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시야를 벗어난 맨발의 여인 <열녀춘향>

 

시야를 벗어난 맨발의 여인

<열녀춘향>

김현탁 재구성, 연출/ 극단 성북동 비둘기

 

글_김송요

 

춘향이 하면 항상 남원 미스 춘향 대회가 먼저 생각납니다. 초등학생 때, 미스 춘향 대회에 나왔던 언니들이 예뻐서 넋을 놓고 봤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춘향이 대회가 곧 미인대회라는 것이 영 이상하다 싶습니다. 왜, <그녀를 믿지 마세요>라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고추총각 대회에 나가서 올해의 고추총각이 되기 위해 매운 고추를 생으로 우걱우걱 씹어 삼키는 장면이 나와요. 아니 고추총각이 고추를 꿀떡꿀떡 잘 먹으면, 나쁠 거야 없지만… 고추를 잘 먹는 게 고추총각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일은 아니잖아요. 춘향이를 외모 보고 뽑는다는 것도 고추 잘 먹는 고추총각을 뽑는 거와 다를 바 없다 싶었습니다. 춘향이가 예쁘니까 몽룡이와 사랑을 이룰 수 있었다고 치면, 춘향이가 마침 그네를 타서 몽룡이를 만났으니까 아예 아크로바틱 공중그네 실력으로 미스 춘향을 뽑아도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다음부터 올해의 미스 춘향을 궁금해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열녀춘향>에는 아홉 명의 춘향이가 등장합니다. 핸드백 속의 사물을 춘화 속 사람과 지물에 빗대어 관객에게 춘화 소개를 하는 춘향이, 미인대회에 나가 미모를 뽐내고 드레스를 하사 받아 기뻐하는 춘향이, 거침없이 씨를 발라낸 고추로 고추전을 만드는 요리 선생 춘향이, 과장된 동작으로 리듬체조를 하는 춘향이, 열정적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춘향이, 파자(破字) 놀이를 하는 춘향이, 링에 올라가 싸우는 춘향이, 쓰러진 몽룡을 소생시키는 춘향이가 차례로 무대에 등장한 뒤에 아홉 춘향이가 무대에 함께 서서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춤을 추고, 마지막으로 정조 선언에 맞춰 입 안에 사탕을 우겨넣는 춘향이가 나옵니다.

 

 

이 설명만으로는 이게 무슨 춘향이냐 싶을 수도 있을 법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충실히 <열녀춘향수절가>를 복기합니다. 파자 놀이를 하며 몽룡과 정분을 싹틔우고, 링 위에서 몽룡과 이별하고, 소생술로 잃어버린 몽룡을 되찾습니다. 파자 놀이는 춘향의 지성미를 보여줍니다. 아들 자子자를 구멍 공孔, 다시 젖 유乳로 바꾸고, 사람 인人자를 개 견犬, 엎드릴 복伏으로 바꾸면서 춘향은 글자를 통해 은근히 남성을 조롱합니다. 링에서의 결투는 춘향의 시련을 보여줍니다. 몽룡에게 자신의 숨을 불어넣는 것으로 몽룡을 구제하는 장면을 대신하고요.

동시에 이 춘향이들은 춘향전 텍스트 바깥의 것들을 무대에 데리고 들어옵니다. 어디 미인대회 춘향이를 한 번 보겠습니다. 춘향이가 높은 구두를 신고, 핫팬츠를 입고, 엉덩이를 쭉 빼고 가슴은 쫙 내민 자세로 S라인을 딱 잡습니다. 여기저기서 시선이 와서 꽂힙니다. 춘향이가 보여주는 아리따운 여인의 자태는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성적인 이미지가 됩니다. 불룩한 가슴과 엉덩이. 잘록한 허리. 곧은 종아리와 팽팽한 허벅지. 무대 위의 춘향이는 몇 번 걷고 몇 번 말한 것이 전부였는데, 바깥에서 들어온 눈길들이 춘향이의 어여쁨 내지는 섹시함을 감상하고 평가합니다. 그네를 타던 춘향이를 그네 타는 춘향이를 보던 몽룡의 시선과 따로 생각할 수 없듯이, 미인대회에서 행진하는 춘향이는 춘향이를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과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춘향이가 바이올린을 켤 때도 시선이 개입합니다. 춘향이는 콘서트마스터 혹은 협연자의 위치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고―정확히는 에어 바이올린입니다―, 몇 남성이 더블베이스 자리에서 마찬가지로 에어 베이스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춘향이는 엑스타시를 깨우친 여자입니다. 연주에 깊게 몰입할수록 밀려드는 긴장과 쾌감, 감정의 파도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적극적으로 반응합니다. 반면 남자들은 연주에 집중하는 대신 그런 춘향이를 자꾸만 곁눈질합니다. 그들의 활은 공교롭게도 계속 춘향이를 ‘찌릅니다’. 실제로는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 동작은 단순히 악기 연주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추삽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노골적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그게 춘향이 ‘탓’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은 마치 춘향이라는 요물을 탐탁찮아하듯이, 그러면서도 바로 그런 춘향 때문에 쳐다보기를 멈출 수 없다는 듯이 노골적인 엿보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미인대회에 나간 춘향이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춘향이 모두 박수를 받지만, 사실 그 순간 춘향이를 히로인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니라 그녀를 욕망하는 시선들이었습니다.

