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단편선과 선원들 <동물> 발매기념 콘서트 후기 @상상마당 라이브홀

2014. 9. 11. 15:36Review

 

"출렁출렁 두려운/즐거운 항해"

단편선과 선원들 <동물>

발매기념 콘서트 후기 @상상마당 라이브홀  

 

글_김송요

 

 

두려움

사실 음악 공연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웠다. 일단 나는 음악을 자주, 챙겨서, 일부러 듣는 일을 게을리 한지 오래고, 그러면서 음악을 듣는 능력이 퇴화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니까 공연을 봐도 그것에 대해 쓸 수 있는 어휘가 극히 줄어들고, 그러므로 ‘좋다’와 ‘별로’가 아닌 다른 평을 과연 할 수 있을지 겁이 나고.. 그런 상태였기 때문이다. 친구가 대신 기획해 준 아이폰 음악 재생목록을 남(자)을(를) 꾀는 데 쓰면서 마음속으로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 고귀한 컬렉션을 날려먹은 뒤 자력으로는 SM엔터테인먼트가 독점계약한 듯한 컬렉션만을 구성할 수밖에 없음에 좌절감을 느끼면서, 딱히 내 취향이 싫거나 부끄러웠던 적은 없지만 그 폭이 너무 좁은 것 같다는 생각만큼은 지울 수 없었다.

단편선과 선원들에 앞서 무대에 오른 게스트 백현진이 무반주 노래와 함께 이야기를 했을 때 비로소 나는 조금 안심했다. 그가 ‘생각해 보니까 무대에 올라왔다고 꼭 노래를 하진 않아도 될 것 같아서’라고 운을 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도 깜박이는 커서 앞에서 겁먹지 않고 공연에 대한 얘기를 과감히 안.. 한다는 건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하면 되지 않나 싶어서.. 덕분에 용기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연이어 그가 자기희생을 통하여 믿을 수 없는 어른남자의 표본-유명인 얘기를 계속 하는 오빠/아저씨/선배/선생님-을 보여주는 동안 나도 그를 따라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인용할 유명인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으므로 그건 바로 포기했다.

 

 

마스터

내 나름 용기를 얻기는 하였으나 막상 첫 기타 소리가 울리자 긴장이 돌아왔다. 귀가 밝은 친구들과 음악 공연을 보면 적어도 한 가지 부문에선 두렵지 않게 된다. 누가 단련된 연주자인지를 파악하는 데서다. 듣는 힘이 좋은 사람들은 협주 사이에서도 누가 능숙한 연주자고 누가 실수를 많이 하는지, 누가 박자감각이 부족하고 누가 손이 느린지를 바로 알아듣던데, 나는 연주자가 웬만큼 잘하거나 못하지 않는 이상 잘 알아채지 못한다.

모 댄스 경연 프로그램에 ‘마스터’ 자격으로 출연한 인물의 자격을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라는 건 사실 거짓말이고 갑론만 있었지 을박은 없을 정도로 모두가 그가 ‘마스터’라는 데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무용수가 전문성을 가져야 할 다른 부분들에 집중하는 대신 그들의 연기를 평가하겠다고 말하고는 했다. 그때는 나도 그게 웃긴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잘 모르는 공연을 보고 있자니 내가 바로 그 ‘연기를 평가하겠습니다’를 하고 있었다. ‘바란스’며 테크닉이며, 그런 것은 모른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을 볼 뿐이다..

 

 

아이돌

단편선과 선원들은 꽤 시각적인 그룹이다. 라고, 그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보면서 나는 결론지었다. 무지에서 비롯된 뻔뻔함의 소치 같기도 하지만, 실은 이들을 관찰한 결과 이들이 상당히 아이돌스러운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했기에 하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편선과 선원들은 무언가 엄청난.. 아이돌적인 옷을 입고 무대 위로 등장했다. 옷에 줄이 달려 있고 펄럭펄럭한 여분의 천도 붙어 있는, 그러니까 경제성보다는 심미성을 추구한 오뜨꾸뛰르풍 의상을 착용한 것이다. 알고 보니 그것은 앨범 화보 촬영 때 입었던 옷이었다. 앨범 자켓을 찍을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발매 기념 콘서트를 하다니 실로 아이돌이나 다름없었다. 문득 올해 상반기에 컴백한 E모 그룹이 프로모션 후원사에서 협찬 받은 옷을 입고 화보를 찍은 뒤 해당 후원사가 협력한 쇼케이스에서 그 옷을 입고 나왔던 것이 생각났다. 그 외의 무대에선 결코 그 옷을 입지 않아서 얼마나 아쉬웠던지... 단편선과 선원들의 의상은 아마 그들에게 원할 때 입을 권리가 귀속된 듯하니 안심이다. 금색 밧줄이 달린 ‘선원’ 복장이란 얼마나 지시적으로 근사한가.

 

 

거기다 이들의 공연은 아예 스툴을 놓고 앉아 토크 시간을 갖는, 이른바 <박정근의 스케치북>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공연이 있기 불과 며칠 전 무죄 판결을 받아 선량한 시민으로 인정받은 엠씨 박정근은 단편선과 선원들보다 더 많이 긴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로 인해 단편선과 선원들 각각의 포지션이 부각되었다. 단편선과 선원들에는 각자의 포지션, 밴드니까 내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당연히 포지션이 있다는 걸 알겠지만 그것 말고, 아이돌 같은 포지션이 존재한다. 바이올린의 권지영과 베이스의 최우영, 보컬 단편선과 퍼커션 장도혁 네 사람이 저마다 맡은 1호방하고 소리 잘 지르는 누나(호연지기가 쩔지만 쿨허세가 없으며 하는 일에 소녀적 충실함 갖춤) 2조용히 할 말 다하는 동생(주로 덕후를 양산하는 강한 흡인력의 소유자) 3신비의 나라 우주 저멀리로 대화의 흐름을 보내는 자(그러나 이런 사람이 사실 비평에 엄청난 재능이 있다) 4선후천적으로 뛰어난 정석 아이돌(SNS를 하지 않으며 만인에게 상냥하여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남들이 공공재로 삼자고 함)이 그것이다. 아마 아이돌은 물론이고 <노다메 칸타빌레>의 R☆S 오케스트라도 능가할 것이다.

