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좌담]쥐와 물: 연극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라운드테이블 下

2022. 5. 1. 14:45Feature

쥐와 물: 연극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라운드테이블 下

 

2022. 3. 23.
우지안(연출, 출연) | 하은빈(움직임) | 현호정(각색, 출연) | 양효실(작가, 미학자) | 이연숙/리타(작가, 비평가)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는 배수아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다.
2020. 12. 19. 신림중앙시장에서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이 취소되었고, 2022. 3. 5. - 3. 6. TINC에서 초연되었다.

©우지안

리타 배수아의 <우루>에서 기억나는 게 ‘뒤에서 보는 눈’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래서 사람이라기보다는 초월한 눈, 신의 느낌이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섬광 이런 것들... 근데 연극에서는, 청중을 향해서 말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분명히 우릴 보면서 말했고 그것 때문에 배수아의 신적인 초월과는 완전히 거리가 생겨 버리는. 우리를 보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때도 엄청 울었고. 진짜 왜 이렇게 많이 울었는지?

은빈 마지막에 지안이 천 속에서 춤을 출 때 호정이 저주에 가까운 위로를 해요. “당신은 실패해. 사랑하거나 사랑받는 일에. 살아가거나 혹은 살게 하는 일에.” 다시 말해서 “당신은 뭐든지 못할 거다.” 근데 이후에 그 말을 한 사람이 엄청나게 강한 확신을 가지고 다시 이렇게 말해요. “연극이 끝날 때까지, 관객들이 다 자리를 비워도 나는 너와 함께 있을 거야. 그러니 고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이 사람이 경험한 죽음 혹은 실패, 너무 끔찍해서 버리고 떠나보내버린 어떤 종류의 실패만이 이 사람 곁에 영원히 남아서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야” 말하는 것처럼 느꼈어요. 네가 너무나 일생에 걸쳐서 절망스럽고 외롭고 고통스럽겠지만, 누군가가 너와 함께 있을 거야. 그것은 너의 죽음이야. 그래서 한 사람이 우루라면, 다른 한 사람은 우루의 죽음, 우루의 실패, 가장 최악의 세계의 우루. 그래서 관객에게 들리지 않는 귓속말의 내용은 ‘그것은 당신의 죽음이다’라고 생각했어요. 

효실 그건 약간 이미 봐왔던 작업들 같은 생각이 들어서...

리타 저도 은빈 님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이해를 했는데, (효실이)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많은 작업들이 실패와 나의 관계라든지, 트라우마를 통해서만 구원되고 회복되는 이야기잖아요. 그것과 구분이 되는 지점이 뭔지 알고 싶었어요. 만약에 메시지라는 게 있다면 마지막에 쳐다보면서 한 얘기라고 저는 이해를 했어요.

효실 저는 두 성인 여성의 몸이 계속 미숙한, 여성성을 벗겨낸 몸으로 보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레즈비언의 관계처럼 보이지만 레즈비언 담론으로도 안 된다고 하니까 약간 다행이기도 하네요. 연출가님의 이전 작업 <2020 메갈리아의 딸들>과도 아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작품이었어요. 어떻게 두 개의 전혀 다른 작품을 했는지? 보통은 한 계열로 가는데. 어떻게 보면 자기 해체인 거고. 두 개의 타원형 거울을 배치하고 빨간 모래가 메인인 세팅은 어떻게 나온 거예요?

지안 미술감독 전인님이 거울을 쓰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한 사람이 거울에 비치면 여러 사람으로도 보이기도 하고, 거울상 움직임도 하니까 우루의 세계관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얘기를 해주셔서. 모래를 쓰는 것도 인님 아이디어였고요. 궤적이 그려지잖아요. 제가 무대에 모래 쓰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안느 테레사Anne Teresa 작품 중에 하얀 모래 위에서 계속 피겨 하듯 발로 궤적을 그리는 작품도 레퍼런스로 사용했어요.

효실 되게 좋았어요. 여러 사람들이 되게 창의적인... 가장 빛날 땐가?

리타 그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 않아요? (웃음)

효실 너희는 추락할 것 밖에 안 남았어, 너희는 죽을 거야. (웃음)

리타 모래가 놀이판이기도 하고. 실뜨기도 하고 고무줄놀이도 하잖아요. 그런데 죽은 사람을 끌고 나올 때는 완전히 피의 궤적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완전 난장판이 돼서 피투성이처럼 보이기도 해서. 노는 장면이랑 되게 폭력적인 장면이 동시에 보이는 효율적이고 영리한 장치라고 생각했어요. 극이랑 너무 잘 어울렸어요.

