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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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유실된 그 모든 가능 세계: 안티무민클럽AMC<한 방울의 내가>
유실된 그 모든 가능 세계 안티무민클럽AMC 〈한 방울의 내가〉글_박주현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다음 대사로 시작한다. “당신 삶을 이야기로 만들긴 쉽죠. 하지만 그보다 어려운 건 실제 기억을 견디는 거예요. 현실은 냄새 나고 더럽죠. 그리고 단순한 결말로 끝나지도 않아요. 지금 내게 영향을 미치는 건 실제 기억이죠.” 1) 〈한 방울의 내가〉는 물방울의 위태로운 표면 장력과도 같이 기억을 견디는 이야기다. 그것은 관계에 빚진 기억이고, 더는 만나거나 만지지 못하는 몸에 관한 기억이다. 비밀과 약속으로 들어찬 하나의 몸이 유실된 가운데, 그의 몸과 나의 몸이 빚어낸 눈부신 기억은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 극장은 본래의 쓰임을 다한 (구)대사관저 건물이었다. 두 개의 거실, 한 ..
2024.07.16 -
[리뷰]구멍에 빠진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자 : 배선희<구멍난 밤 바느질>
구멍에 빠진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자배선희글_박주현 1. 집이라는 극장 〈구멍 난 밤 바느질〉은 배선희가 사전 제공한 수기 약도를 따라 배선희의 집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약도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관성적으로 카카오맵을 따라가다 불현듯 멈춰 섰다. 확대도 되지 않고 건물명을 속속들이 알려주지도 않는 구멍 난 약도에 의지해 걷다 보면, 지리라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된다. 배선희가 어떤 얼굴로, 어떤 속도로, 어떤 상태로, 어떤 생각에 잠겨 이 길을 걷고 또 걸었는지 지도는 말해주지 않는다. 반면, 배선희의 수기 약도는 시공간을 압축하여 최적의 지름길로 등 떠미는 대신 여러 경우의 수를 펼쳐 보인다. 지친 배선희, 슬픈 배선희, 기쁜 배선희, 풀 죽은 배선희, 죽고 싶은 배선희, 도망치고 ..
2024.05.02 -
[리뷰]글이 목소리가 될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This is what we think> 북토크
글_이청 리뷰에 앞서, 이따금 문화예술 장애인 접근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 참석할 때가 있다. 그런 자리는 대부분 주최 측에서 유의미한 대화를 기대한다며 다양한 인사들을 모아주신다. 모든 자리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열에 일곱은 비장애인들끼리 머리를 맞댄다. 그럼 나는 한껏 눈치를 보다가 결국 슬쩍 손을 들어 질문할 수밖에 없다. 비당사자들끼리만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고. 는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두 시각장애인이 경험한 공연과 전시에 관한 생각을 담아냈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다가오는 온도가 다르다. 물론 책의 서두에 나온 내용처럼 두 사람의 이야기가 모든 시각장애인의 견해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절실한 시기에 이 책이 뜨겁고도 찬란하게 그 포문을 열었음은 확실하다...
2024.03.18 -
[리뷰]향해가는 페이크 : 다이빙라인<단델re:ON>
향해가는 페이크 다이빙라인 글_허영균 re:ON 관람 후의 감상을 적기 위해 한참 후에 책상에 앉았다가 이 공연을 만든 이들은 누구인가 뒤늦게 궁금해하게 되었다. 창작집단 다이빙라인은 2019년을 시작으로 을 제외하고도 일곱 편이 되는 작품을 발표했다. 의 제목을 받아 보고는 한글과 영어를 혼합하여 중의적인 표현을 담아내려는 표기에 재미있는 감상을 품었는데, 이전 작품들에서도 적극적으로 기호를 사용해왔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떤 동일성이랄까에 반가움을 느끼게 되었다. 문구/텍스트지만 기호성을 품고 있는 이들의 제목은 웹에서 무수히 보았으며, 생성하고, 스러진 이미지를 향해가는 어떤 것 같다. 동시에 ‘동시대적’이란 표현을 쓰지 않아도, 아주 동시대적인, 우리 시대의 것만인 폐쇄된 시간감 또한 느끼게 한다...
2023.12.28 -
[리뷰]기택 님, 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 <故 임기택 님의 9개월이 2023년 9월 14일 00시 00분 별세하였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기택 님, 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글_배선희 ‘그 사람 요즘 어떻게 지내지?’ 연락할 사이는 아니지 싶다가도 문득 소식이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올해 내게 기택 님은 ‘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극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 나누던 기택 님이, 인스타를 켤 때마다 프로필 사진의 동그란 테두리가 빨갛게 빛나며 반짝이던 기택 님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는데, 나는 그가 요즘 통 안 보인다는 사실을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아차렸다. 사람들은 종종 SNS를 지우기도 하니까, 기택 님도 인스타를 지우셨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아주 오랜만에 DM을 받았을 때, 사뭇 놀라고 당황하였다. “제가 지난 9개월여 동안 잘 못 지냈는데요(?) 다행히 이제 어느 정도 일상생활은 가능할 정도로 회복이 되어서 가까..
2023.12.15 -
[리뷰]영화가 보여질 때: <영화의 사도들>
영화가 보여질 때 글_박동수 리뷰에 앞서 아프리카 영화에 관해 잠깐 이야기해보자. 기나긴 식민지 역사 속에서 아프리카 각국은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영화적 대상이거나, 제국주의적 프로파간다를 위한 영화만이 생산되거나, 프랑스령 식민지의 경우처럼 영화제작 자체가 금지되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하나둘씩 독립하기 시작한 1960~70년대가 되어서야 독립적인 영화제작이 시작되었으며, 영화사가들은 우스만 셈벤(Ousmane Sembène)의 (1966)을 최초의 아프리카 영화로 꼽는다. 이후 (1972)의 사라 말도로르(Sarah Maldoror), (1973)의 지브럴 좁 맘베티(Djibril Diop Mambéty), (1987)의 슐레이만 시세(Souleymane Cissé) 등이 등장했고, 아프리카 작가주..
202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