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20. 15:06ㆍReview
LIG 문화재단 레지던스-L 연출가 김철승 프로젝트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
<엄마가 사라졌다>
글_김민승
전통적으로 삶의 재현으로서의 연극이 있다면, 극연구소 마찰의 연극을 무어라 규정하면 좋을까? 아마도 ‘삶의 환기로서의 연극’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때 ‘환기’라는 것은 감각적 환기이자 현실을 넘어서는 환기가 될 것이다.
김철승 연출의 공연 <엄마가 사라졌다>는 누군가의 부재가 우리 삶을 어떻게 환기시키는가를 다루고 있다. 즉 이 공연에서는 ‘부재’를 존재론적인 문제로 다루는 상투적인 방식 대신 지극히 감각적이고 지엽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 엄마의 부재란, 뜯지 않은 우유가 유통기한 지난 우유가 되는 것이며, 냉장고 안의 딸기가 상한 딸기로 변하는 것이고, 나보다 엄마가 먼저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누군가의 부재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감각의 문제이며 상대적인 문제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존재/부재의 문제는 이분법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제가 아니던가?
공연은 ‘엄마의 부재’를 둘러싼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파편화된 방식으로 보여준다. 1989년 5월 화장하고 있던 엄마와 그걸 바라보는 나, 맨홀 뚜껑으로 떨어진 놋쇠그릇,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 엄마에게서 날아온 엽서, 공항으로 향하는 420번 버스를 타고 있는 나. 에피소드들의 흐름은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차곡차곡 형성되는 전통적 의미의 서사 구성 방식 대신, ‘엄마의 부재’를 가운데 둔 채 나의 경험들로 그것을 빙 둘러싸는 방식이다. 굳이 말하자면 처음과 끝의 구조라기보다 중심과 주변의 구조랄까? 그러나 중심과 주변의 구조는 단순히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단어들과 행위들의 반복에 의해 점증적으로 발전해 나간다. 그렇다면 반복과 점증의 구조를 통해 다다르는 지점은 어디일까? 그것은 ‘엄마의 사라짐’이 결국 ‘나의 사라짐’과 겹쳐지는 지점이었을 수도, 상처를 반복적으로 들여다보는 행위 자체가 치유의 일환이라는 점일 수도 있다. 물론 결론은 하나로 나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부재, 상처/치유, 사랑/증오가 결국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별도의 것을 하나로 겹쳐지게 하는 이 과정은 필연적인 귀결일 수 있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옷을 갈아입는다’가 중의적 의미를 지니는 것과도 관련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은 ‘옷을 벗는다’ 와 ‘입는다’ 를 동시에 내포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할만한 점은 연출의 개입 방식에 있는데 이는 김철승 연출의 독특한 작업 방식과도 관련된다. 그의 전작들에서도 연출은 공연 뒤에 자신을 숨겨놓지 않았다. 그는 노골적으로 무대 위를 누비며 배우들에게 디렉션을 내리고, 배우들은 이를 수행하거나 자신의 생각대로 변형시키기도 한다. 결국 그는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일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셈이다. 그러나 전작들에서는 연출로서 내부와 외부를 잇는 방식으로 개입하였다면, 이 작품 <엄마가 사라졌다>에서는 좀 더 공연 내부에 깊숙이 관여하는 방식으로 개입하였다. 그는 배우의 일부를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조명 및 무대를 전환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특히 공간 활용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점은, 조명을 통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했다는 점이다. 연출은 직접 무대 위에 등장하여 스탠드를 켜거나 화장실의 불을 켜거나 자연광을 막기 위해 설치한 암막 커튼을 걷는 등의 행위를 통해 관객들이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공간들을 감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배우들은 하나의 캐릭터로 존재하기보다는 행위로서 존재하는 것에 더욱 가깝다. 이것은 배우들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배우들의 역할 구분 방식이 기존의 것과 다름을 의미한다. 배우들은 자신의 고유 속성에 걸맞는 행위나 이야기를 전달하지만 그것이 고전적 의미의 캐릭터로서의 역할은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이 모든 시도들은 새로운 서사가 탄생하는 조건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반복과 점증의 원형 순환적 구조, 배우들의 존재 방식, 그리고 공간의 활용은 서사의 해체를 넘어서서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
***사진제공 : LIG아트홀
필자_김민승 소개_ 지독한 왼손잡이 글쟁이입니다. 연극은 보는 것보다 만드는 게 더 좋지만 게을러서 결국 둘 다 잘 안 합니다. @minsk_im |
내용출처 >>> LIG아트홀 웹페이지 http://www.ligarth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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