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 페인팅 퍼포먼스 <벽>

'꽃' | 페인팅 퍼포먼스 <벽>

  • 박혜강
  • 조회수 715 / 2007.07.10

"거대한 빈 벽 앞의(사이의) 허깨비 춤"?

 

요즘 들어 대안, 공공, 다양성(다원)의 이야기가 부쩍 많이 회자되고 있고, 예술계는 그러한 흐름에 '새로움'과 '실험성'을 앞세워 위의 개념을 충실하게 덧붙이고 있는 듯 하다. 최근에 전시나 공연을 가보면 리플릿에 너무도 쉽게 눈에 띄는 이러한 단어들은 기대아닌 기대를 만들어 낸다. 말은 이미지가 되고 다양한 매체들의 현란한 춤이 되고 관객의 웃음과 박수가 되어 마치 새로운 대안과 다양한 실험들이 획득된 것처럼 리플릿을 소중하게 챙겨 돌아온다. '질문'과 '기대'의 말씀이 물질로 현현한 것일까? 질문은 어디에서 출발하며, 기대는 누구로부터 나오는가?

 

지난 6월 3일 하나의 리플릿을 소중하게 챙겨들고 홍대와 신촌의 사이에 위치한 문지문화원 '사이'를 처음 찾았다. '사이'는 문학과지성사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활동의 지평을 넓히고”자 올 초에 오픈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설립취지 중 "문화 전반에 걸친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를 향한 실험"을 말하고 있는데, 위치적으로 신촌과 홍대 사이에 문화판을 벌인 것에 의도성이 있었는지 잠깐 연관시켜 보았다. 그렇다면 미래를 향한 실험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로고 >i< 에서 i가 궁금해 졌다. 단순히 institute일까? 아니면 Saii(이異, 다름)일까........... '남다르게도' 건물과 사용공간이 좀 거하게 느껴졌다.

 

▲ 입구이 있는 문지문화원 로고        

 

5월 30일부터 이곳 Saii 3층에서는 회화, 영상, 설치 그리고 퍼포먼스의 만남을 표방하는 페이팅 퍼포먼스 <벽>이 5일간 공연되었다. 비주얼시어터 컴퍼니'꽃'의 이철성씨가 연출하고 무대미술가인 유영봉씨가 시각연출을 맡고 두 사람이 공동출연을 하였다. 이 작품은 작년에 과천한마당축제에서 초연되었고, 올해 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 '새장르 공공예술 프로젝트'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내달 8월에 서울역 공연을 앞두고 있다. 또한 작년부터 꾸준히 협업을 하고 있는 변방연극제 사무국이 기획을 맡았다. 변방의 꽃이 사이에서 피어난 것일까?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3층 공연장은 전에 꽤 넓은 사무실 공간으로 활용된 듯하다. 철거되지 않은 간이벽면을 미리 동그랗게 뚫어 관객들은 '새롭고'좀 '남다른' 입장통과를 해야 한다. 벽면에는 연출된 것으로 보이는 낙서들이 보이고 벽을 통과할 때 마다 어떤 일정한 소리가 점점 커진다. 막다른 벽면에 다다랐을 때 옆 건물 벽면에 해머로 벽을 뚫고 있는 장면이 이곳으로부터 영사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실제로 그 거대한 벽면을 뚫고 있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였다. 바깥에서는 가상의 이미지가, 이곳에서는 일정한 굉음이 가상을 현실화 시킨다. 우측으로 돌아 관객들은 이 소리의 정체/이유를 기다리며 하얀 커텐막을 향해 숨죽여 앉아 있다.

 

시각연출과 무대디자인을 맡은 유영봉씨는 이번에 처음 이철성씨와 작업을 했다고 한다. 미술전시, 설치작업, 영화 미술감독 등 다방면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그가 이철성씨를 만나게 된 건 어쩌면 필연이었을까? 또한 그가 직접 출연까지 한 것은 정말 그에게 다방면의 끼와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일까?

 

누구나 자신의 손의 윤곽을 따라 그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따라 그리기'의 행위는 각별하다. 미술의 시작이 그랬고, 자기표현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유영봉의 작업일지 중-

 

여기서 '(윤곽) 따라 그리기'는 어떤 물체의 윤곽을 따라 그리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분명한데, 나는 이것이 인간의 모방행위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읽힌다. 만약 전자의 의미라면 "자기표현의 시발점"으로까지 따라 그리기의 의미가 확대될 수 있을지 조금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곡해가 아니라면 그는 어쩌면 인간의 끊임없는 모방행위(상호 참조적 행위)를 통해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의 과감한 만남과 시도가 가능했던 것이라고 믿고 싶다.

 

공연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서로를 따라하는 행위에서 시작한다. 테이블위에 흩어져 있는 마카로니를 주어먹고 관객에게 먹여주고. 그러던 중 공연스텝이 커텐 안쪽으로 일부 관객들을 안내했는데 그곳에는 커다란 흰 벽이 관객 앞에 마주하고 있었다. 커텐이 열리면 벽을 향한 일방향적인 공연이 시작된다. 한 남자는 카메라가 장착된 테이블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이 이미지가 벽에 투사된다. 한 남자는 이미지 속의 또 다른 물체가 되어 합체되고 분리된다. 그리고 처음 자신을 벽면에 세우고 붓을 들어 윤곽을 따라 그리는 행위를 다른 남자가 반복하여 시작한다. 마지막은 모든 벽면이 갖가지 색으로 페인팅 되고 종국에는 물이 흘러내려 형태를 지우면서 공연은 끝난다.

