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막별의 오로라 <Make up to Wake up 2>

2017. 11. 4. 15:57Review

 

행복하게 아름다울 것

 <Make up to Wake up 2>

사막별의 오로라

 

글_권혜린

 

예외가 소외가 되는 공포와 수치심

<Make up to Wake up 2>는 여성이 주체가 되어 만든 페미니즘 연극으로서 전작 <Make up to Wake up>에서 ‘몸/여자’를 이야기했던 것에서 나아가 이번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이 몸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이야기한다. 특히 ‘hide behind’라는, 눈에 보이지 않아 더 큰 두려움을 주는 괴물을 등장시킨다. ‘hide behind’는 위스콘신과 미네소타주의 나무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괴물로서 나무나 사람 뒤에 너무나도 빨리 숨기 때문에 그 괴물을 본 사람이 없고, 그 때문에 많은 나무꾼이 숲에서 실종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이를 차용하여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여성들을 감시하는 괴물이라는 상징으로 탈바꿈한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감정은 예외를 소외로 만드는 공포와 수치심이다.

극이 시작되면 조명이 두 여성의 몸을 번갈아 가며 비춘다. 그들의 표정은 낯선 것을 보는 듯 불안해 보인다. 사방에서는 그물 혹은 가시덤불 같은 영상들이 펼쳐진다. 그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hide behind’가 있을 것이다. 이 괴물은 유행에서 벗어난 ‘일자 눈썹’을 한 여성들을 납치한다. 자신을 꾸미지 않아 아름다움에 무관심한 이는 죄인이 된다. 도시에서 연달아 일어나는 실종사건은 괴담으로 퍼지고 ‘hide behind’를 겪은 이들은 뒤를 계속해서 돌아보거나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등 공포를 느낀다. 길을 가다가 입술 색이나 목걸이가 촌스럽다든가, 손톱이 유행이 지났다면서 서로의 옷차림과 화장을 지적하며 조심하라고 하는 등 검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비현실적인 대상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현실에서 나타나는 수치심과 맞닿아 있다. 목소리로만 들리는 증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잘 때 입었던 트레이닝복을 입고 압구정에 요가를 하러 가고, 제모도 하지 않았을 때 비싼 요가복과 대조되어 나타나는 감정은 수치심이다. 그때 얼굴이 새빨개지고, 식은땀이 나고, 숨이 막히는 것은 ‘hide behind’를 마주했을 때의 감정과 동일하다. 얼굴이 특이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대중교통에서 막말을 들어야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hide behind’는 통용되는 아름다움에서 예외가 되었을 때 개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되고, 나아가 도태되는 등 일상에 틈입하는 괴물을 상징하게 된다.

 

 

아름다움에 대한 ‘만들어진’ 규범들

특히 아름다움의 기준을 대표적으로 만드는 것은 유행이다. 극 속에서는 매거진의 인터뷰 장면을 통해 유행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가을에 유행할 화장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미리 듣고, 그것이 매체에 등장하면 많은 이들이 따라하게 되는 것이다. 영어로 남발되는 트렌드는 극 속에서는 과장되어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로 많은 이들이 지침으로 여기고 따라 하는 것들에 해당한다.

이렇게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것처럼’ 아름다움의 기준을 제시하는 미디어를 이 작품에서도 자주 활용한다. 영상에서는 아름다운 연예인이 나오고, 대중가요와 소설에서 여성은 왜곡되거나 낭만화된다. 여성은 소설 속에서 하얀 스웨터를 입고, 녹색 물방울 원피스를 입은 단발머리의 소녀로서 전형적인 이미지로 제시된다. 나아가 이 작품에서는 ‘나는 뷰티 퀸이다’라는 오디션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오디션 참가자들은 아름다워지기 위한 팁을 각각 소개하는데 이는 가학적인 행동에까지 나아간다. 입술 깨물기, 테이핑, 문신뿐만 아니라 채찍, 벨트, 전기 충격기, 송곳까지 등장하는 것이다.