효실 모든 박자가 너무 잘 맞는. 공간 자체도 간유리를 통해서 시간이 개입하고요.

리타 다른 장소였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계속했는데...

지안 정식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하는 게 기준이었어요. 버려진 장소에서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게 게릴라 연극의 조건이라서요. 마케팅 차원에서 그렇게 홍보하긴 했지만 게릴라 연극은 아닌데요. (웃음) 하지만 게릴라 공연의 특성을 장소에서만큼은 가져가자, 기존의 용도가 있고 흔적과 시간성이 묻어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효실 공연하면서 객석도 좀 봤나요?

지안 완전 보여요, 가까워서 아예 구분이 안되거든요.

효실 관객을 읽었어요? 아니면 읽을 새도 없이 그냥...

지안 시간이 엄청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내가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게 의식이 되니까 텐션이 즉각적으로 왔던 것 같아요. 지금 뭔가를 주고받고 있다, 아니면 내가 지금 멈칫 하다가 완전 져버렸구나.

효실 그렇죠. 퍼포머한테는 굉장히 불리한.

지안 좋기도 했어요. 작품이랑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마지막 장면은 특히 그렇고... 관객과 퍼포머가 아예 섞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경계가 흐려지니까.

호정 연습을 되게 많이 해서 주의를 흩뜨려도 대사가 입에서 나오고 있었거든요.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계속 객석을 보면서 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관객들이 버거워한다, 부담스러워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효실 당연하죠, 들어갈 수가 없는데.

호정 되게 무서워하는 느낌을 받아서... 서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느낌이 되게 좋았고. 공연을 할 때 정신없이 지나간다고 느끼기 쉽잖아요. 그런데 저도 오히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일 초 일 초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효실 어떻게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걸 다 외웠어요, 근데? 외울 수 없는 문장들인데 그걸 외웠다는 게.

지안 연극이라는 건 처음과 끝이 있고 그 사이를 채울 수 있는 언어와 몸이라는 도구가 있는 거잖아요. 이걸로 만들고자 하는 게 어떤 선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게 원작에서 포착한 파편적인 이미지들로 구성된 세계라면. 원작이 말하듯 “우리는 기억을 모두 잃었고,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 감각의 세계일 뿐이다”, 그러니까 기억하는 건 없고 느낄 수밖에 없다면. 그 감각의 세계를 사람들이 냄새를 맡듯이 느끼게 하는 것, 공연이 끝난 뒤 ‘이게 뭐였지?’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였어요.

효실 언어가 다른 두 사람이 말을 하니까 몸이 더 많이 동원되어야 하고 말은 발성법 때문에 아름다울 것 같고 그러므로 이 사람이 나를 해치거나 모욕 주려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게 상대의 눈빛이나 화법으로 감지되는 그런 상황과 비슷한 것이다, 이것은. 말은 관계에 사랑에 별 도움이 안 되죠. 눈빛이면 다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 공연이 연극이라기보다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했어요. 몸이 앞서고 언어는 몸을 치장하는 장식일 뿐인.

은빈 움직임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한데요. 움직임이 별 맥락 없이, 서사에 별로 부합하지 않거나 복무하지 않고, 뭘 설명하지 않고...

효실 이거는 서사가 주도하고 몸이 사라지는 그런 게 아니잖아요. 어쩔 수 없이 몸이 먼저 나타나고 서사가 작동할 수밖에 없는 그런 퍼포먼스여서, 둘의 몸이 겹쳐지고 그다음에 대칭을 이루고 반복하고…

은빈 그럴 수밖에 없는 공연이지만 그걸 보는 게 길어지거나 하면 힘들 수가 있잖아요.

효실 우리는 이미 지루함에 빠져들었는데요?

리타 언제 빠져들었어요?

효실 이미 지루하기로 예정된 거잖아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내러티브가 없으니까.

리타 지루하기를 기다렸는데 저는 별로 안 지루했어요.

효실 지루함을 재미없다로만 볼 수는 없죠. 오히려 그것은 지금 이곳의 상황, 흐를 뿐인 시간이나 정지한 듯한 공간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머리는 쉬고 대신에 감각들이 등장하는 기회 같은 것. 요즘처럼 넷플릭스니 왓챠니 유투브니 이런 새로운 플랫폼들이 늘어난 상황에서 서사는 정말 지겨운 것이 된 것 같아요. 어느 날은 서사 없는 그냥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거의 정지해 있는 그런 영화나 드라마를 찾다가 전원을 꺼버리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이 지루한 연극을 맘껏 즐긴 사람이 저입니다. 

