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극단 목요일오후한시 <말 안해도 알겠네>"평범한 오늘을 기록하는 특별한 연극"


 

평범한 오늘을 기록하는 특별한 연극 

극단 목요일오후한시

'시장통 이야기 발굴척척 프로젝트 1탄'
<말 안해도 알겠네> 



사라져가는 것들은 그저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오늘을 기록하고
조용히 미래를 암시하면서 사라진다.


 


글| 삐삐롱스타킹


 

                                                 인천 현대시장의 한 생선가게 앞에서 즉흥연기를 펼치고 있는 목요일오후한시






아, 얼마나 오랜만의 취재인가


과장 조금해서 백만 년 만에 탄 동인천 행 급행열차의 창문에 얼굴을 찰싹 붙이고 마지막 공연 취재 글을 쓴 기억을 따라가 봤더니 그사이 훌쩍 5~6년이 지나있었다. 아, 그동안 뭘 했을까.

저소득층 아이들 문화예술교육기획을 거쳐 지금은 성미산마을에서 살면서 놀 거리를 찾고 만들고 있다. 돌아보면 모두가 나를 알던 시골 마을의 시선이 지긋지긋했던 소녀가 서울 살이 10년 끝에 다시 마을의 가치를 높이 쳐주게 된 것이다. 사람과 소통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공연 속에 오고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내 느낌으로 기록하는 글쓰기. 왜 내게 다시 글쓰기가 찾아온 것일까. 생각이 많고, 부담감은 한없이 컸지만 극단 목요일오후한시의 즉흥극이라는 얘기에 솔깃했다. 내 얘기를 극으로 만들어 줄 때, 굉장한 선물을 받은 것 같은 느낌과 드러낸다는 점에서 부담감이 같이 오고갔던 그 순간들은 대단했다. 그리고 배우들 스텝들의 소박하면서도 집중하는 모습들이 깊은 인상을 주었던 터라 복잡한 생각을 접고 용감하게 취재길 에 나섰다.


관객이 스토리텔러로서 이야기를 제공하는 즉흥극의 매력을 한껏 보여주고 있는 극단 ‘목요일 오후 한시’(아래부터 목한시)가 재래시장공간을 통째로 무대로 삼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상하고도 통쾌한 웃음, 크득크득 음하하하!! 뭐랄까, 또는 상상력이 부족한 이 시대의 예술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보라 이런 불온한 느낌. 물론 목요일 오후 한시의 배우나 스텝들은 그다지 연연하지 않겠지만. 뭔가 뒤틀린 나는 혼자 크득크득 웃음이 삐져나왔다.


그리고 도시가 없는 2000년대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해체된 이 시대에 왜 재래시장으로 무대를 옮겼는지는 말 안 해도 알겠네!








상상하면 서있는 그 자리가 바로 무대


1호선 동인천역 4번 출구는 중앙시장과 연결되어 있다. 원래 포목점 도매 상가였던 흔적을 볼 수 있지만 역 주변은 재개발을 하느라 주변 건물은 허물어지고 철골의 맨살을 보이고 있었다. 오늘의 토건국가에서 사라지는 것들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과도한 감상을 안고 배다리 근처에 이르렀다. 점점 더 과거로 진입하는 듯 한 간판들(문구총판, 옷가게, 조그만 식당들)이 영화세트장으로 캐스팅해도 손색이 없을 느낌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현대시장! 이곳은 지금은 쇠락해져 가고 있고, 주변의 재개발에 관한 소식들이 들리는 어수선함에도 불구하고 한때 경매시장으로 명성을 떨쳤던 위세를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곳이었다.


목한시 배우와 스텝들은 5월 13일부터 3주간 매주 목요일에 시장 구석구석 상인들과 만나는 시장탐사를 통해 이야기를 하나하나 모았다. 그리고 각각의 토요일, 시장의 크고 작은 길을 누비는 길놀이로 흥겹게 상인들과 지역주민들과 춤과 노래로 인사를 했다. 시장에서 물건을 담아 파는 바구니를 재활용한 악기와 잡색 도구들은 상인들에게 인기 만점이었고, 아이들은 눈을 떼지 못하였다.


공연의 시작을 유랑극단처럼 풍악을 울리며 떠들썩하게 알렸으니 본격적으로 극을 시작하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시는 분들은 어찌 그리 수줍어들 하시는지..


그분들의 이야기와 연령대를 바탕으로 감히 시대를 추측해보았다. 박정희식의 개발독재를 거쳐 눈부시게(?) 도시가 성장하던 80~90년대, 노동시장에서 밀려나 살 곳을 찾아 시장에 들어왔을 것이다. 백화점, 높은 건물, 아파트, 중대형 고급 자가용이 계급을 상징하기 시작하던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일하던 자리에서 밀려나고 노점에서 장사를 시작했던 분들의 삶이 주인공이었던 적이 있었나. 그러니 스토리텔러인 상인들이 시작하는 말씀이 대게 ‘내 얘기 뭐 특별할 것 하나도 없고, 우리 부부 그냥 열심히 일했고, 남들이랑 똑같아’이다.


허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듣다보면 ‘그냥 그렇다는’ 삶의 결결마다 가슴이 저밀 정도의 감동과 뒤집어지게 웃긴 만남과 일화들이 영화보다 더 버라이어티하다.


