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31. 18:35ㆍFeature
욕망과 두려움 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 온 아이
글_지혜로운 늑대의 전사
삶이 아주 지치고 힘들고 외롭게 지속되던 그 언젠가, 아파트 단지로 난 길을 걷다가 투닥거리며 걸어가는 젊은 엄마와 어린 아들을 마주친다. 그 연극 속으로 도피하고 싶다는, 삶으로부터 도망하여 그저 내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았으면 좋겠노라 하는 소망이 차오른다. 그것은 아마도 뭇 여성들의 로망. 혹은 일종의 상처의 치유. <기차는 일곱시에 떠나네>라는 소설에서 여자는 다른 사람의 아이를 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 껴안으며, 그 아이를 안고 달아나고픈 충동을 가만히 내려누른다. 안젤리카 리델의 공연 <인간을 신뢰하는 인간에게 저주 있으리>에서는 질펀한 찰밥이 젯밥처럼 쌓인 낮은 탁자를 사이에 둔 채 한 중국인 소년과 노란 원피스의 스페인 여자가 마주앉는다. “왜 울어요?” “내가 낳지 못할 아이들을 생각하느라.” “이제부터는 나를 생각하세요.” “나는 날마다 너를 생각해.”
한편 중학교 2학년 때의 어느 수업 시간, 누워있기에는 배가 너무 무거워 침대 매트를 동그랗게 파고 거기 배를 끼운 채로 엎드려 자고 싶다던 만삭의 윤리 선생님으로부터, 아기의 기저귀를 지나치게 자주 갈아주면 아이가 커서 결벽증에 걸리고 지나치게 띄엄띄엄 갈아주면 지저분한 아이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덜컥 두려움에 휩싸였던 적이 있었다. 엄마의 사소한 습관이나 방심으로 아이의 일생이 그토록 휘청거리는 것이라면, 우리는 과연 엄마로서 바르게 설 수 있을까. 그토록 숨 막히는,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 되는, 엄마라는 그 굴레를 감당할 수 있을까. 흔히 우리는 내가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것들을 내 아이에게 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 같은 욕망의 삐딱한 대물림도 어린 나의 시선으로 볼 때 엄청난 문제였다. 아빠는 오빠에게 강압적이었고, 그게 싫었던 오빠는 자기 자식에게 자유방임인 아빠가 된다. 그 지나친 수수방관에 질려버린 오빠의 아이는 커서 자기 자식에게 강제적인 부모가 된다. 인간이기에 서로에 대해 영원히 부족할 수밖에 없는, 영원히 서로의 욕망의 반대편에 서서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거나 생채기를 낼 수밖에 없는 그 가없는 역사가 나를 허무하게 했다. 게다가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능한 한 잘 서게 된다 하더라도, 그를 둘러싼 사회라는 굴레는 또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가령 저 어마어마한 교육열로 하여 나도 나의 아이도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 위험한 어른들의 손길로부터, 친구들의 따돌림으로부터 어떻게 아이를 지켜낼까. 집 밖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 내 아이가 끝내 함구한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알 수 있을 것이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예술가엄마의 육아일기’는 2012년 인디언밥이 새롭게 꾸려지던 태동의 시기부터 (한 남성 편집위원에 의해) 강력하게 추진되었던 프로젝트이다. 어렵고도 특별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그들의 담담한 이야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기록해 보고자 하는 소박한 기획이었다. 그러나 ‘예술가엄마’라는 말 속에는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아도 결코 만만치 않은 두 개의 이름이 결합되어 있다. 예술가, 엄마. 그 어마어마한 무게의 이름으로 그들을 불러냈던 것에 대해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모든 예술가에게 엄마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자명한 이치로, 엄마인 예술가, 또는 예술가인 엄마는 주위에 아주 많았다. 섭외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엄마가 속한 예술의 분야라든지 아이의 연령 등이 매회 변수로 고려될 뿐이었다.
