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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시공간 속 좌표 찍기. 그리고 별자리 잇기. : 상상만발극장1<연극철지남>
시공간 속 좌표 찍기. 그리고 별자리 잇기.상상만발극장1 글_정진웅 점 하나 공연 제목을 음미한다는 핑계로 꽤나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다가 뒤늦게 공연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공연은 8월의 무더위 속에서 진행됐고, 달이 바뀌면 더위가 물러가고 가을이 오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추석 연휴에도 내내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다. 철이 바뀌지 않는 기괴한 기후 속에서 신촌 거리의 '철 지남'을 곱씹어 본다.상상만발극장1은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4에 참여해 8월 16일부터 사흘간 신촌 스타광장 일대에서 공연을 올렸다. 점 둘 공연 안내소로 가는 길. 예약 시간은 19시 20분. 저무는 해가 머쓱하게 씨익 미소를 띠며 당당히 얼굴을 들이미는 열대야 앞에서 이미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였다. 이 날씨에 야외에서 하는 ..
2024.09.24 -
[리뷰]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어딘가로: 프로젝트 여기에서저기로<한남 제3구역_이주의 날 파이널>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어딘가로프로젝트 여기에서저기로 〈한남 제3구역_이주의 날 파이널〉글_김은우 당신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시나요? 어떤 장소와 그 안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보광동은 2003년 한남 뉴타운 지구 중 제3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2024년 첫 주민 이주를 시작했다. 프로젝트 여기에서저기로는 이런 재개발을 앞둔 보광동을 소재로 2021년부터 이라는 지역기반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2021년 보광동을 무대로 한 온라인 줌 연극과 2022년 두산 아트랩 공연, 2023년 보광동의 갤러리 아쉬랩에서 월간 연극, 그리고 2024년 5월에는 보광동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여정의 마지막을 나누는 을 공연했다. 프로젝트 여기에서저기로는 남선희..
2024.08.06 -
[리뷰]유실된 그 모든 가능 세계: 안티무민클럽AMC<한 방울의 내가>
유실된 그 모든 가능 세계 안티무민클럽AMC 〈한 방울의 내가〉글_박주현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다음 대사로 시작한다. “당신 삶을 이야기로 만들긴 쉽죠. 하지만 그보다 어려운 건 실제 기억을 견디는 거예요. 현실은 냄새 나고 더럽죠. 그리고 단순한 결말로 끝나지도 않아요. 지금 내게 영향을 미치는 건 실제 기억이죠.” 1) 〈한 방울의 내가〉는 물방울의 위태로운 표면 장력과도 같이 기억을 견디는 이야기다. 그것은 관계에 빚진 기억이고, 더는 만나거나 만지지 못하는 몸에 관한 기억이다. 비밀과 약속으로 들어찬 하나의 몸이 유실된 가운데, 그의 몸과 나의 몸이 빚어낸 눈부신 기억은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 극장은 본래의 쓰임을 다한 (구)대사관저 건물이었다. 두 개의 거실, 한 ..
2024.07.16 -
[리뷰]구멍에 빠진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자 : 배선희<구멍난 밤 바느질>
구멍에 빠진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자배선희글_박주현 1. 집이라는 극장 〈구멍 난 밤 바느질〉은 배선희가 사전 제공한 수기 약도를 따라 배선희의 집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약도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관성적으로 카카오맵을 따라가다 불현듯 멈춰 섰다. 확대도 되지 않고 건물명을 속속들이 알려주지도 않는 구멍 난 약도에 의지해 걷다 보면, 지리라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된다. 배선희가 어떤 얼굴로, 어떤 속도로, 어떤 상태로, 어떤 생각에 잠겨 이 길을 걷고 또 걸었는지 지도는 말해주지 않는다. 반면, 배선희의 수기 약도는 시공간을 압축하여 최적의 지름길로 등 떠미는 대신 여러 경우의 수를 펼쳐 보인다. 지친 배선희, 슬픈 배선희, 기쁜 배선희, 풀 죽은 배선희, 죽고 싶은 배선희, 도망치고 ..
2024.05.02 -
[리뷰]글이 목소리가 될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This is what we think> 북토크
글_이청 리뷰에 앞서, 이따금 문화예술 장애인 접근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 참석할 때가 있다. 그런 자리는 대부분 주최 측에서 유의미한 대화를 기대한다며 다양한 인사들을 모아주신다. 모든 자리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열에 일곱은 비장애인들끼리 머리를 맞댄다. 그럼 나는 한껏 눈치를 보다가 결국 슬쩍 손을 들어 질문할 수밖에 없다. 비당사자들끼리만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고. 는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두 시각장애인이 경험한 공연과 전시에 관한 생각을 담아냈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다가오는 온도가 다르다. 물론 책의 서두에 나온 내용처럼 두 사람의 이야기가 모든 시각장애인의 견해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절실한 시기에 이 책이 뜨겁고도 찬란하게 그 포문을 열었음은 확실하다...
2024.03.18 -
[리뷰]향해가는 페이크 : 다이빙라인<단델re:ON>
향해가는 페이크 다이빙라인 글_허영균 re:ON 관람 후의 감상을 적기 위해 한참 후에 책상에 앉았다가 이 공연을 만든 이들은 누구인가 뒤늦게 궁금해하게 되었다. 창작집단 다이빙라인은 2019년을 시작으로 을 제외하고도 일곱 편이 되는 작품을 발표했다. 의 제목을 받아 보고는 한글과 영어를 혼합하여 중의적인 표현을 담아내려는 표기에 재미있는 감상을 품었는데, 이전 작품들에서도 적극적으로 기호를 사용해왔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떤 동일성이랄까에 반가움을 느끼게 되었다. 문구/텍스트지만 기호성을 품고 있는 이들의 제목은 웹에서 무수히 보았으며, 생성하고, 스러진 이미지를 향해가는 어떤 것 같다. 동시에 ‘동시대적’이란 표현을 쓰지 않아도, 아주 동시대적인, 우리 시대의 것만인 폐쇄된 시간감 또한 느끼게 한다...
2023.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