19살 여고생이 에어로빅을 배우던 중에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될 두 모녀의 협공에 져서 결혼을 했다. 지금도 그 남편과 꼭 끌어안고 낮잠을 잔다는, 씩씩하고 밝은 여주인의 이야기는 코미디영화의 소재감이다.
한 평의 하늘조차 가려주지 못하는 노점에서 과일 장사를 시작해 조금씩 돈을 모아 드디어 시장 상가에 입주하게 된 이야기를 함께 보고 있던 주인아주머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려 눈물을 닦으셨다. 그 순간이 얼마나 고요하고도 아름다운지 아,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열심히 다니던 직장을 원하지 않게 그만두고 시작한 상점이었지만 그 분야에서 박사소리를 듣는다는 잡학 다식한 박사님의 자신만만한 목소리는 극이 끝났을 때 뭔가 먹먹해진 울림을 담은 소리로 바뀌었다. 극단 배우들에게 최고라고 찬사를 주신다.






즉흥연기를 펼치기 위해 텔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목요일오후한시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변신하는 순간


예전에 어떤 프로젝트의 후기를 기록하면서 부처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대한 나의 해석을 붙인 적이 있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독불장군이 아니라 하늘과 땅 이 우주 사이에 존재하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존재! 그렇게 유일한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인식하면 지나가는 들풀 한 송이도 함부로 밟을 수 없게 된다는 지인의 말씀도 함께 떠오른다.


현대시장에서 만든 목한시의 즉흥극은 개성과 자유로움을 잘라낸 ‘일반적인 기준’으로 덮어뒀던 특별한 존재로서의 한 개인들을 감동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분들은 본인들이 평범한 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시겠지만 그분들의 이야기 속에는 지난 우리의 현대사와 또 여성과 남성의 스토리와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눈물겨운 성장기가 찌~인하게 묻어난다.


특히 목한시의 즉흥극은 본인도 의심하는 별 거 없는 이야기를 눈앞에 펼쳐 보임으로써 객관화 시켜주기 때문에 스토리텔러는 극의 주인공이며 화자이고 동시에 관객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저 수다로 끝날 수 있는 대화의 단편들이  우리시대의 보편적인 인물들의 자화상이 되고, 한 개인의 인생이 담긴 특별한 연극이 되는 순간이다.


흐흐...그런데 이 복잡한 과정이 정말 짧은 순간인 20여분 만에 일어난다는 것.


모험 가득한 실험을 하는 목한시의 용기와 수십 번도 시장에 오고갔을 발걸음이 느껴졌다.
‘목요일 오후 한시’의 즐겁고도 긴장이 넘치는 실험은 어디로 가게 될까. 어디라도 그들의 여행은 한없이 가벼운 걸음으로 옮겨 다니겠지만 한없이 깊은 이야기를 여행 보따리에 차곡차곡 담을 것이다.







오늘을 만드는 사람들의 위대함


쓰다 보니 몇 가지 더 붙여보고 싶었는데, 주절주절 길어질 것 같아 여기까지 마무리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재래시장의 풍경들이 시간의 연속성에서는 앞으로 가지 못하고 뒤로 가거나 멈춰있는 하나의 순간들이자 그림이라는 느낌을 계속 가졌다. 재래시장은 더 이상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정지하거나 멈추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그분들의 삶, 시장을 중심으로 만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는 목한시의 즉흥극들은 시대를 기록하는 목격자의 역할까지 다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연구 자료가 아닌 연극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스토리텔러, 배우, 스텝, 관객 모두에게 무지개빛깔의 감정의 덩어리로서 사람 속에 오래오래 기록해두게 된 것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은 그저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오늘을 기록하고 조용히 미래를 암시하면서 사라진다. 현대시장이 삐까번쩍하지는 않지만 그곳의 숨결, 공간에 기억되어 있는 소리들, 부지런히 오늘을 계속 만들어 낸 움직이는 손들은 참으로 위대하다. 휘황찬란한 내일을 만들겠다고 삽질을 하며 오늘을 죽이고 있는 미친 손들에 비하면 말이다.






 공연 동영상


영상제작: 꾸러기스튜디오 (www.curuk2.com)



 


극단 목요일오후한시의
시장통 이야기 발굴 척척 프로젝트 1탄
"말 안 해도 알겠네"


현대시장의 살아있는 역사를 찾습니다!
시장통의 생생한 이야기가
눈 앞에서 즉흥연극으로 펼쳐집니다.


인천 현대시장 일대 2010년 5월 13일~29일
집중탐사: 프로젝트 기간 중 매주 목요일 전일(5월 13, 20, 27일)
이동형 게릴라 즉흥연극: 프로젝트 기간 중 매주 토요일 3시(5월 15, 22, 29일)



제작: 극단 목요일오후한시
탐사대&출연진: 니모, 두둑, 마뇨, 이산, 홀
기획: 마뇨
홍보: 현수
홍보물 디자인: 연리목
영상기록: 꾸러기스튜디오
사진기록: 박비봉
후원: 인천문화재단



극단 목요일오후한시
즐거운과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하는 극단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척하면 척' 하는 공연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웹커뮤니티: club.cyworld.com/playback-theater


 


필자소개
삐삐롱스타킹.
이것저것 재미난 걸 하지만 딱히 뭘 한다고 말하긴 어렵네요.
제가 뭘 하는 사람일까요. 알고 싶습니다.


 





  1. 삐삐롱이 인디언밥과 많이 친해져서 즐거운 인연 계속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인디언밥의 새로운 필자, 삐삐롱 화이팅이에요~

  2. 앗...오랜만의 글쓰기라 쑥스러웠는데..다시 제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인디언밥에게 오히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3. 목한시 사랑해요

  4. 서정적인 분위기에 시장성을 전목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은 좋은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