 우리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기억된다. 하지만 아마도 늘 뜨겁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때는 차갑고 어느 때는 미적지근하고 어느 때는 따뜻하고 어느 때는 시원하고, 어느 때는 그 온도가 측정범위 바깥에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목한시의 사춘기는 매일같이 찾아오는 그런 변화의 여정인걸까. 그렇다면 정말 ‘매일같이 사춘기’다. 홀이 했던 말을 따라하자면, "그것 참 곤란한데."


내일은 공연물품과 전시작품, 짐들을 정리해서 옮기는 날이고, 곧 <매일같이 사춘기> 합평회가 열릴 것이다. 지나온 공연들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연습과정, 형식과 내용을 아우른 고민들, 앞으로의 계획, 팀의 구조와 살림살이 등 다양한 논의가 진행된다. 아마 많이 웃고 더러 정색하겠지. 합평회가 과연 한 회로 끝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은근히 매일같이 만난다.


지난 4~5월에 연재되었던 ‘목요일오후한시 즉흥연극 일기’가 이제 마감됩니다. 인디언밥의 연재 꼭지에서는 즐거운 끝을 맞았지만, 목요일오후한시는 계속 길을 갑니다. 8월에는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울거>라는 제목의 창작극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7월,9월,10월에는 야외 게릴라공연 및 퍼포먼스가 목요일 오후 한 시마다 펼쳐집니다. 그동안 연재를 챙겨가며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일기를 쓰던 리듬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목한시 일기를 써보리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미처 담지 못한 목한시의 일상이 참 많아 아쉽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형태로 함께 할 수 있겠지요!

"금방 봐요."


글 김해진 blog.naver.com/sunamu

목요일오후한시 단원

목한시 클럽 club.cyworld.com/playback-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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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벌건얼굴,뒤집어지며웃는얼굴,정색하는얼굴 ... 그 얼굴들이 마주했던 순간들을 글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감사^^

  2. 목한시의 이번 작업, 꿈틀꿈틀거리는 배다리의 움직임을 거들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컸다봐요. 제가 다 고맙고 뿌듯하네요. 허허

    • 배다리 공연을 할 때는, 공연 시간이 서로 겹쳐 헌책방 랩퍼를 못본 것이 너무 아쉬웠더랬죠. 흐흐

  3. 바보팅이야!
    제목 '거울' -> '울거'로 바뀌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