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문학이라는 실재 <ringringring 반지가락지고리>

 

문학이라는 실재

 

<ringringring 반지가락지고리> @플랫폼 팜파

 

글_김민관

 

Intro: 퍼포먼스로부터 수렴되는 전시에 대한 기록

작업은 퍼포먼스에 대한 기록으로, 전시 중에   열린 퍼포먼스  마지막 퍼포먼스를 말한다. 하지만 이는 전시의 예외적 사건으로 의미를 두어 전시와 별도로 기록하고자 함은 아니다. 1층만의 평소 전시가  자체로 완결성을 갖지 않았다는  역시 불충분한 설명인데, 3층까지의 퍼포먼스가 1 전시장을 흐름상에서 포함하고 활용하되 사실  속의 오브제들을 일종의 의미 없는 사물로 의미화시켜 사실상 전시를 불완전하게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퍼포먼스는 전시를 ‘무관심하게 수용했다. 그리고 이는   없는 전시를   있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전시는 사실 퍼포먼스가 시작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배치들이었고, 퍼포먼스는 거꾸로  전시가 이미 퍼포먼스를 위한 장치이자 무대라는 것을 (아마도 전도된 결과일  있지만) 믿게 했다. 따라서 퍼포먼스에 대한 기록은 완성되는 전시 자체에 대한 기록일  있다(라고 주장하며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부재를 증명하는 존재들의 공백

▲ <ringringring  반지가락지고리 > 의   등장   인물과   공간   배치 . ZMC 의  1 층과  3 층의  Z 는   다른   배우 / 퍼포머이며 , M 은  1 층에서  3 층으로   이동한다 .  관객   역시   이를   따라  1 층에서  3 층으로   이동한다 . 2 층에서  Z 와  M 은   잠깐   존재한다 ―Z 는   잠깐   앉아   있었던   것   같고 , M 은   이동하는   동안만   존재한다 ( 이는   관객의   이동에   따른   시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 Z 와  M 은   부재하는  C 와의   관계   속에   존재하며 , Z 와  M  둘의   관계는  ( 거의 )  없다 . Z, M, C 의   구분은   실제   퍼포먼스를   보고   판단한   것이   아닌 ,  브로슈어   정보에   따른   것이다 . Z 는   김은희 ,  이재윤   배우가 , M 은   허다빈   배우가   각각   맡았다 .

 

관객은 1층의 전시장에서 (2층에서는 신발을 갈아신고) 3층으로 올라갔다 다시 돌아오는  차례의 장소 전환을 겪으며  명의 퍼포머/인물을 만나게 된다―1층의 전시장은 퍼포먼스를   3층으로 확장되는  경로가 된다. 그중 둘은 Z 지칭되고 다른  명은 M으로 지칭되는데, 이는 기실 외부적인 정보인 일종의 브로슈어를 통해서다그러니까  공연만을 보고서는 이러한 정보는 판단하기 애매하거나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모호한, 문학적으로 수렴되는 지칭은  공연 혹은 퍼포먼스가 지시하() 어떤 중핵으로 보인다. 지금부터 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C 빈집에서 Z M C와의 관계, 경험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현실적인 배경 아래 펼쳐진다면(원래 차고였던 전시장으로 활용된 1 공간을 제하면, 팜파는 기존 주거 공간이다), 1 전시장에서는 자동 기계 인형 같은 Z 저장된 기억과 문구를 반복한다.  

사실상 중요한  Z M C와의 관계를 증언하는 차원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C 등장하지 않는 대신  말들에 의해 존재하게 된다. 동시에 C 집은 실재적인 것들로 그의 삶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공간의 장소 특정성은 하나의 알리바이라는 사실을 기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C라는 존재가 없음으로써,  정확히는 그가 현재 여기 없음이 끊임없이 상기됨으로써  집이라는 존재가 Z M, 나아가  공연을 초과하고 있음을 은폐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C 등치될  있는 집을 제외하면, C 현재 없음이라는 사실만이 남는다. 그리고 C와의 관계를 주억거리는 Z M 존재는 C 부재로 구축되고 보증된다. 

