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23. 11:20ㆍReview
2014 악산밸리 페스티벌
"현대인은 한강에 갔지
거기서 음악을 들었지"
글_정진삼
1. 도시에서 빠져나와
아파트 사이를 걸었지. 굴다리를 지났지. 여긴 한강고수부지. 눈을 돌렸지. 그 곳에 축제가 있었지. 크지 않은 무대와 작지 않는 무대가 있었지. 저도 모르게 소리내서 말했지. “이런 축제라니... 음악이 있고 바람이 불잖아.” 누군가가 더했지. “여름이 지나가고 있어.”
조금 더 걸었지. 축제로 다가갔지. 아니지. 음악은 내 귀에 흐르고 있었지. 그러니까 우린 이미 축제 속에 있었던 거지. 사람들이 밝게 웃고 있었지. 음악이 너울거리고 있었지. 그것은 기타소리였고, 여자 보컬이었고, 락이었지. 그러니까 밴드음악이었지. 밴드 이름은... 뭐였지.
갑작스런 행복이 난처하지. 어디 돈을 내야 하는 거는 아니겠지. 시끄럽다고 민원넣어야 하는 거는 아니겠지. 이거 개발하자고 전화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사업하자고 구상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지. 그런 정말 아니지. 왜 좋지. 이유도 생각하기 전에... 그냥 좋지!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한강이 있는 삶이라고? 흥.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급히 화를 내지. 하지만 음악 소리에 묻히지. 신경질은 밴드의 퍼포먼스에 대한 진실한 반응처럼 여겨지지. 도시에서 빠져나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인지, 한강의 리듬에 적응하는데 걸리는 진통인지.
즐거움이 어색해서 무대 너머로 시선을 향하지. 강남의 아파트는 꿈쩍도 안했고, 올림픽 대로는 자동차로 꽉 막혔지. 종종 앰뷸런스가 누군가를 실으러 가는지, 혹은 싣고자 가는지 왱왱대며 지나갔지. 소리내서 물었지. “우린 어디에 있지?” 답이 돌아왔지. “악산밸리 페스티벌”
2. 미안하다 현대카드
밸리(valley)? 골짜기는 아니었지. 서울의 배꼽(belly), 한강에서 열리는 락-페였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리듬이 제자리를 찾는 공간은 여기 뿐이겠지. 사유(私有)화 할 수 없는 ‘플로우’ 가 있는 곳. 거기서 우리의 리듬은 32비트 EDM(댄스)에서 8비트 ECM(재즈)로 변했지.
도시의 축제는 일종의 상품이지. 그걸 사려고 기를 쓰지. 5만원 10만원 15만원. 결재한 축제는 SNS에 올리지. 스펙타클 없는 건 즐길 수 없지. 사진을 위해 축제에 가지. 물론 그게 현대인이 즐기는 방식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 허나 그건 축제가 아니라 숙제지.
하지만 이 축제는 뭐지. 0만원 0천원 0백원. 게시판에 올릴만한 라인업도 없지. 지불 없이 즐긴 건 티낼 수도 없는데. 사진보다 실물이 더 잘나오지. 재작년이 처음이었다지. 대기업 주최 페스티벌에 반발해서 만들었다지. 퍽킹 지산, 우린 악산! 3년이나 용케 버텼지.
1회 때 지산의 ‘라디오 헤드’와 맞선 악산의 ‘라디오 헤딩’ 이 있었다지. 그래도 ‘creep’ 은 양쪽에서 떼-창 했다지. 2회 때 악산축제가 싸운 대상은 비바람이었다지. 날씨 때문에 망했다지. 그리고 그해 사라진 건 지산 락페였지.... 그리고 이번엔 현-카 ‘시티 브레이크’ 와 같은 날이라지.
축제감독은 말했다지. “뼈빠지게 알바해서 페스티벌 티켓을 사서 노느니, 그 시간을 페스티벌을 직접 만들어 보는 데 함께 쓰며 경험을 공유하는 일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고. 치! 당연한 말이지-만 새삼 멋지지. 역시나 가장 멋진 건 그걸 ‘사는(buying)’ 게 아니라 ‘하는(doing)’ 거지.
3. 축제의 리듬 속으로
음악을 들었지. 바람을 맞았지. 웃음을 지었지. 멍하니 있었지. 그러고 있으니 멈출 수 없었지. 그래서 계속 그러고 있었지. 혀끝을 타고 넘어가는 맥주도 시원했고, 깔루아 밀크도 달달했지. 허나 취할 수도 없었지. 나에게 한번 찾아온 축제를 그냥 보내기가 아까워서.
모호하고도 분명한 축제였지. 예산은 모호했지만, 음악은 분명했지. 주최는 모호했지만, 관객은 분명했지. 누군가 만들었고, 모두가 즐겼지. 자아는 모호했고, 도취는 분명했지. 감정은 모호했지만, 감격은 분명했지. 많은 뮤지션들이 접속했지. 장르는 잡탕이었으나 맹탕은 아니었지.
큰 무대에선 불타는 버스, 부즈업, 후림 씨어터, 더 본드 오브 블루 터틀랜드, 히든 플라스틱이 락이었지. 어쿠스틱하는 맥스킴, 재즈하는 리프레쉬, 젬베하는 칸, 스카재즈하는 오리엔탈 쇼커스, 포크음악하는 예스예스, 아티스트 차지량의 퍼포먼스와 뜬금없는 시낭송, 그리고 정체모를 마스코트도 있었지.