리타 저는 원래 몸이 나오면 못 참아요. 사람들이 움직이고 눈 쳐다보고 이러면 되게 부담스럽고, 힘들고, 감당이 좀 안 되고,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본인도 모르는 것 같고… 근데 이건 뭔가 표현하려고 하지 않았잖아요. ’내 몸을 통해서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줘야겠다’ 이런 게 없었고, 있었던 건 반복하기, 단순한 행동하기, 또는 느리고 늘어지는 움직임. 뻗어나가는, 발산하는 게 아니고 좁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예술가 자아의 어떤 나르시스트적인 기쁨이 아니라, 사물적이거나 동물적인 움직임인 거잖아요. 죽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고 또 아픈 사람일 수도 있고, 그런 걸 지켜보는 느낌이었어요.

효실 지금 계속 뭔가 말이 빠져나간다?

리타 어떡해요, 그럼? 저도 그래요 지금.

효실 설명해 보고 싶었어요. 내가 울었는데 누가 울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도 약간 있었어요.

리타 맞어. 어이 없어.

효실 보니까 젖었네? 이런 느낌.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나. ‘존재는 슬픔이다’, 이런 표현으로 다 들어갈 수 있을까?

은빈 움직임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움직임을 안 하고 싶은데, 관객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기가 너무 쉬우니까 드라마틱한 걸 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했어요. 관객이 안 봐주면 뭘 하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근데 애초에 드라마틱한 움직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어요.

지안 저희한테 맨날 연기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재현하거나 표현하려고 하지 마라.

호정 그런 훈련도 했잖아요. 하나의 자세에서 다음 자세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움직임을 만드는.

효실 어디서 배운 거예요?

은빈 2017, 18년에 라시내와 최기섭이 하는 ’프로젝트 이인’이라는 콜렉티브와 퍼포머로 공연을 했었어요. 그게 제 움직임 경험의 전부예요.

효실 그게 그쪽의 강령?

은빈 사실 전적으로 영향을 받았죠, 재현하지도 표현하지도 않는 움직임이라든가, 안무가 아니라 안무의 실패가 춤을 만든다는 전제 같은 것이요.

효실 <우루>에서 움직임이 잘 맞았나요. 결과적으로? 재현도 표현도 아니라고 하는 게. 원작도 그렇고 두 분의 육체성 자체도 충분히 여성성을 재현하기도 애매하고.

은빈 계속해서 두 분이 미숙한 여성이라고... (웃음)

지안 인정해요. 제가 미숙한 여성임을.

효실 여성성은 남성성의 타자로서 작동하기 마련이고 이렇게 남자들, 어른들이 안 나오는 공연에 성숙한 여성의 이미 지나 발성법이 나왔다면, 생각만 해도 어후....

리타 이렇게 얘기하면 되게 이상해지지 않아요? 우리가 막 되게 미성숙하거나 소녀 같은 몸을 좋아해서 이 연극을 감동적으로 봤다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호정 우리 몸이 그렇게 생겼긴 하니까. (웃음)

효실 아니, 이분들이 흉내를 낸 것도 아니고 키가 작잖아요, 둘 다. (웃음) 재현과 표현에 적절한 몸이 아니잖아요.

리타 고전적인 방식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증폭하기에는 어렵다.

효실 결격사유가 있지. (웃음)

호정 그리고 또 의상이 그런 것을 되게 가리는.

리타 루즈삭스 같은 것도 신었고. 사실 전 최근에 유행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그 스타일 자체가 되게 중성적인 스타일이잖아요. 요즘 많이들 입는.

지안 그런 걸 좀 지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신체가 선적으로 분절되는, 중성적이진 않지만 유년적인 느낌을 원했어요.

호정 움직임 면에서 가벼워 보이는 몸에 대해서도 신경 쓰셨잖아요.

지안 성년의 걸음걸이와 유년 시절을 연기할 때의 걸음걸이를 달리 하도록 연습했죠. 유년 시절에는 바닥에 무게를 많이 싣지 않고 거의 최소한만 디디는 수준으로 뛰어다녔으면 좋겠다.

©김태리

효실 세 분의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잠정적으로 가나요? 되게 좋아요. 흔하지 않은... 왜냐하면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방식의 연극 작업에서는 많은 경우 전형적인 여성성이 등장하잖아요. 그리고 남자가 등장한다든지, 동일성에 너무 충실하게 알맞은 몸들이 나오고 재현적, 표현적이고 분노하는. 경험에 대한 것들이 아주 강하게 각인되는.