 

▲ 공연 마지막 장면.                ⓒ 비주얼씨어터컴퍼니 꽃

 

사실 메인공연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너무나 많은 상징과 기호들 때문에 공연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순간순간 벽에 나타나는 이미지가 행위자를 하나의 오브제로 만들어 버리는 것에 약간의 재미를 느끼는 정도였다.  벽에 영사된 가상의 이미지가 현실의 몸오브제를 재빠르고 쉽게 지배해 버리는 순간 사람들은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묘한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오히려 현실이 가상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을 한데모아 이심전심 탄성을 지른다. 그러나 공연은 그 재미와 희열을 지속시키지 않았다. 현실의 몸은 이미지가 그리는 억압과 폭력의 메시지에 무기력하고 절망하고 쓰러져 멈춘다. 현란한 가상과 이율배반적이 현실은 구별 없이 뒤섞여 형체를 지우고 흘러내린다.(마지막 장면) 그 가운데 영사된 가상의 몸은 나와 너를 수많은 세상의 물질(오브제)에 대입시킨다. “너는 복숭아 같고 물 같고 깡똥 같고 오줌 같고 바람 같고 비 같고 붓 같고 맥주 같고....”  

 

화가가 거대한 벽에 자화상을 그리는 과정을 주 구조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자신의 실체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인간이란 무었인가, 예술가란 무었인가, 창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 여행은 그 답이 없는 거대한 빈 벽 앞에 부딪힌다.

                                                                                                   -작품소개 중 -

 

 

연출을 맡은 이철성씨의 이력을 보면 좀 독특하다. 불문학과 연극연출을 전공하고 한국의 전통연희와 유대종교 음악의 보이스 창법을 배웠으며(이스라엘에서 유학을 하기도 했다), 시인으로 등단해 다수의 시를 발표하고 있는 등 다재다능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제는 시각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이며 모든 장르를 넘나들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자신이 이끄는 비주얼씨어터컴퍼니 꽃을 소개하는 글에서 나는 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꽃’은 연극도 개인창작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작품을 창작한다. 즉, 창작, 연출, 출연, 디자인, 제작, 작곡 등 제 영역을 일인 혹은 소수가 모두 책임지고 창작하는 연극을 추구한다. 이를 통해 연극은 기동성과 창의성을 획득하며, 작가 개인의 내밀한 세계가 작가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진실되게 형상화되는 ‘작가주의적’ 연극을 추구한다.....중략


‘Interdisciplinary’의 이념은 극단 ‘꽃’의 주요 창작 개념이다. 미술과 음악과 연극은 그 경계를 버리고 하나가 되었다. ‘Interdisciplinary’의 이념은 기성의 연극장르가 갖고 있는 경직된 틀과 그로 인한 연극에 대한 경직된 인식이 ‘열린 정신’으로서의 예술 정신에 위배된다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중략


그가 동의 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위의 글에서 ‘멀티 플레이어’와 ‘모더니티’의 태도를 읽는다. 극한의 상황에서 외부적인 요구로 나타난 멀티 플레이어의 역할을 그는 개인적인 요구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능동적인 멀티 플레이어만이 창의성을 획득하는 단초라고 믿는 것이다. 거기다가 ‘진실되게 형상화되는’(작가주의)까지 요구하고 있다. 과연 이 두 개념은 ‘연극이 가지고 있는 경직된 틀’을 타파하고 ‘기동성’과 ‘창의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모든 영역을 일인이 책임지고 진실되고 순수한 마음으로 창의성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설청씨는 정말 대단하다. 그에게는 ‘벽’이 없다. 이제 그는 다음 달 8월 서울역에서 ‘공공성’에 도전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좀 걱정이다. 일부 불온함이 존재하는 서울역에서 순수한 작가주의가 어떤 벽에 봉착할지. 화가의 자화상(유영봉)은 능동적인 멀티플레이어의 좋은 파트너가 되어줄지. 아무쪼록 건승을 빈다.

 

2차원 재료인 흰 벽, 페인팅, 영상과 3차원 재료인 몸, 오브제, 설치물들, 그리고 소리와 음악의 재료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광기의 춤을 추는 이 작품은, 욕망의 거울이며 내면의 거울, 빈 벽 앞의 허깨비 춤이다.                     - 작품소개 중 -

 

 

*자료를 제공해준 이철성씨와 변방연극제 임인자씨에게 감사드린다.

보충설명

<참고사이트>

문지문화원 사이 http://www.saii.or.kr
비주얼씨어터 컴퍼니 꽃 http://www.visualtheater.net
변방연극제 http://www.mtfestival.com

필자소개

필자 박혜강은 현재 2007프린지레지던시 작가로 참여해 <돈키호텔>을 운영하고 있으며 메뉴 <연재>에 돈키호텔의 진행과정을 기록하고있다.
웹진 인디언밥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_ wogi8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