작은 무대에선 포크하는 묘묘, 전자음악하는 플래닛 캔디, 어쿠스틱하는 두시이분과 재수좋은날이 있었지. 누굴 보았고, 무얼 들었고, 꽤나 즐겼는데 누가 누군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 근데 다들 음악을 잘해서 놀랐지. 이러면 반칙이지. 그리고 그가 있었지. 야마가타 트윅스터지.
망한 시대의 음악물인지, 망한 음악의 시대물인지. 모르겠으나 ‘값’ 없는 시대의 ‘깝’ 있는 음악가지. 가성대비 최고의 뮤지션이지만 가성은 쓰지 않지. 애플 맥북 프로그램으로 만든 저렴한 멜로디가 깔리고, 밑도 끝도 없는 가사가 얹혀지지. 난리부르스라기 보단, 난리디스코지.
4. 새로운 배치가 필요해
대출이자 대추리~ 시간이 갈수록 나이 나이를 국물을 눈물을 흘리고~ 신사아파트 투기 대출이자~ 이자삼자사자오자육자칠자팔자 팔자 좋구나~ 이어지는 노래는 후쿠시마 러버 그대 무릎에 누워~ 자 다음은~ 김밥쌀밥볶음밥현미유기농현미~ 찹쌀떡쌀밥~ 찰지니까 찹쌀이지 이사람들아~
근데 이 양반은 순서 끝났는데, 작은 무대로 옮겨서 멋대로 노래했지. 너무 좋아서 그냥 남겠다고 했지. 그도 알았겠지. 여러 축제를 가봤겠지만, 이렇게 엄밀하게 ‘배치’ 된적 있었나. 투쟁-현장에서 맞-상대가 관객으로 현전할 때, 가수는 어떻게 놀아나야 하는가. 그런 질문들이 온몸을 통과했겠지.
강남의 현대인들에게 둘러싸여 춤추고 노래한다는 일말의 흥분과 우롱하고 메롱한다는 한말의 죄책감을 느꼈겠지. 누가 뭐래도 이 축제가 실은 엄청난 아마추어의 증폭이고, 거대한 농담의 현장인 것을!!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목소리를 높여 멀리 나가 더 많은 반복을 하며 외쳤지.
you 돈만 아는 저질! you 돈만 아는 저질! you 카드만 아는 저질! 야마가타가 가리키는 대상은 즐기기도 하고, 멋쩍어 하기도 하지. 무대에서 100미터는 떨어진 곳으로 돌파하여 시비를 걸지. 살아있는 민폐폭탄. 레이지 어겐스트 더 댄싱 머신.
사람들이 박수를 치지. 손에 손을 겹치지. 사람들이 미소를 짓지. 주름에 주름을 겹치지. 행복은 더해지는 게 아니라 곱이 되지. 현대인들은 멋도 모르고 즐거워하지. 자기를 놀리는 노랜줄도 모르고.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떠오르지. 우린 모두 야마가타 트윅스터를 따라 가겠지.
5. 축제 이후의 축제들
이 무지-막지-한 도시는 구성원들을 청맹과니로 만들지. 도시의 건축들, 도시의 사물들, 도시의 욕망은 취향을 하나로 수합하지. 진부한 리듬이지. 그렇게 나온 게 도시형 축제지. 시청각적 볼륨이 높은 만큼 값이 매겨지지.
악산은 달랐지. 가장 낮은 곳에 있지. 그리하여 물이 흘러 드는 곳. 자전거도 경사 없이 굴러가는 곳. 그곳의 음악이지. 진보한 리듬이지. 굴곡 없는 평평한, 평등한, 평화로운 음악. 도시를 깨뜨리기 보단 끌어안기. 중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관으로 감상하기.
매개체가 있다면 들숨날숨의 공기들이지. 음향을 실어 나르는 바람이 있었고, 시각(視覺)을 채워주는 것은 전자(電子)들이 있었지. 덕분에 막춤을 출 수 있었지. 선율을 따라 박자를 맞추고 미소를 흘려보낼 수 있었지.
그러니까 내년에도 기다릴거지. 살아남아 가장 강한 것이 되기보단, 의미있게 지속하는 길을 택한 악산밸리의 미련을 밀어줄거지. 세월호 이후의 축제들이 어떤 길을 갈지 지켜볼거지. 재미있는 것을 조건없이 공유해주는 친구 같은 축제로 남아주길 바라면서지.
현대인은 한강에 가서 축제를 보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었지. 그날 악산에서 나는 엉터리 시인이 되었다가, 야매 기자가 되었다가, 최고의 관객이 되었다가, 한강의 시민이 되었다가, 저녁이 있는 사람이 되어 돌아왔지. 나의 일기는 이렇게 끝. 그날은 행복했다지. 자 여기까지.
▲2014 악산밸리 페스티벌 야경 (사진제공_악산밸리)
*축제사진_악산밸리제공, jin3 *악산밸리 페스티벌 SNS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aksanvalley **지난 1회 악산밸리 락페스티벌 리뷰 바로가기 >>>http://indienbob.tistory.com/598
축제를 만든 사람들 축제감독 : 악산 디자인: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4학년 최규성 스텝: 박진영, 이미소, 박연주, 한솔, 임윤선, 안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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