 

 

또한 ‘hide behind’를 물리치기 위한 적극적인 방법도 나타난다. 새로운 ‘나’로 태어나게 하는 국민 새 뷰티 운동은 ‘New beauty, New balance, New born’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가꾸지 않은 여성이 위험하다는 인식과 함께 이러한 여성에게 뷰티를 전파함으로써 안전하게 만들겠다는 목적을 내세운다. ‘위험/안전’이라는 프레임은 이 운동의 본질인 ‘뷰티’가 강요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우고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당위만 표면에 드러나게 한다. 따라서 ‘안전한 아름다움’을 따르는 이들은 표정부터 평온해 보인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유튜브에서 뷰티 멘토를 통해 화장을 배워 아름답고 당당한 여성이 되었다는 증언을 한다든가, 다른 이들의 시선을 즐기면서 자유로운 유희를 하게 되었다는 증언은 대중에게 호소하기에 적합하다. 또한 운동 본부에서는 미의 기준을 직접 제시함으로써 규범을 만들고 처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주름을 끌어올리고, 팔뚝 살을 제거하며, 가슴에 볼륨을 넣는 등 마론 인형을 연상하게 하는 과도한 지침들을 제시하며 이것이 ‘새로운 빛’을 주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익살스러운 광고 영상은 정상 체중보다 10kg을 더 빼야 하는 미용 체중을 강조하고, 칼로리를 늘 계산해야 하며, ‘44는 자긍심, 55는 마지노선, 66은 반성’이라는 단어를 구호처럼 반복적으로 되뇌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만들어진’ 규범들을 세뇌하는 것이다.

 

 

행복을 찾아서

국민 새 뷰티 운동이 과도한 조명과 익살스러운 광고 영상으로 시선을 끈다면, 반대로 어둠 속에서 칼로리를 계산하면서 과자를 잘게 조각내거나 줄자로 사이즈를 재는 장면은 억압당하고 있는 모습을 가시적으로 잘 보여준다. 과연 누구를 위한 다이어트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과정이고, 누가 봐도 불행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행을 국민 새 뷰티 운동이 행복으로 전환했을까? 국민 새 뷰티 운동은 성공적인 체험담을 통해 행복해 보이는 표정들을 한 여성들을 내세웠으나 결국 그 운동 자체가 화장품 회사의 마케팅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화장품 부작용까지 나타난다. 또한 ‘나는 뷰티 퀸이다’에서 우승한 마론 인형 쥬쥬도 ‘hide behind’ 때문에 실종된다. 규범처럼 제시한 아름다움의 기준이 허위라는 것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반면 과자를 자르던 여성이 행복한 표정으로 과자를 먹고, 줄자에 갇혔던 여성이 자유롭게 춤을 추는 것은 그러한 기준에서 해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름다움이라는 규범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스스로 그 규범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Wake up’, 자신에 대해 자각하는 순간이다. 처음에 원으로 만들어진 조명 속에 갇혔던 여성은 원 밖으로 나가고, 편한 옷차림을 한 여성들은 서로를 무심하게 지나친다. 이처럼 외부에서 제시한 아름다움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으로 살 때 더욱 행복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행복하게 아름다울 것’. 이것이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진정한 구호일지도 모른다.

<Make up to Wake up 2>는 뚜렷한 주제를 무겁지 않게 유쾌한 분위기로 풀어내고, 볼거리도 많아 관객들의 호응도 무척 좋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소재들과 에피소드, 상징들이 많이 쏟아지다 보니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보다는 파편적으로 보여 흩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뚜렷한 상징을 보여주는 ‘hide behind-국민 새 뷰티 운동’에만 집중해도 좋았을 것 같다. 그러나 평소에 일상적으로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을 잡아채 무대 위에서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 인상 깊었다. 화장이나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 정도로 여겨졌던 외모 강박이 은연중에, 그리고 사실은 노골적으로 아름다움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들의 몸을 얼마나 억압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사진제공_사막별의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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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_권혜린

 소개_작은 매처럼 책과 책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은 ‘골방 탐험가’입니다.

          http://blog.naver.com/grayhouse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