M 벽에 붙여진 글이 적힌 종이의 문장을 읽는 것에서, 이들은 말하는 이가 아니라 읽는 이로 변화하곤 한다,   내용으로부터 객관화된다. 그것은 관객 우리 역시 읽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은 다른 이의 , 그러니까 문학이 그렇듯  번도 우리 앞에 존재한  없던 이의 말을 읽는 것이고, 그는 중간중간의 더듬거림과 버벅거림으로  간극 차원의 시도를 드러낸다. 거기에 아마 C 이름이 있었던 듯하다. 

결국 우리가 어떤 순간에  작품을  이상 온전히 보는  아니라 읽고 있음을 보는 것처럼, 연행은 환영의 차원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환영이라 지시되고 있음을 인지하는 차원에 가깝다. 부재하는 C 지시하는 동시에 그런 C 기대는 Z/M 헐거운 현존은  메아리로, 혼잣말로   공간을, 실재하는  집의 견고한 사물들을 지시한다. 이에 따라 관객의 현존 역시 매우 헐거워진다. 여기서 C Z/M 관계는 C 온전히 구성해내기보다 C 대한 파편적 기억들 사이에서 Z M 누수되는 과거의 구멍들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무엇도 구성해내지 못한다.

실재 앞에 미끄러지는 말들, 아니 미끄러지며 실재를 만드는 말들 

Z 브로슈어에서 배우  명으로 지칭되며, 1층과 3층에서 만나지 않고 마치 평행 우주처럼 존재한다. 1층의 Z 기억의 시간들에 갇힌 자동 인형이라면, 3층의 Z C 없는 결격의 현재를 기억과의 투쟁을 통해 끊임없이 부인한다. 과거의 시간을 단순히 증언하는 전자에 비해, 후자는 과거의 시간이 현재를 침범하는 증상적 현재의 시간까지를 드러낸다. 과거가 넘쳐 흐르며 현재는 초조해진다. 그리고 M 1층과 3층을 오가며  다른 환경을 잇는 듯한데, 1층이든 3층이든 같은 현재의  공간에 있는 Z M 사이에서는 어떤 관계도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3층에서 Z M 관계는 각자의 시간이 같은 장소를 다른 지층으로 분리하며 존재한다( 시간은 저장된 기억, 말이 구성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이 문학적 시간, 우리가 침입할  없는 시간으로 접히는 것을 경험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과거의 시간을 상기하는 ,  과거의 적힌 시간을 읽는 , 이를 보는  결국 우리가 문학을 접하는 방식이 체현되고 있음이다. 우리는 퍼포머들과 관계를 맺을  없고 단지 스크린처럼 그들을 보는 이러한 시간을 연극의 관습을 따라 4 벽이라 지칭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연극의 톤과 발성을 통해 구현되는   , 결국에는 글임을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작품은 문학의 서사를 재현하기보다 문학의 공간을 구성하고자 한다.  

반지 가락지 고리라는 제목이 영어로 모두 ring이듯, 다른 장소에 위치한  성이 다른 배우 모두 Z 수렴하듯 <ringringring 반지가락지고리>에서 번역은  많은 것을  적은 것으로 변환한다, 또는  반대로도 작용한다. 여기서 언어는 세계를 단순화시키기보다 세계의 여러 다른 가능성을 완전히 펼치지 않은  무한한 시간에 머물러 있다고 해야  것이다. 마치 쓰인 벽의 종이에 글이 발화될  현재의 말이 되는 것처럼.  

어떻게 말해도 해소될  없는 사랑의 말들은 돌고 돈다. 로맨스에 포함된 모든 이들이 고립된   집안에서.” 앞서 말했듯, 말들은 실재를 가리키는 대신 부재하는 실재를 묵묵히 증언하는 사물들 앞에서 반복적으로 미끄러진다. 그리하여 수많은 말들은 실재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대신 실재와의 간극들이 이루는 자신만의 충만한 세계를 내세우기에 이른다. 어쩌면 등장하지 않는 C 그런 의미에서 가득  공간을 채운 관객 각자로 수렴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방치되는 사물-관객들

전시 기간은  일주일이  되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그중 퍼포먼스는  차례 이뤄졌으며, 전시의 오브제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한시적인 시간에 머물  있었다. 그것은 반쯤 가동되거나 방치되었다. 1 전시장의 옷걸이(통상 ‘행거 불리는, 지지대와  사이 봉에 옷을 거는 형태) 앞에서 Z   옆으로 몸을  때마다 1년의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 !” 하고 수신호를 보내는데장갑   손이 위치한 포스터의 도상이 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시간의 덧없음, 숫자놀음은 1, 그리고 3층의 모니터에 돌연 뜨는 일련의 같은 숫자들이 가리키는 시간으로도 이어진다. 