2012년 인디언밥에 자신의 육아일기(일기의 형식은 목소리 녹음이나 인터뷰, 또는 직접 쓴 기록 등으로 다양하다)를 남겨준 예술가엄마는 총 다섯 분이다. 주황이 엄마 황혜진 연출, 은호 엄마 이래은 연출, 꼬미 엄마 염혜란 배우, 유하 엄마 김지인 기획, 그리고 나모 엄마 이주야 연출. 그들의 소중하디 소중한 아이들 중에는 백일이 갓 지나 뒤집기를 시작한 아기도, 일곱 살을 훌쩍 넘어 엄마와 사랑의 밀당을 하는 아이도, 또 이제 막 심장소리를 들려준, 꼬물거리는 뱃속의 아가도 있다. 그리고 그 엄마들은, 각자 처한 상황이나 환경은 달라도, 모두 한결같이 아이가 가져다준 새롭고 경이로운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세계, 또는 그 존재 자체가 “많이 공허하고 쓸쓸하고 마음 둘 곳 없이 부유하던(황혜진 연출)” 자신에게 따스한 빛이 되고 있음을, 곧 그 아이가 자신의 예술임을 그들은 담담히 고백한다.
그 여자는 자라고 자라고 자라고 또 자란다. 놀라운 생명력으로 매순간 자라난다. 새싹처럼 삐죽 돋거나 봉오리처럼 봉곳 맺히거나 꽃처럼 화알짝 피거나 나뭇잎처럼 짙푸르게 무성해진다. 그 생명력은 늘 놀랍고 감탄스럽다. 그리고 존재만으로 아름답다. 인간의 성장을 지켜본다는 것처럼 놀랍고 신비로운 일이 어디 또 있을까. 게다가 그 인간이 나를 사랑해주기까지 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오늘도 촉촉한 눈망울로 그 여자는 내게 말했다. “엄마, 은호는 엄마 사랑해.” 극도의 고통과 불안, 극도의 환희와 안정이 교차한다, 그 여자와 함께 있으면. 미운데 좋다. 무서운데 행복하다. 답답한데 기쁘다. 불행한데 고맙다. 이러니 내가 예술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래은 연출, <그 여자, 은호> 中)
그러나 그들은 또한 자연히, ‘예술가엄마’라는 이름으로 각자가 처하게 된 어려움과 그것을 조장하는 사회적 구조의 부당함을 고발하기도 한다. 가령 예술가가 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 했던 지난 시간이 무색하도록 너무도 급격히 그저 ‘임신한 여자’라는 단순한 상황 속에 갇히게 돼버렸던 황혜진 연출은 “여자들에게는 자기만의 삶이 아기를 가지기 전까지밖에 없구나”하는 우울한 생각에 빠졌던 적이 있었고, 임신한 여자 티를 내는 게 싫었던 워커홀릭 김지인 기획은 “공연장에서 일한다는 건 일반 직장인들과 비슷한 시각에 일을 시작해서 공연하는 사람들과 같은 시각에 일을 끝내야 하는, 일종의 투 잡을 뛰는 것과 같았다”는 말로 아기를 뱃속에 잉태했던 10개월의 시간을 회상했다. 또 지난 9일 건강하게 딸을 출산한 염혜란 배우는 꼬미를 처음 가졌던 당시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라는 연극에서 남편에게 날마다 구박받고 구타당하는 서면댁 역을 연기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너는 아주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야”라고 말해주는 대신 스스로 “나는 못났어, 나는 배운 것도 하나 없고, 맞는 것도 내가 바보 같아서 맞는 거야”라고 되뇌어야 했던 그녀는 배우가 아이를 뱃속에 둔 채 공연하는 일의 아이러니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했다. 한편 화천에서 극단 식구들과 터를 일구어 살고 있는 이주야 연출은 “우리는 힘들어도 즐겁게 살고 있지만, (아기는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게 아니므로) 아이한테까지 우리의 어려움과 힘듦을 전해줄 수는 없기 때문에” 아기를 갖지 않으려 했던 때를 회상하는 한편, “나모를 데리고 예전처럼 연출을 하거나 조명을 달러 다닐 수는 없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여전히 ‘연출가 이주야’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물론 이들은 저 다양한 곤란과 부당함을 불평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넉넉히 이기고도 남을 엄마의, 예술가의 단단한 힘을 내비친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살뜰하고 다정한 그들의 목소리 너머에서, 저 얽히고설킨 구조와 억압(어쩌면 누구의 탓이라고도 할 수 없는)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인디언밥에서 글을 쓰며 내가 만났던 모든 독립예술의 실태는 어쩌면 결국 이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었던 것일지 모른다.)
