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경의 마임워크숍]-7. 우리는 좀 더 스킨쉽을 해야 한다

2010. 4. 5. 20:51Feature


고재경의 마임 워크샵 - 일곱 번째 기록


글| 강말금

*들어가는 말 

일곱 번째 수업이다. 우리는 매 수업 어떤 엑서사이즈를 통해서든지 몸의 분리, 공간, 접촉의 개념을 다루게 된다. 어떤 때에는 분리된 몸에만 집중함으로써, 어떤 때에는 다 버리고 공간에만 집중함으로써, 또 어떤 때에는 그 유명한 벽짚기를 하면서 앞의 두 가지를 통합하는 방법으로 연습한다. 결국에는 세 개념이 조화되어 형상과 느낌을 이룬다. 이 과정은 어떤 때에는 수월하고 어떤 때에는 어렵다.

몸의 분리를 하면서는 발레를 배운 경험이 많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몸을 느낄 경험이 없었던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한다. 고재경씨는 무용이나 몸짓으로 몸을 특화시켜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어떤 때에는 더 자연스럽고 적절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분들이 막상 ‘몸’, ‘마임’에 입문하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난관에 부딪힐까, 무용을 배운 적이 있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하는 생각도 매 수업 한다.

십여 명이 듣는 수업이다.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이 다양한 전사를 가지고 수업에 참여한다. 나는 배우이고, 연극 연습실에서 빠져나와 일곱 번째 워크샵을 들으러 왔다. 일곱 번이 지나면서 정말 많은 말들 속에 유난히 귀에 쏙쏙 들어오는 어떤 말이 생겼다. 그것은 ‘외형적으로 보여주세요’ 이다. 배우가 구현해야하는 정서의 부분은 흔히 생각하는 마음 속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공간 속에 아주 구체적인 '점'으로 있다는 사실이다. ‘두려움’ 수업이 준 교훈이고, 이후 계속 들리고, 생각하게 되는 말이다.

오늘 수업은 유난히 그것을 위주로 들렸다.



1. 일명 ‘진화걷기’의 응용 - 속도, 강, 약, 몸의 분리


세 번째 수업에서 다음과 같은 포즈로 전진하는 것을 배웠다. 오늘은 이것의 응용.


                                     A              B               c

A, B, C 순서대로 끊지 않고 간다. A자세에서 가다가 팔이 발보다 빨리 가면 B자세가 된다. B자세로 가다가 발이 팔보다 빨리 가면 C자세가 된다. 가면서 엉덩이를 내리고 허리를 펴고 양어깨를 아래로 내리면 다시 A자세가 된다.

속도의 변화와, 강, 약을 주며 간다. ‘느리다’의 속도로 강, 약을 다 할 수 있다. 느리다고 해서 약해보이는 것은 아니고, 빠르다고 해서 다 힘차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 B의 자세로 느리게 가면서 유유히 먹이를 탐색하는 아프리카의 표범을 상상했다. A의 자세로 가면서는, 방정맞은 개구리를 상상했다.

- “다리가 빨리 움직여도 몸은 갖고 있어야 되요. 몸의 중심이 망가지면 안 되요. 중심선. 자기 폭 안에서,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폭 안에서. 그 폭을 찾고, 선을 찾으라는 얘기예요.”

- “자, 이제는 속도가 변하는 시점을 생각합시다. 느리다가 빨라지는 순간. 빠르다가 느려지는 순간.”

‘공연이 밀도가 있다’라는 말을 한다. 내 생각에는 그것은 시간과 관련이 있다. 연극하는 선배가 러닝머신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그분은 시속 10km로 뛰다가 서서히 속도가 떨어져서 시속 5km로 떨어지는 프로그램으로 달리기를 했다. 그 분은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그 순간 덕분에 한 시간 달리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속도의 변화. 공연의 밀도는 속도가 변하는 시점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 시점이 시간성을 다르게 체험하게 한다. 이번에는 개구리에서 표범으로 넘어가면서 한 번 쯤 성공시킨 것 같다.