이는 시계와 같이 일관된 시간이 아니라 ‘점지되는 어떤 순간으로서만 의미를 띠고자 한다. 가령 7 이어진 시간은 존재할  없는 시간인데, 이러한 숫자는 증감을 하며 불연속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가리키는  아니라 시간이 기억과 장소에 묶여 있음을 의미한다. 1층의 Z 역시 무한한 시간  특정 시간(기억) 정박되어 있다현재의 시간은 흘러도  고유한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옷걸이 앞을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서 몸과 장소는 기억을 충실히 증언한다.

옷걸이가 Z 일상을 반영하고 Z 움직임에 조응하는 측면이 있다면, 옷걸이  전시장의 다른  편의 사물들은 3층의 집에 있던 사물들처럼 기능하지 않고   시간, Z M에게는 충만했던 따라서 현재의 결핍으로 반향되는 시간에 위치한다. 이는 Z M 직접적인 영향의 가시권을 벗어나 관객에 조응하며 시선의 대상이 아닌 방치된 것이 된다관객은 Z M 움직임에 인도돼 세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러한 사물처럼 관객 역시 방치되어 있다고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의미 없는 사물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각성되는 일부의 사물들이 아닌 방치되는 ‘무수한 사물들, 하지만 궁극적으로 Z M 세계, 내폐적인 웅얼거림을 만드는 세계의 일부임은 중요한 사실일 것이다.  

Outro: 장르 너머의 장르

단순하게 이야기해보자. 문학이란 말들을 배우들이 말하며 연극이 된다. 문학이란 말들을 배우들이 말하되 전시장에서 출발해 현재의 주거 공간에서 말함으로써 장소 특정적인 퍼포먼스가 된다. 퍼포먼스는 전시장에서 출발해 전시를 퍼포먼스의 컨텍스트로 전유한다. 또는  반대로 퍼포먼스를 위한 잠재태로서 전시는 준비된다. 말들은 캐릭터를 출현시키는 대신 문학이라는 공간으로 수렴한다. 따라서 <ringringring 반지가락지고리>에는 크게  가지 장르가 겹쳐져 있다. 연극, 문학, 미술. 

표면적으로 미술이 문학을 연극으로 치환하는 형식적 배치로써  작업을 구현했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작업은 C 부재 자체를, 그리고 전시장의 오브제들을 ‘멈춰 있음으로 전시한다. 말들이 순전한 발화가 아니라 서술이 되고,   누구의 말도 아닌 벽의 표면들에 붙은 책의 파편들에서 출현하듯 문학이라는 형상을 만든다. 그러니까 우리가  것은 우리가 읽은 어떤 이미지들이 아닐까. 

*사진제공_플랫폼 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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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_김민관

소개_아트신(artscene.co.kr) 편집장. 예술을 체험하고 기록한다. 다양한 예술 아카이브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고자 한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탐문과 함께 비평적 관점으로 동시대 예술의 계보를 재구성해 나가려고 노력중이다. 한편으로 예술(계)이 더 좋아질 수 있는 환경과 이를 위한 개인적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다. 

 

플랫폼 팜파 작가 지원 프로젝트 [등장 登場]

heartXmindZ ringringring 반지가락지고리≫

[아티스트 소개]

heartXmindZ(하트엑스마인드제트)는 김지우,이지윤으로 구성된 퍼포먼스 연극 기획 그룹이다. 조각, 설치를 주 매체로 다루는 김지우와 비디오 매체를 다루는 이지윤이 상호적으로 매체적 관점을 주고받으며 퍼포먼스를 만든다. heartXmindZ는 한국의 미신,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한 헛된 믿음과 같은 주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극장 안에서 발생하는 연극적 시간에 접목하여 극을 기획한다. 2018년 겨울 <예언자Z가 알 수 없는 것>을 기획하며 결성되었다.

[퍼포먼스]
5.27(월) 19:00
6.1(토) 17:00

[전시]
5.28(화) - 6.1(토) 11:00-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