얼마 전 개봉했던 <가족시네마>라는 옴니버스 영화의 네 번째 작품 <인 굿 컴퍼니>는 이 같은 현실적 모순을 조명한다. 어느 작은 문학 출판사가 갑자기 큰 기업의 사보 제작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정신없이 굴러가는 중에, 만삭인 몸으로 초과업무를 감당할 수 없는 한 여성 대리가 권고사직을 당한다. 그것을 철회할 때까지 업무에 복귀하지 않겠노라는 젊은 여직원들의 보이콧이 이어지고, 자기가 임신했던 시절 회사에서 물러나는 게 당연지사였던 풍토를 운운하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는 대리를 고깝게 보는 여자 과장과, 만삭인 아내가 일을 그만두고서도 어린이집에 불려 나가 도움을 주는 것에 짜증을 내는, 권고사직의 장본인 남자 팀장 둘만이 모른 척 업무를 계속한다. 마치 개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인 것처럼 보이는 그 행위들 배후에서, 회사와 권력과 사회의 그림자가 은밀하게 운행한다. 결국 여직원들은 보이콧을 하나 둘 철회하고 그 그림자에 다시 합류하고, 업무는 여전히 쉴 틈 없이 이어지며, 오늘도 연장되는 일정 속에서 과장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제시간에 데리러 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이 모든 여자들을 향한 팀장의 윽박지름. “왜 다들 자기 생각만 해? 회사 나고 사람 났지, 사람 나고 회사 났나?” 그 시각 부모가 제때 데려가지 못한 아이들을 돌보느라 홀로 어린이집을 지키던 팀장의 아내가 갑자기 쓰러지게 되고, 팀장은 양수가 터져 의식을 잃은 아내를 낯모르는 아이들과 함께 응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데려가면서 이 모든 미친 짓거리에 진저리를 친다. 어린이집을 맡기고 나갔던 원장과 선생이 허겁지겁 달려와 팀장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한 아이의 엄마는 병원으로 뛰어와 아동유괴범으로 신고하겠다며 팀장의 뺨을 때린다. 어린이집 선생은 딸아이의 생일임에도 결국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아이와 통화하며 눈물을 흘리고, 오늘도 아이를 데리러 가지 못한 과장은 유치원 선생님께 연신 사과의 전화를 하며 출판사 책상에 앉아 손을 부벼댄다. 그리고 그 순간, 한 생명이 또 태어난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여성과 임신과 육아와 사회의 모든 얽히고설킨 관계, 그 굿 컴퍼니를 무덤덤하고도 의뭉스럽게 폭로한다. 실타래같이 뒤얽히고 교차하는 시선들, 초조한 손들, 곤란함과 치졸함들, 그리고 눈물의 이미지들은 실로 강렬하게 가슴에 박힌다. 다음 순간 영화는 슬로우비디오로 팀장의 우는 얼굴을 보여준다. 처음 그 우는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그가 유괴범으로 몰린 신세며 여직원들의 지긋지긋했던 행패 탓으로 속상하여 우는가 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것은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향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혼돈에 빠졌다. 고통과 불행으로 우는 얼굴과 지극한 행복으로 우는 얼굴의 일그러짐은 참으로 기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 얼굴의 감추어진 밑바닥이나 함축된 진실이 아닌, 말하자면 행복 또는 불행이라는 부연이 아닌, 그 일그러짐 자체가 나를 울고 싶게 하였다.
