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음, 공원 <신촌공원>

 

 

다음, 공원

 

쉐어 프로젝트 : 실험실  4호실 <신촌공원> @서교예술실험센터

 

 

글·사진_이아

 

*이 글은 1990-2000년대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여성들의 보편적인 시대감성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필자 주를 일일이 달아놓는 대신 잘 모르는 용어는 독자분들이 직접 검색창을 이용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또한 본 작품 및 리뷰에서 소재로써 다뤄진 특정 팬덤문화에 대하여 필자는 어떠한 동의나 반대도 표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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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시절 우리가 열렬히 사랑했던 남자'들'이 있다. 그런 그들을 가장 강렬히 환기시키는 매개체는 무대 위 명가사보다 지면 위 명대사 아니겠는가. 무대 위에서는 빛을 내며 우리를 웃게 한 한 편 지면 위에서 종종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던, 돌덕질史 한 켠 한 쌍의 커플을 한 줄의 문장으로 불러내보자.

-너구나, 8반 이쁜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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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동방신기가 데뷔했고 이어 2세대 아이돌들이 줄지어 나오기 시작한 격동의 2000년대 중반 여중에 다녔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 없던 당시 각 학교 금손들의 연습장이 수업시간과 쉬는시간 바삐 교실 내 각 분단을 옮겨다녔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경우에는 다음 카페 등지에서 숨죽여 활동하던 존잘들도 더러 있었다.

다음 카페는 1세대 아이돌 때부터 무수한 팬덤들의 온라인 활동 근거지이자 팬픽을 비롯한 팬메이드 콘텐츠의 거대한 유통망으로써 기능했다. 주된 향유층은 단연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의 여성들이었다. 사회에서 주류로 인정받지 못할지언정 인터넷에서는 늘상 논쟁의 중심에 서있었다. 내 가수를 위해, 나아가 내가 속한 팬공동체를 위해 대중의 편견과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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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와 40대 게이들은, 그들이 선호하는 업소를 망하지 않게 하고 꾸준히 새로운 가게가 더 생길 수 있도록 소비를 할 만큼 돈을 번다. 그러나 레즈비언들은 40대, 적어도 30대 레즈비언을 만날 장소조차 없다. 이것은 레즈비언들에게 ‘종로’가 없어서가 아니다. 갑자기 100개의 업소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고 해도, 다음 달이면 다 망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레즈비언은 그 업소들을 먹여 살릴 돈이 없기 때문이고,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레즈비언으로서’ 소비할 준비가 된 30대부터 40대의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레즈비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성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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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질감의 영상이 객석 앞 스크린에 재생된다. H.O.T.의 <행복>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무대영상이다. 도입부부터 후렴구가 나오기 전까지 토니와 우혁의 파트가 유독 많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 아니리라. 1절이 끝나자 영상은 정지되고 배경화면의 폴더 하나가 열린다. 한글파일로 된 텍본들이다. 0_0완결단편 [[퍼옴소설]] 나는 [장지서님]-톤혁. 폴더명을 미루어 보아 압축해제한 상태 그대로다. 단편 치고는 편수가 꽤 많다. <1>.hwp가 실행되고 스크린 양쪽 바 스툴에 앉은 두 명의 여성이 손에 든 프린트 뭉치를 넘긴다. 공연 시작 전 관객들에게 나눠준 박하사탕을 입 안에 굴리며 마른 침을 삼켰다. 아, 설마.