은빈 <우루>는 처음으로 울지 않고 올린 공연이에요. 몰입해서 생긴 울음들은 있었지만, 서로를 너무 힘들게 하지 않으면서 마친 전례 없는 공연이었는데요. 그것이 공연의 퀄리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안정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가가 좋은 공연을 만드는 데에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증빙할 필요가 없는 사비를 쓴 것이... (웃음)

지안 예산이 적었지만 그 안에서는 정산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웃음)

은빈 그게 공연을 잘 만드는 데에 너무 중요했어요. 재연 얘기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칭찬을 해주시니까 벌써 두려움을 갖게 되네요. 재연 때는 분명히 좋은 것이 상실될 텐데. 

효실 장소가 워낙 힘이 있어서요. 더 크고 안전하고 많은 사람이 오는 공간으로 가면 연극 자체가 바뀌지 않을까?

지안 프로시니엄 무대나 블랙박스에서 하거나 객석이 단차가 있는 곳이면 하면 체험 자체가 전혀 다를 것 같아요.

효실 내게 이런 연극 경험이 있었나? 이상하다... 울리는 연극에서 울 때도 있거든요. 그건 어느 순간 터지는 거니까. 그것도 아니었고, 배우가 울어서도 아니고, ‘내가 울고 있는데 우니까 반갑군’ 느낌까지 드는 이상한 거였어요.

지안 다행이다. 제가 안 울면 관객들 감정이 안 움직일까봐...

효실 지안은 물기가 촉촉한 눈, 반짝이는 별 같은 눈이었어요. 은빈의 해석이 맞았죠. 좀 어른스러운 사람 같다고 했죠? 앞에서. 둘의 차이가 공감과 동일시와 나란히 있는 장면으로 보였어요.

지안 리타 씨가 아까 ‘진부하지만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좋아한다’고 하셨는데요, 저도 분명히 그 생각을 했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리타 씨가 그걸 부끄러워하게 되는 게 싫어서. 누군가에게 마지막 관객이 되고 싶다는 어떤 마음, 내가 관객을 보면서 “너는 고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내가 끝까지 너를 지켜보고 있을 거”고, 그거는 사실 네가 죽을 때, 너의 마지막 그때 너는 외롭지 않을 거고 누군가가 너의 마지막 관객이 되어 줄 거야, 그게 내가 되어 줄게. 이런 약속. 그건 누구나 듣고 싶어 하는 말이잖아요. 사실은 아무도 그 약속을 할 수가 없는데, 그 약속을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잖아요.

은빈  그 약속을 함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 약속을 하기 위해서 이미 이전에 있었던 너무 치명적인 죽음을 다시 함께 통과할 수밖에 없는. 잊고 잘 살고 있는 사람을 굳이 깨워서 (웃음) ‘우리가 이렇게 끔찍한 일이 있었지’ 하고 그리고 “우리가 의식하기도 전에 내 인생의 흰 달빛처럼 나를 통과하고 지나갔지” 이렇게 굳이 그 죽음으로 다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그런 약속이라고 생각해요. 

리타 마지막으로 제가 울었던 이유 세 번째를 얘기할게요. 쥐가 나온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지안 저도 쥐 진짜 좋아해요.

리타 원작에서는 코요테였는데 왜 쥐로 바뀌었을까. 그게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쥐는 너무 작고 숨어 다니고 더러워서인데요. 안무와도 연관지어보자면 그 동작들이 인간적, 표현적이고 자아를 드러내는 동작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엄청 작고 부드럽고 느린 움직임이어서, 이런 쥐적인 존재들과 매우 함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언어가 아직 없거나 또는 자기가 겪은 일을 설명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가, 그래서 놀이나 아니면 발로 흙을 차는 종류의 일밖에 하지 못하는 아이가 움직인다면 저렇게 움직일 것이다. 그 존재가 저렇게 말한다면 이렇게 움직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봤어요. 

효실 목소리와 제스처와 아까 얘기한 사이즈와 이 공간이 조응하고 있는.

리타 아까 효실 님이 웃기게 그리고 성희롱적이게 지적하셨지만 배우들의 사이즈, 작은 몸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하루 종일 두 사람 목소리가 귀에서 울리는 거예요. 명령처럼 울린 게 아니라 소리로서…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고 소리로 각인이 됐거든요. 또랑또랑하고 엄청 당돌한 그 목소리,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그 목소리가.

