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혜진 개인전, <CC각각 b밀(시시각각 비밀)>

2017. 11. 14. 09:24Review

 

수목요일의 시간은 비밀

- 박혜진 개인전, <CC각각 b밀(시시각각 비밀)>

숨도 작은 전시관, 2017.10.16-11.4

 

글 김솔지

 

 

1. 블랙마켓에서 만난 수목요일의 전시 소식

작년 이맘때는 날씨처럼 한국의 상황도 혹독했다. 예술계도 마찬가지였다. 블랙리스트는 사실로 밝혀졌고, 2016년 11월 4일 예술인들은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는 시국선언을 진행했다. 광화문광장에는 예술가들의 ‘박근혜 퇴진 캠핑촌’이 생겼다. 한 달이 지난 12월 4일, 예술가들은 암시장 ‘블랙마켓’을 열었다.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텐트 앞에 앉아 작품을 놓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촛불시위를 찍은 사진들도 보였고, 대부분 평소 해온 작업을 여러 형태로 보여줬다. 둘러보던 나는 한 작가 앞에 멈췄다.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고 엮은 그림, 그 종이 위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냈는지 가늠이 되는 그런 그림, 책, 스티커가 있었다. 그는 수목요일(박혜진 작가)이었다. 수목요일은 쪼그려 앉은 우리 앞에서 작품을 천천히 소개했다. 그렇게 처음 그의 그림을 보았다. 설명은 자세히 계속되었다. 추운 날씨에 전해진 여유, 에너지, 애정이 인상 깊었다. 나는 “휴우.” 스티커를 샀다. 누군가 숨을 내뿜고 있는 그림 옆에 손글씨로 “휴우.”가 써진 스티커. 노트북 한 구석에 붙이고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해서 타이핑을 하거나, 리서치를 하다가, 예산서 수식을 수정하다가 이 스티커를 보면 잠시 멈췄던 숨을 ‘휴우’하며 내뱉게 된다. 스티커 하나가 숨을 고르게 한다. 간소하지만 유용한 “휴우” 스티커 덕분에 종종 수목요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올 해 초부터 웹진 인디언밥에 매달 수목요일의 그림이 올랐다. 주인공 이름이 제목이기도 한, 페미니즘 웹툰 ‘숭숭’. 부담도, 거리감도 없는 웹툰이지만 물 흐르듯 지나가지 않는다. 때론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그 그림-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있어서 인디언밥에 들어갈 때마다 스크롤을 내리며 찬찬히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흥역 인근에 자리한 카페 겸 문화공간 ‘숨도’ 뉴스레터로 수목요일의 전시소식이 날아왔다. 어느 토요일 숨도의 ‘작은 전시관’을 찾았다.

 

(그림1 그림2 출처 : 숨도 웹페이지)

 

2. 수목요일의 시간은 비밀

<cc각각 b밀>. 저마다의 시간들, 순간들은 비밀을 품고 있다는 뜻일까. 전시를 보며 어쩌면 당연한 답을 찾아나간다. 저마다의 시간은 시계가 움직이듯 늘 고르지만은 않다. 그러나 모든 문명의, 거래의, 생활의 기준점인 ‘시간’은 전지구인이 공유하고 있는 비물질이다. 시간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날씨, 지역에 따른 관습보다 훨씬 더 객관적이다. 균일하고 촘촘하다. 모두에게 하루는 24시간으로 구성되고, 시간은 분단위로도, 초단위로도 나뉜다. 각 국가 또는 지역마다 표준시가 설정돼 있고, 그 시간대는 경도 0°를 지나는 그리니치자오선을 기준으로 몇 시간 더 앞서거나 뒤늦은 형태다. 시간은 투명하다. 그렇게 우리는 기차를 타고, 약속을 정하고, 일을 본다. 비행기로 국경을 넘어도 약간의 계산 후에 그 장소의 시간을 다시 기준점으로 삼아 생활한다.

이처럼 시간은 일정하게 움직여 하루, 한 달, 일 년을 구성한다. 이 시간은 언어와 같이 자의적이지 않고, 우주의 움직임에 따라 측정된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이 객관적인 시간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어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끼거나 아주 빠르게 지나간 것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입사 후 낯선 환경에서의 하루는 더디고, 처음 간 해외여행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시간은 외적으로 거의 균질하게 작동하지만 개인에게는 상황에 따라 다른 속도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책에 쓰인 글이 한 줄 한 줄 같은 무게로, 같은 시간으로 읽히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그 자체로 객관적인 시간은 ‘나’와의 관계에서만은 주관적인 속성을 지닌다. 우리는 이러한 시간을 어떻게 감각하고 기억하느냐에 따라, 나만의 생각을 갖게 된다. 시간의 객관적이고도 주관적인 성격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시 전시장에 놓인 그림들로 돌아오자. 수목요일의 그림은 두 가지 지점에서 조금 다른 시간을 만들어낸다.

 

첫째, 작품 등장인물들의 시간은 숫자에서 벗어나 종이 위에서 포개어진다.