두 장발의 장발 퍼포먼스 역시 정말 훌륭하다. 단편선은 그가 추구하는 보아 풍의 금욕적인 전사 스타일로 머리카락을 휘두른다. 아틀란티스 소녀 같은 머리카락 흩날림이 인상적이다. 드럼스틱과 다리 근육, 머리카락의 삼위일체 퍼포먼스는 또 어떠한가. 드럼 솔로잉 때 굽슬거리는 머리카락을 어깨 너머로 촤르륵 날리던 장도혁의 액션은 돌이켜 생각해도 역대급 ‘조련’이다. 나는 이때까지 머리카락으로 하는 제스처 중에선 ○○를 할 때 머리카락을 ○ ○○ ○○○ 것이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나의 신념을 깨 버리고 말았다. 어휴 그만 생각해야지.

 

 

강중약

공연이 중반 가까이 흐르면서 무언가가 생경하다고 느꼈는데, 잠시 생각해 보니 그 느낌은 ‘강약중강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청각적인 영역에서 그러했다. 여태 공연을 보거나 앨범 전체 트랙을 재생하면, 전체 흐름을 통해 각 트랙의 강약을 구분할 수 있었다. 좋게 말해 강약이 있는 것이지, 사실은 신경 쓴 타이틀곡과 적은 레이어로 대강 완성한 트랙 채우기용 곡이 선연히 분간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공연에는 ‘약한’ 곡이 없었다. 아이돌로 치면, 소속사는 팬 송이랍시고 우리 천년만년 사랑하자 풍의 가사를 넣어 만들어 놓았으나 곡의 완성도는 전체 앨범에서 귀에 밟힐 정도로 낮은, 뭐 그런 곡 말이다. 물론 그런 곡은 주로 콘서트 앵콜무대에 쓰이곤 하니 뭐랄까, 그 순간 그 무드에서 외나무다리 효과-환경이 만들어낸 생리적 현상이 심리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착각하는- 같은 것이 작용하기에, 결국 그런 곡에도 애정을 주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음은 사실이지만.. 아무튼 <동물>에는 그런 ‘덜 된’ 곡이 없었다. 모든 곡이 꽉꽉 차서, 주걱으로 깎아내거나 용량보다 덜 담거나 하는 요령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전에 몇 번 보았던 회기동단편선의 공연과도 사뭇 달랐다. 내 기억으로 그는 약간.. ‘으으’ ‘으어어’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선원들의 음악은 그보다는 ‘우우우!’ 하는 힘찬 에너지가 있다. 기본적인 사이키델릭함은 남아 있지만 조금 더 둥개둥개하는, 인류애를 실천하는, 그러나 종교적이지는 않고, 그러나 박애주의자 같은, 그런 맛이 느껴진다. 뚝 부러지는 대신 유연한 ‘포크포크함’이 살아있다.

 

 

그러면서도 다 다른 느낌으로 ‘강’이다. 요컨대 어떤 곡들은 조약돌 사이사이 자갈과 모래를 흘려넣어 빈틈을 조밀하게 채워 넣은 것 같았고 (그래서 밀도는 높지만 흔들면 조금은 쌕쌕 부딪히는 소리가 날 법하기도 했다), 어떤 곡들은 탄성이 짱짱한 끈들을 쫑쫑 엮어서 굳이 매듭을 지어 마무리하지 않아도 풀리지 않을 것 마냥 여문 느낌을 주었다(여물긴 하지만 끈의 재질이 고무나 스판덱스라서 딱딱하진 않고 벌리면 벌어질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깨달았다. ‘나는 연주자가 웬만큼 잘하거나 못하지 않는 이상 잘 알아채지 못’ 하는데, 이 팀은 엄청 잘하니까 잘한다는 걸 바로 실감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 곡도 모두 꽉꽉 차 있었고 구성원들의 능력치도 고르게 뛰어나면 아무리 막귀여도, 아무리 ‘눈에 보이는 것만 보려’고 해도 균형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학술적 근거는 모릅니다)에 의해 그것을 알아차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뿌듯하다’로 글을 끝내야 할 것 같은 이 흐름을 무시하겠다. 뿌듯할 것은 나보다도 단편선과 선원들이다. 아주 많이 뿌듯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만큼 몹시 정말 좋기 때문이다.

 

즐거움

아직도 음악 공연에 대한 글을 쓰라고 하면 자신 없기는 매한가지지만, 잘 된 공연의 관객으로 앉아 있는 기분이 상당히 즐거운 것임은 알게 되었다. 하긴, 그 오디션 마스터도 ‘훠우’ 같은 효과음을 내며 즐거워하긴 하였지. 그렇게 생각하면 내게 자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지만, 자질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꽉 차게 들리는 음악이란, 꽉 차 있는 아이돌(!)이란 이렇게 만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임을 느낀다는 건 얼마나 유쾌한지. 또 <동물>을 들어야지. 

 

 

*사진출처_KT&G 상상마당

**음악가 단편선 SNS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pyunsun.dan 

 

 필자_김송요

 소개_느낄 수 있는 모든 것에 호기심도 애정도 욕심도 많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혹해 대학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습니다. 꾸준히 감각의 그릇을 키워서 넉넉한 감정을, 이야기를 고봉으로 담아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