 

아홉 편의 팬픽 낭독은 낭독자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흡사 전쟁과 같았다. 낭독자들은 내적 자아와 매 분 매 초 싸우며 작품을 완성해갔고 관객들은 오그라드는 손발을 사수하기 위해 때때로 눈을 질끈 감고 스크린에서 고개를 돌렸다. 한계가 올 때마다 낭독자들은 냉수를 들이키듯 바나나우유를 빨아들였다. 수위가 높은 장면—이를테면 키스씬—에서는 박하사탕을 녹여먹는다. (이미 공연 시작 전 이로 깨어먹은 필자는 묘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객석 중앙에 앉아 프로젝터 뒤에서 무덤덤하게 스크롤을 내리며 원하던 반응이라며 속으로 희열을 느끼고 있을 지 모를 이성직 연출을 한 번 쯤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지독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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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픽은 실제 인물에 가상의 캐릭터성을 부여한 호모 로맨틱-섹슈얼 서사가 주류다. 정확한 연령대를 가늠하기 어려우나 대략 10-30대를 아우르는 여성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독자층 또한 비슷한 커플링 취향을 가진 여성 팬들이다. 생산의 주체와 소비의 주체인 여성들 모두 (해당 멤버들에 한한) 헤테로 로맨틱-섹슈얼 욕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은 일면 아이러니하다. 멤버의 실제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철저히 여성 팬들의 기호에 따라 커플링이 형성되는 것이다.

 

팬픽이 여성 주체가 욕망의 대상을 적극적으로 대상화하는 2차 창작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여성 작가에 의해 쓰인 남성 화자의 말을 다시 여성 낭독자의 입을 통해 발화시키는 것은 남성 중심 서사인 팬픽이 본래는 여성의 언어로 직조된 것임을 환기한다. 희곡과 유사한 형식으로 지문 없이 대화와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어 낭독에 적합한 텍스트를 잘 선택했다. 1인 다역을 소화하는 두 낭독자의 티키타카tiqui-taca 역시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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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이 끝난 후, <행복> 2절 무대 영상이 마저 재생되고 그 뒤로 신촌공원을 담은 시퀀스가 이어지며 신촌공원의 장소성을 환기하는 문구로 끝이 난다. 낭독이 진행되는 내내 한쪽 벽면에는 당시 팬들이 H.O.T. 멤버들을 코스프레한 사진이 띄워져있다. 남자 아이돌이라는 페르소나를 외화하여 연기하는 코스프레는 팬픽에 비해 보다 주체적인 형태인 한편, 과거 신촌공원을 장악했던 레즈비언 여성들의 놀이문화이기도 했다. 팬픽 창작자들과 코스어(코스튬 플레이어)들의 욕망이 서로 다른 결로서 서브컬쳐를 형성해나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흔해진 낭독극 형식이 이토록 신선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다만 신촌공원을 비롯하여 이번 쇼케이스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소재들을 이후 작업에서 어떻게 풀어나갈 지 기대와 우려가 동반된다. 쇼케이스에 버금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필자_이아
우리는 무엇을 작품이라 부르고 무엇을 작업이라 부르고 있을까요? 비평은 지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POST PAGE COTTON BALL

[쉐어 프로젝트 : 실험실]

4호실 권아람, 이성직 <신촌공원> 쇼케이스

일시 : 2019 6 16 () 오후 4

장소 : 서교예술실험센터 예술다방

원작 : H.O.T 톤혁팬픽 <나는>(장지서 )

출연 : 라소영, 정다함

구성 기록 : 권아람, 이성직

신촌공원은 19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다수의 10 레즈비언들이 점유했던 전설적인 문화 혼종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 그곳은 그때의 흔적과 에너지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시간의 누적과 퀴어 공간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들은 그곳의흔적 지운 것처럼 보인다. 장소는 단순히 장소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과거일지라도 공간의 부정은 그곳에 머물렀던 이들의 주체성도 함께 부정하게 된다. 프로젝트는 신촌공원의 기억을 상업 공간이나 실내가 아닌 야외의 공공 장소에, 중첩된 소수자성을 가지는 10대들이 주체가 되어, 다양한 퀴어 문화를 형성했던 흔치 않은 게릴라적 현장으로 해석하고, 기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신촌공원이라는 공간에 새겨져있던 퀴어 공간 혹은 문화 혼종적인 공간의 흔적을 환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