▲영화 "가족시네마" 중, <인굿 컴퍼니>의 한 장면
<인 굿 컴퍼니>에서 찌질한 팀장 역을 멋지게 연기했던 이명행 배우는 지난 5월 <지금 우리에게 광주는>이라는 제목의 인디언밥 좌담에 참여했던, 그 자신 이미 ‘예술가아빠’인 사람이다. 어느 인터뷰를 보니, <푸르른 날에> 주인공을 맡았던 그 즈음 그는 배신과 고문과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인물을 연기하는 스트레스 탓으로 당시 집에서는 지극히 못된 남편 못된 아빠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를 주인공으로 모실 번외 편 ‘예술가아빠의 육아일기’ 프로젝트는 여전히 추진 중이다.) 한편 그 좌담에서 광주 출신 예술가로 참여하여 활발하게 과거를 성토했던 이은서 연출은 당시 뱃속에 아기 연두를 잉태 중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전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씩씩하고 당찬 모습 그대로, 출산을 불과 2주일 앞둔 때까지 창작에 전념했던 그녀는 요즈음 웹페이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 같은 소식들을 전한다.
“연두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집에 잘 찾아왔어요! 아들이라는 반전^^;;”
“조산원에 대여섯명의 아가가 있는데 연두는 그 중에서 배냇똥을 제일 많이 싸서 남들이 무척 부러워한다. 난 우등생 엄마가 된 기분이라 우쭐했다. 여긴 우등생 기준이 바깥세상과 다른 독특 미묘한 세계라 재밌다. 나도 왕년에 한똥했지...”
“오늘 내리는 눈을 보면서 연두랑 같이 라디오를 들었는데 눈에 어울리는 피아노곡이 나왔다. 연두에게 나중에 멋진 소년이 되어서 엄마랑 콘서트 가자고 데이트 신청을 했다. 예전에 훈훈한 소년들을 보며 나도 강동원같은 아들을 낳아 같이 데이트하며 살아야지 하는 로망같은 게 있었는데 정말 아들이란 게 생길 줄이야... 하지만 그 로망이 실현되긴 힘들 것 같다. 일단 내 남편이 강동원이 아니고 그 나이 돼서 연두가 나랑 놀아줄지 모르겠다.”
“아기의 눈은 무척 까매서 눈을 맞추고 있으면 아기 눈에 비친 내가 보인다. 마구 혼자 말 걸고 있는 내가 보여서 금세 민망해진다. 그래도 그 분은 말이 없으시다. 응답하라 연두연두.”
“저녁을 먹고 연두를 안고 라디오를 들으니 ‘베사메무쵸’가 나온다. 금요일을 맞이하야 한바탕 뒤뚱거리며 춤을 추었다. 불금이란 이런 것. 아이에게 리듬 있는 생활이 중요하다. 이제 금요일은 춤추는 날로 정한 거다. 콜?”
무지개다리를 건너 온 연두와 연두엄마의 이토록 아름다운 미래의 풍경과, 이명행 배우의 고통스러웠을 당시의 무대 및 현실과, 그보다 전에 이미 촬영이 마쳐졌던 <인 굿 컴퍼니>의 살벌한 이야기. 이 모든 것들이 5.18 광주를 다루었던 그 좌담의 시간 속에 이미 배태되어 있었다는 식의 다소 과장된 상상을 하노라면 기분이 묘해진다.
어찌하여 모든 것은 그토록 하염없이 뒤얽혀 있는 것이며, 그러는 가운데 어찌하여 그토록 끊임없이 새 생명은 우리에게 선물처럼 오는 것이며, 예술이건, 자식이건, 엄마이건, 어찌하여 그토록 가없는 욕망과 로망과 두려움과 부담의 줄타기 속에 우리는 놓이게 되는 것일까. 어찌하여 우리는 일그러진 얼굴로 울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어찌하여 그 얼굴은 절대적인 절망에도, 절대적인 행복에도 그토록 가까운가.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이렇게, 그 큰 절망과 행복을 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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