“4월 4일 세 시의 아주머니, 이들은 걷는 운동을 하고 있다. 나는 서로가 관심을 기울여 만나는 동안 일어나는 시각의 동요를 시각화하려고 애를 쓴다. 선을 긋고 도형을 그릴 때 겹쳐지는 여백을 살피며 글과 그림에 난 잔털들을 빗었다. 숫자로 드러나는 시각은 영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 전시장에 놓인 수목요일의 글 중에서

 

수목요일은 전시장에 아리송한 글 하나를 제시한다. 그는 이 수수께끼 글에서 이번 전시에 놓인 그림의 위치를, 상태를, 속성을 드러낸다. 위 인용에서 시간은 ‘시각’이라는 중의적인 단어로 설명된다. ‘시각(時刻)’은 시간의 어느 한 시점을 나타내고, ‘시각(視角)’은 사물을 바라보는 자세를 의미한다. 수목요일은 이 두 개의 시각을 바삐 오간다. 그만큼 시각(時刻)은 자유자재로 늘거나 줄고, 그의 시각(視角)은 그만큼 선명하게 표현된다. 그가 대상을 보고 있는 그 순간에 그는 이미 숫자-시간을 넘어서 있다. 관찰하고, 기억하고, 그리고, 다듬는 시간 내내 마찬가지다. 그의 그림은 시시각각 놓인 비밀을 풀고 다시 암호화하는 순간에 관한 기록이다.

 

둘째, 작가가 지나는 시간은 느리다. 또는 점점 느려진다.

“내일이 평일이라면 아침의 알람 시각이 당신을 깨우겠지요. 자세히 보면 숫자의 이가 눈곱만큼 닳아있을지도 모릅니다.”

 

작가는 조금 다른 시간을 사는 것 같다. 그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10시간 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는 세세하다. 그림의 표현이 세세한 것이 아니라, 그가 대상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 그 세세함은 관찰과 여유에서 비롯된다. 그의 고민이 담긴 그림 속 시간은 시계의 시간과 다르다. 늘어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한다. 그의 시계에서 그의 그림이 나온다. 그의 그림을 본다는 것은 수목요일의 시간을 만나는 순간의 연속이다.

 

그림3 그림4 _ 시시각각비밀 전시장 광경 (필자 촬영)

 

3. 4시인지 5시인지

시계를 나눠준다. 작가가 그린 시계.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 만들어봤을 종이 시계. 나는 오후 4시를 골랐다. 5시 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새벽 4시 일지도. 나는 그 시계의 시각을 오후 4시라고 설정한다. 하루가 미처 다 지나지 않아, 충분히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시간. 하지만 낮의 대부분은 지나가 아주 피로할만한 일이 발생하기는 어렵고 대부분 그날의 일정은 끝나가는 시간 말이다. 기업이나 기관에 들어가든, 학생으로 살든, 작가로 살든, 프리랜서로 살든 하루를 보내는 일은 녹록치 않다. 루시드 폴이 음악과 농사로만 이루어진 하루하루를 보내듯, 나도 하고 싶은 일 두 가지로만 채우는 일상을 꿈꿔본다.

회의, 조사, 방문, 참여, 반성, 후회, 충전, 구독, 공유, 홍보 등이 수십 번 반복되면서 하루의 해가 저문다. 그런 나에게도 어느 순간에는 수목요일의 정서가 스쳐 지나간다. 나에게도 가끔은 조금 느리거나, 비균질한 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 비균질한 시간은 보통 유년기부터 일관되게 지니고 있으나, 모순적이게도 자주 잊는 ‘나’라는 자아가 지닌 세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처럼 수목요일의 그림은 60초가 1분을 만들고 1분이 60분을 만드는 시간대를 잠시 잊어버릴 때, 4시인지 5시인지 모를 시계 그림으로 살 때에만 시간의 요정이 만들어내는 비밀스런 순간을 남겨준다. 간격이 고르던 스프링이 어느 구간에서 살며시 늘어나는 듯하게.

 

(그림5  출처 :  숨도 웹페이지)

 

4. 위로

사람들은 수목요일의 그림을 보고 ‘예쁘다’라고 자주 말한다. 예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예쁨은 선명함과 같은 시각적 쾌를 느껴서 나오는 반응은 아닌 것 같다. 아기자기한 그림을 들여다볼수록 익숙한 듯 하지만 정형화되지 않은 독특한 매력을 느껴서 나오는 반응에 가깝다. 그런데 전시장에 조각조각 펼쳐진 그 그림을 ‘예쁜 것’으로 느끼는 순간, 그 그림은 보는 이에게 위로로 전환된다. 적어도 나를 포함한 몇몇에게는 그렇다. 그림의 내용이나 형식이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서는 아니다. 사는 동안 내가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내 삶의 어떤 공간과 시간을 다시 만나게 하여, 보는 이 스스로 길을 안내하고 안내받도록 하는 그런 위로다.

 

그림6 _ 시시각각비밀 전시장 광경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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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_김솔지

 소개_사회는 예술에, 예술은 사회에 어떤 말들을 던지고, 그 둘은 계속 바뀌어 간다고 얘기한다면, 저의 글은 그 사이에서 본 것들을 또는 그렇게 얻은 말들을 담는 연습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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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7 그림8 _ 시시각각비밀 전시장 광경 (필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