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한으로 진동하는 이해, 영화 <분장>

2017. 11. 11. 11:36Review

 

극한으로 진동하는 이해

영화 <분장>

남연우 감독/각본/출연

 

글_김민범

 

무한히 발산하는 세계에서 이해로 수렴하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가장 내밀한 이야기가 앞에 놓여 있을 때, 어떤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맞이해야 할까. 엉망으로 떠오르는 단어들 사이에서 ‘이해’라는 단어를 만지작거리다 이내 의심스러워 꺼내지 못한다. <분장>은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감독의 의문에서 시작한다. 질문은 확장하거나 변형되지 않고 오로지 극한으로 치닫는 송준(남연우分)의 표정을 통해 대답 된다.

 

 

송준은 무명 배우다. 영화의 첫 장면, 송준은 바쁘게 돼지 저금통을 갈라 동전들을 그러모은다. 짤랑이며 나오는 송준을 맞이하는 건 택시기사다. 돈이 부족하다. 내일 아침 계좌로 모자란 비용을 보내겠다는 송준과 믿을 수 없다는 택시기사는 허연 입김을 뿜으며 실랑이한다. 송준은 말한다. 자신은 진정성있는 사람이라고. 믿어달라고. 긴 하루는 파출소에 하나뿐인 동생, 송혁(안성민分)을 불러 값을 치르고 나서야 끝난다.

 

영화는 ‘진정성’있는 송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유명 연극 「다크라이프」의 주연 배역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주연 역할 ‘주디’는 트랜스젠더다. 진정성있는 연기를 위해 트랜스젠더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더 이해하기 위해 직접 찾아간다. 우연히 다큐의 주인공이었던 이나(홍정호分)를 만난다. 송준의 절실함에 이나는 그를 도와준다. 이나와 함께 술자리를 어울리고, 성 소주자들이 고민을 나누는 자리에도 초대 받는다. 그는 그들의 세계에 다가간다. 그의 이해 덕분인지 그토록 원하던 다크라이프의 주연 배역을 맡는다.

 

 

세상이 그의 ‘진정성’이 알아준다고 느껴지는 순간부터 그의 내면에는 균열이 시작된다. 애지중지하는 동생 송혁과 가장 친한 친구 우재가 연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우재의 커밍아웃에도 격의 없이 이해하고, 성소수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친구를 타박하던 송준은 자신의 동생이 게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화는 총체적 파국으로 나아간다.

아무리 신묘한 화장술도 결국은 지워진다. 송준이 이해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점점 무너진다. 남동생과 동성 친구가 연인임을 알게 됐을 때, 그는 더 이상 ‘진정성’과 ‘이해’를 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 송준의 이해는 철저히 밖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바에서 진탕 취한 송준은 우재에게 말한다. 네가 ‘그거’여도 괜찮다고,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꼬부라진 말투로 말한다. 송준에게 게이를 ‘그거’다. 이나는 그게 어렵다고 핀잔하듯 대답한다. 처음으로 송준의 분장이 벗겨지는 순간이다. 우재와 이나의 얼굴이 구겨진다.

 

 

송준은 담배를 피운다. 일이 잘 안 풀려서, 기분이 꿀꿀해서, 연기하는 인물이 잘 이해되지 않아서 자꾸 담배를 문다. 담배를 입에 물면서도 무용을 하는 송혁에게는 절대 피우지 말라고 충고한다. 수많은 흡연 장면 중 하반신은 방 안에 있고, 상반신만 창문 밖으로 빼꼼히 내어 담배를 피는 세 번의 장면을 떠올린다. 송준의 이해는 그 장면과 닮았다. 밖은 추워 나가기 싫지만, 흡연을 위해 창문틀에 기대어 연기를 내뿜는 일. 같이 한숨 쉬어 주지만, 담배가 다 타면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의지에 따라서 창문은 열리고, 이해는 언제든 닫힐 수 있다.

혼란스러운 송준과 다르게 「다크라이프」는 호평 일색이다. 연극지와 인터뷰를 하고, 송준의 분열은 ‘주디’라는 극 중 인물에 대한 이해도로 격상된다. 오해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송준이 ‘주디’로 분장하는 일은 점점 더 괴로움이 된다. 진한 화장은 그의 민낯을 가려주지 못한다. 격렬하게 분장을 지워도 그는 항상 무대에 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보내는 박수는 ‘주디’를 향한 찬사지만, 분장 뒤 송준에게는 자가당착으로 향하게 하는 아우성이 된다. 송준은 내려갈 수 없는 무대에 유폐된다.

 

 

<분장>은 게이 로맨스의 불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극 중 「다크라이프」의 연출은 동성 연인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송혁과 우재는 자신들의 정체성, 사랑의 어려움으로 고민하지 않는다. 영화는 성소수자를 지켜보는 이성애자의 시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송준의 눈에는 그들의 괴로움이 보일 틈이 없다. 극의 초반 송준은 꾸준히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거짓이나 기만이 아니었다. 송준은 스스로 ‘진정성’있는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외부 세계가 그의 세계로 삼투해서 들어올 때, 그는 괴로워한다. 일그러지는 송준의 표정이야말로 그가 꾸준히 말하던 진정성에 수렴해가는 듯 보인다.

 

 

의심은 확신에서 시작된다. 이해의 진폭은 헤아릴 수 없고, 쉽게 치환되지도 않는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서 단정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이해’와 ‘진정성’은 수학적이거나 정량적 방법으로는 정의되지 않는다. ‘이해’를 응시하는 영화는 끝없는 질문으로 향하는 과정이지 명확한 결론이 아니다. <분장>을 향하는 이 글도 하나의 가정으로써 영화가 품고 있는 질문에 가닿기를 바란다.

 

*영화 이미지 출처_네이버 영화 스틸컷

 

 필자_김민범

 소개_열심히 읽고 꾸준히 씁니다.

 

 

 

CAST

남연우 (오송준 역)

안성민 (오송혁 역)

홍정호 (강이나/의사 역)

한명수 (성우재 역)

양조아 (남소민 역)

최용진 (김태백 역)

김정영 (정옥순 역)

이수광 (소창국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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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감독/각본_남연우 (각본)

   촬영_ 유지선 (촬영) 선종훈 (촬영)

   연출_정효진 (조연출) 이일희 (연출부)

   분장_김은영 (분장) 김은영 (헤어)

   편집_남연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