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넘어서 그 무엇을 본 걸까.

차이를 넘어서 그 무엇을 본 걸까.

  • 이현수(목요일 오후 한시 배우)
  • 조회수 553 / 2007.07.24

intro

이미 관객입장이 끝나고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우리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럽게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갑작스런 어둠이 눈앞을 가렸다. 저절로 나는 앞사람, 뒷사람의 손을 잡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손을 잡고 서로에게 의지해 자리를 찾았다.  


공연 소개

‘삶의 즉흥, 디퍼런스’는 ‘공연예술치료’라는 장르이다. 이 공연은 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와 감정들을 몸짓으로 풀어가는 워크샾을 진행한 후 공연 형식을 갖추어 무대 위에 올린 것이다. ‘디퍼런스’, 차이 또는 다름. 이 공연에서는 ‘‘다름’에 대한 물음을 통해 그 의미를 찾고 받아들이고자 한다‘고 한다. ’인간이 정한 규칙과 일반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한다.

 

difference!

곧고 단단한 몸을 가진 남자 배우는 신체적 장애가 있다.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 나가려면 집중을 필요로 하고 떨림이 동반된다. 신체의 부자유가 신체에 대해 더 많은 의지를 갖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극 속에서 이 배우는 일어서려다 넘어지고 한 발 나아가려다 넘어진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장애와 관계없이 할 수 있는 것도 더 힘겹게 싸워내는 것일까. 

흰 옷을 입은 여자 배우는 사각 프레임 조명 안에서 눈물을 흘린다. 고통과 슬픔 그리고 자기 환멸, 자기 연민... 복잡한 감정들이 얼굴 표정에 진흙처럼 엉겨있다. 그리고 그 진흙이 어그러질 대로 어그러지고 어느 정점을 넘어선 순간부터 얼굴에는 맑은 연꽃 같은 표정이 머무른다. 기어가는 몸들과 구슬픈 노래를 하는 몸이 배경처럼 무대에 함께 있다.

무대 위의 모든 배우들은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 무거운 분위기를 잠시 가볍게 해보고 싶었던 것인지 한 배우는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소리 내어 웃어본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점점 고개를 숙여가고 지팡이를 짚은 남자는 땅을 찌르고 하늘을 찌르며 분노한다. 탯줄을 몸에 감은 배우는 천장에 연결된 긴 탯줄을 끊으려다 한이 복받치는 듯 눈물을 흘린다. 자신과 세상에 대해 그들 각자는 다른 색깔로 말하고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무리의 배우들은 걷다가 멈추어 팔을 벌리는 행동을 빠르게 반복한다. 무언가를 막으려는 듯, 또는 지키려는 듯 단호한 표정으로. 이때 서로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고받으려는 것 같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군무로서의 동일한 움직임을 만들어가려 할수록 각 신체의 특성에 따라 이 움직임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difference?

무대 위의 배우들은 충분히 다르다. 장애와 비장애의 신체는 피부로 느껴지는 다름이다. 장애를 가진 신체도 저마다 다 다르다. 장애와 비장애, 남자와 여자, 각자의 이야기도 다르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도 다르다. 모든 배우가 그러했던 것은 아니나 치료적 특성이 부각된 만큼 저마다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몸짓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아픔과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모습이 어떤 방향으로든 받아들여지길 원하고 있다. 차이가 있어서 고통스럽고 그 남다름이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일으키는 불편함이 있다. 그것을 차이에 대한 긍정을 통해 인정하려 한다. 그러나 어떤 남다름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만약 자신만의 그것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면 그토록 그 차이를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서까지 긍정하려 했을까?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이든 남다름에 대한 인식이고 그 둘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닐런지...

문득 ‘차이’를 긍정하는 것을 통해서 치유한다는 것에 의문이 든다. ‘난 당신과 다르다’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히려 무대 위에서 충실하게 움직이고 소리 냈던 배우들을 통해서 느끼는 것은 ‘차이’가 아닌 그 무엇이다. 그것을 어떻게 이름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순히 ‘공감‘이나 ‘동일성‘이란 단어로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 무엇이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왜 일까? 


어둠 속에서

배우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고통을 느끼고 그것을 넘어서고자 한다. 때론 슬픔으로, 때론 기쁨으로, 때론 분노로, 때론 복잡한 감정 그 자체로 견뎌낸다. 자신을 부정하는 강한 의지 속에서 자신을 향해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을 본다. 무리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 영상 위로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자막이 흐를 때, 그것은 몸의 비상이라기보다는 바닥을 기어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슬픈 마음으로 쓰다듬고 싶어 하는 손길의 독백으로 다가온다. 배우는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위악 속에 몰아넣지 않는 한 누구나 그렇게 사랑받길 원하고 있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길 원하지 않을까?   

조명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배우들은 한 명 씩 말했다.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바위다’ ‘나는 창가의 창녀이다.’ ‘나는 빨간 장미다’.....순간 어둠 속에 빨간 장미가 피어올랐다. 그녀를 목소리 외에 장미로도 느낄 수 있었다. 장미와 그녀는 둘 다 향기를 지니고 있었고 향기는 어둠 속에서도 전해지는 것이었다. 그 마음은 어둠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장미와 그녀는 디퍼런스 한 것만은 아니었다. 장미와 그녀는 많이 닮은 듯 느껴졌고 그녀만의 남다른 그 무엇으로 그녀를 느끼는 게 아니라 장미를 통해서야만 그녀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무엇이다’ 그 마음이 절망이든 희망이든, 스스로들의 꿈을 어둠 속에 실어 보냈을 때, 무대 위 배우들은 서로에게 디퍼런스 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 말들이 혼자 되뇌이는 자기 증명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해서 보내어진 음성들이기에...어둠을 타고 들려오는 음성에 가만히 나의 마음을 올려놓았을 때, 관객과 배우가 디퍼런스 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서로 서로 닮아있었다.


 

 

 

outro

어둠 속에서 배우들은 목소리로 퍼포먼스를 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나, 여기, 있어’ 그 말 속에 더듬더듬 물어오는 이도 있으리라. ‘당신, 어디, 있나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존재가 소리로만 전해져오는 가운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더듬더듬 손을 내밀어 본다. 어둠 속에서 발견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보충설명

공연예술치료연구회가 주최하고 푸른태양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SORO가 주관한 "삶의 즉흥 디퍼런스"는 공연예술치료사가 목격한 나로부터 시작된 치밀한 탐험을 내세우며 2007년 7월 5일(목)부터 8일(일)까지 4일동안 안산 문화예술의전당 별무리극장에서 공연되었다.

필자소개

'목요일 오후 한 시'는 퍼포먼스와 창작극 등 다양한 연극적 활동을 하는 팀. 주로 즉흥연극 '플레이백 시어터'를 하는 공연집단이다. 글쓴이 이현수는 '목요일 오후 한 시'의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플레이백 시어터는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즉흥으로 연극을 만드는 작업이다. 우리는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공간들을 좋아한다. 그 시간, 그 자리에서 관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배우와 악사를 통해서 연기되고 소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