- “몸을 분리하고, 그 부분만 생각하면서 갑니다.”
- “자, 이번에는 A자세에서, 가슴 UP/BACK, 어깨 DOWN된 상태를 유지하고, 얼굴로 갑니다. 얼굴이 몸을 보낸다고 생각하고 가 봐요.”
- “대상물을 할 때, 그 놈이 뭘로, 뭘 갖고 움직이는지 생각해보세요.”
- “B 자세에서, 오른손하고 왼발, 왼손하고 오른발 세트로 움직입니다. 등 내리세요. 척추뼈 몇 번 몇 번이 내려가는지 느끼세요. 전진하세요. 엉덩이 좌우로 움직이지 마세요.”
- “척추뼈를 거의 다 쭉 내린 상태에서 갈 수 있는지 해보세요. 거기에만 집중하세요.”
- “이제 어깨로 가봅니다.”
- “C자세에서, 무게를 완전히 팔 쪽으로 이동시키세요. 한 팔 한 팔 가보세요.”


초원의 표범을 상상하면서 가는 경우가 있고, 몸에만 집중해서 어깨로만 간다고 생각하고 가는 경우가 있다. 고재경씨는 두 경우를 계속 교차시킨다. 내부와 외부를 교차시킨다. 답은 주지 않는다. 발견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 같다.


2. 사람의 걷기 - 몸의 분리, 작용점, 정형화  


앞선 엑서사이즈를 하면서 중간에 갑자기 시킨 게 있다.

- “내가 조폭이다” 라고 생각하고 저를 향해 와 보세요.
- 주막집 주모예요. 나를 향해 와 보세요.
- 나는 가슴이 커. 내 가슴이 자랑스러워. 뻐기면서 와 보세요.


나는 솔직히 그것들이 하기 싫었다. 남들과 같은 전형적인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은 주막집 주모다. 배우는 무대에서 항상 자기 자신의 모습(남들은 아는데 본인은 모르는)과,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본인이 늘 착각하는) 사이를 진동한다. 내가 아는 나는 조폭 보스는 되도 촐싹맞은 주막집 주모는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주모를 해야 한다면 보스 같은 주모를 하고 싶은 사람이다.

세 가지를 던진 후, 고재경씨는 탈춤의 전형들과 인물의 격, 신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다.

- 자, 벽에 붙어 서세요. 막대기예요 막대기. 발목을 안쪽으로 틀어보세요. 안짱다리처럼.
- 이제 걷습니다. 자기 앞에 일자선이 있다고 생각하고 선을 밟으면서 안짱다리인 채로 걸어요. 천천히.
- 발목에 집중하세요. 다른 몸은 고정하세요.


- 이번에는, 똑같이 걷는데, 몸을 고정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흔들림에 맡겨 봅시다.
- 골반이 움직이죠? 그런데 중요한 건, 발목으로 인해 골반이 흔들린다는 거예요. 작용점이 발목에 있는 거 놓치면 안 되요.

- 이번에는 안짱인 상태에서 무릎마저 안으로 살짝 굽혀 봅시다. 걷습니다. 이번에는 작용점이 무릎이예요. 무릎이 움직여서 나머지가 따라오는 겁니다. 다른 몸을 최대한 고정하세요. 잘 안 되겠지만요.
-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세요.

- 이번에는, 발목을 밖으로 틉니다. 발레자세처럼요. 앞에 있는 일자선을 밟으면서 갑니다. 다른 몸은 고정하세요. 어깨 힘 빼고. 골반 움직여도 최대한 자제하세요.
- 똑같이 걷되, 몸을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깁니다. 작용점 발목, 잊지 마시구요.


- 이번에는 골반을 흔들면서 걷습니다. 작용점은 골반이예요.
 