효실 미숙함은 불완전하고 노출되어 있고 취약하다는 식으로 좀 더 타자의 형상에 가까이 가 있는 표현 아닐까 해요. 그런데 그런 미숙함이 타인의 보호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아니라 성인들의 세상이 왕창 무너진 곳에서 비로소 가능할 삶의 조건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본 공연의 여러 장치들, 배우들이 마냥 좋았던 거죠. 저는. 저는 나이가 많고 연식이 되었잖아요. 후회하는 게 많은 것이고요. 

은빈 엄청 기쁘다. 왜냐하면 호정이는 행복한 쥐로서 춤을 췄잖아요.

호정 저도 쥐를 되게 좋아해서...

리타 왜 다들 쥐를 좋아하는 거냐. (웃음) 진짜 쥐 같아요. 왜 이런 거야?

호정 그 순간 야생의 행복한 쥐였거든요. 쥐일 때만 행복했어. 사람일 때는 되게 많은 일을 겪고, 스스로 미숙함을 느끼고. 근데 쥐일 때는 그냥 쥐.

효실 나도 쥐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으니까.

은빈 나만 없어, 쥐에 대한 일가견...

호정 쥐만 갖고 있는 느낌들을 코요테는 절대 갖고 있지 않잖아요? 원작에서 저희가 좋아하는 부분, 살리고 싶은 부분을 뽑을 때 코요테랑 붙지를 않았고. 코요테가 등장해버리면 우리가 다 잡아먹히는 느낌을 받았어요.

리타 실제로 우리에 들어간 코요테는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죠. 그런데 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니까.

효실 각색이 일어난 거라니까요? 배수아는 코요테고, 코요테를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고 저분들은 잡아 먹히고.

리타 쥐인 거죠.

지안 친구 담씨가 연습 때 호정이 독백을 하는 걸 보고 ‘정글짐에서 나를 밀어버릴 것 같은 아이 같다’고. (웃음)

효실 맨 앞에서는 아이는 뭐든 할 수 있는 애거든요.

리타 저는 울면서도 마지막에, 아름다움은 후회하는 거라는 말이 걸렸어요. 아름다움이 왜 후회지? 너무 낭만적인 거 아니야, 너무 퇴행적인 거 아니야? 후회랑 상실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돼서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나중에 이해를 했어요. 상실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버틸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효실 저는 안 채우고 싶어요. 그냥 남겨두고 싶어요. "아름다움은 후회하는 것이다" 라는 거를... 밑이 빠진... (웃음)

리타 원작에서 어머니 얘기가 있었는데 그것도 빠졌잖아요. 모계 부계가 다 없고 애미애비 없는 애들 얘기가 된.

지안 어른은 진짜 아예 없죠. 교사가 있고 어른끼리 만나는 장면은 있는데, 그것마저도 사실 우루들이고. 원작에서 단체 소녀들 이미지가 나오잖아요. 목이 부러져서 죽은 여자애들이나 아니면 바다로 가는 여자애들. 저희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거기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들고. 얼굴 없는,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는 여자애들.

은빈 안 그래도 상실과 회귀에 대한, 트라우마의 귀환으로 읽히기 쉬운 텍스트인데 모계 부계 이야기가 들어가면 너무 정신분석적으로 도식화될 것 같아요.

지안 이제 마무리를 해볼까요.

효실 따라가는 재미가 있어요. 계속 보고 싶네요. 서른 전후까지 연극을 하던 여러분 선배들이 있어요. 재능이 있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안 하더라고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고 함께 이렇게 하고 있는 것도 부럽고 아무튼 계속 흥분시킨다. 기대를 하죠. 제일 큰 건 ‘감사합니다’. 세 분 성정이 비슷해요. 느리고 침잠하고 관계적이고. 천상 예술가들인거죠. 말하고 주장할 게 많은 존재들이 아니라.

호정 누워있고...

리타 진짜 맞아요. 이 사람들 노래하더라고요.

모두 미주알 고주알...

 
안티무민클럽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일자 | 2022.3.5. ~ 3.6.
장소 | This is not a church(구 명성교회)


출연 | 우지안 현호정
원작 | 배수아
각색 | 현호정 우지안
움직임 | 하은빈
무대 디자인 | 전인
미술 | 전인 김태리
음악 | 나온유
디자인 | 정소영
음향 오퍼레이터 | 하은빈
하우스 | 박종주 이동휘
기록사진 | 김태리 전인
기록영상 촬영 | 김예솔비 박정연
기록영상 편집 | 우지안
제작 | AMC @antimoominclub

* 아래 파일은 "쥐와 물: 연극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라운드테이블" 전문입니다. 

[전문]멀리있다우루는늦을것이다_라운드테이블_220412_최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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