우리는 이외에도 옆구리, 가슴, 어깨, 별별 것을 다 했다. 심지어 ‘얼굴로 가기’도 했다. 이렇게 몇 가지 하는 사이에, 내가 하고 싶지 않았던 촐싹맞은 주막집 주모가 아무런 자의식 없이 쑥 나왔다. (발목 안짱으로 하고 무릎 안쪽으로 살짝 굽히고 걸을 때. 걸음에 따라서 골반이 삐쭉삐쭉 움직였다.) 우아한 공주가 쑥쓰러움 없이 나왔다. (목을 빼고 어깨를 낮췄을 때. 지위가 상승되는 것을 느꼈다.)

고재경씨의 다음 단계는, 몸의 분리를 전제로 한 지금까지의 것을 다 잊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다시 주모로, 가슴 큰 여자로. 모델로, 향단이로.

이번에는 그냥 할 수 있었다. 몸이 있었으니까. 막연하지 않으니까. 몸을 어디에 두면 되는지만 알면 되니까. 왠지 남의 것 같고 진실이 아닌 것 같은 ‘정서’를 억지로 만들어 낼 필요 없이.

항상 왠지 모를 거부감으로 다가왔던 ‘정형화’에 대한 쪽문이 열린 느낌이다. 정형화는 ‘나는 나 자신으로 무대에 서고 싶어’라는 나의 욕망과 반대에 있는 것이 아닌 듯 하다. 정형화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 보다는, 작용점을 어디에 두고 걸으면 어떤 느낌인가 식의 질문이 더 유리하다.




3. 사각기둥 조각 


우리는 여느 날처럼 보이지 않는 점에 손바닥 아랫부분을 갖다대고, 보이지 않는 벽을 짚고, 보이지 않는 탁자를 쓰다듬었다. 뒤에서 물건을 꺼내 탁자 위에 하나씩 천천히 올렸다. 올려놓은 것들로 일을 했다. 나는 상자에서 바늘과 실을 꺼내 바느질을 했다.


그 다음 사각기둥. 우리 눈 앞에 우리 키만한 사각기둥이 있었다. 폭과 넓이는 마음대로. 석고, 스티로폼, 나무 등 재료 또한 마음대로. 재료에 따라 끌, 망치와 정, 손칼, 사포 등이 따라올 것이었다.


우리가 조각할 것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사각기둥을 보면서 어떤 모습을 새길 것인가 구상하고, 각자의 도구로 재료를 깎아 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모습인지 까먹었을 땐, 사각기둥 안으로 들어갔다. 고재경씨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다’에 맞추어 사각기둥 안으로 쑥 들어갔다가 슬 나왔다. 다시 도구를 들고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도구를 바꾸어보기도 하고, 사각기둥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기도 하면서 마무리를 지어 나갔다. 머리 팔 허리 다리... 마무리가 된 사람들은 조각상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끝날 때를 기다렸다. 모두 다 끝나자, 연습실에는 떼조각상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감상하기. 이 모든 절차를 거치는 데에 삼십분의 시간이 걸렸다. 얼마 동안의 시간으로 어떻게 하나 막연하기도 하고, 언제 끝나나 지루하기도 했지만, 최초의 긴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 느낀점

 

수업마다 느낀점은 항상 많다. 그렇다기보다는 많아야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다. 고재경씨는 말하는 모든 것들에 큰 개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반복되지만, 모든 것에 적용되어서, 하나도 놓치면 안 될 것만 같다.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을 무효로 만들려는 고재경씨의 책략도 있다. 실컷 말해 놓고 난 몰라, 알아서 해 라고 한다. 쉬운 선생이 아니다.

한 주 한 주 간다. 일곱 번째다. 뭘 자꾸 연습해야하는데 하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몸이 알아서 하니까. 그보다 수업을 할 때 몸의 상태를 어디다가 놓을까 생각한다. 사람들과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눌까 생각한다. 그리고 왜 약간 수업의 마무리가 찜찜할까 생각한다.

이런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조금 더 스킨쉽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매 수업의 이별을 잘 해야한다고. 앞으로 열 세 번.

별 건 아니고. 다음 번 부터는 큰 소리로 수고하셨다고 인사해야겠다. 우선 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