 

 

<배비장전>을 가지고 만든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있지요. 거기서도 보면 제주 기생인 주인공 애랑이가 배비장을 꾀려고 여염집 처자인 척을 합니다. 애랑이가 틀어 올린 머리를 내려서 처녀들 하듯 땋고선 폭포 아래에서 목욕을 하고 있으니까 방자가 배비장에게 냉큼 그럽니다. 여염집 규수가 목간 하는 것을 그리 보면 어떡하느냐고. 그 말 들은 배비장이 아주 좋아해요. 못 보게 했는데도 좋아하다니?(하긴, 당연히 보면 안 되지만. 배비장을 따라하지 맙시다.) 여염집 규수라고 하니까 그랬던 거지요. 참‥ 그럴 거면 결혼정보회사에 가서 성에 차는 사람 만나지 뭘 또 그리 우연한 만남, 운명적 인연 꿈들은 꾸시는지.

이 얘기를 왜 했냐면, 춘향전의 도입은 어땠었는지 되짚어 보기 위해서입니다. 몽룡이가 광한루서 그네 타고 노는 춘향이를 보고 방자에게 신상을 전해 듣습니다. 듣고 지시를 내려요. ‘들은즉 기생의 딸이라니 급히 가 불러오라’ 오잉. 방자가 춘향이를 기생 취급 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놓고 애가 싫다니까 그제야 이러질 않았겠어요― “아니, 네가 글을 잘 쓴다고 해서…….” 이 구차한 놈.

 

 

<열녀춘향>에서는 춘향전의 색다른 대목을 이용해 몽룡이를 멍석말이합니다. 바로 두 사람의 이별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링 위에서 춘향과 몽룡, 변학도가 대결하는 것으로 치환됩니다. 1라운드, 몽룡이 ‘아버지가 동부승지 발령을 받으셨다’고 외치는 소리에 맞춰 춘향이가 몽룡에게 한 대 세게 얻어맞습니다. 몽룡이 이 양반이 생각보다 영 듬직하질 못합니다. 일생 가약을 맺어 놓고선 혼자 한양엘 올라가면 춘향이더러 어쩌란 말입니까.

이렇게 몽룡의 가해로 도리어 몽룡을 꼬집는 데 이어, 2라운드에선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춘향이에게 변학도가 덤벼듭니다. 변학도는 정절을 지키겠다는 춘향에게 윽박을 지르며 그녀에게 주먹질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가해자가 등장합니다. 다름 아닌 관객입니다. 변학도가 춘향이를 때리고 만세를 하며 객석을 쳐다보는 순간, 글쎄 다 웃으면서 박수를 쳐주는 겁니다. 아니, 왜요! 춘향이고 사또고 따지는 걸 떠나서, 여인이 자기보다 월등히 힘이 센 남자한테 맞고 있는 걸 보고 박수를 막 친다고요? 그저 그 순간의 스펙터클 때문에요? 참 난감하고 속이 상하는 순간입니다. 관객의 박수와 함성은 극에 본래 포함된 것이 아니니 단합하여 호응을 자제하면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법도 하련만, 이미 시작된 것 한 사람의 관객일 뿐인 제가 끼어들어 말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 뜻밖의 어퍼컷에 춘향이는 정신을 못 차리고 휘청거립니다.

그러나 춘향이가 맞고만 있지는 않죠. 때립니다. 춘향이는 남자들의 샌드백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거지 몽룡이 응석 받아주려고 기다리는 게 아니고, 기다리고 싶어서 혼자 있는 거지 변 사또 수청 들어주려고 혼자 있는 게 아니지요. 그래서 춘향이는 때립니다. 바깥의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하고, 유린하고, 변학도의 편을 들어주면서 외면을 해도, 춘향이는 스스로 일어섭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의젓하게도 자신이 때려눕힌(!) 몽룡을 심폐소생술로 되살려내기까지 합니다. 두 남자와 싸워 이기고 자신을 내버려둔 연인을 용서하면서, 춘향이는 단순한 남성향 수절 판타지의 ‘열녀’가 아니라 화끈하게 자신의 삶을 싸워내는 ‘열녀’로 돋움합니다.

생각해 보면, 춘향이 사는 것이 얼마나 피곤했을까 싶습니다. 풀 먹여 빳빳하게 다린 옷을 갖추고 가르마를 얌전히 타 머리숱을 나누어 땋아 내리고 댕기를 드리고 또, 신발도 좋은 거 신었겠죠? 드라마에 나오는 멋쟁이 언니들 보면 그러던데, “좋은 구두가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줘요~” 물론 이날 이후 춘향이가 간 곳에는 감옥도 있습니다만은……. 거기에 남들이 가만 두지 않을 만큼 재주도 많고 매력도 넘칩니다. 그네 타는 모양만 고운가 하니 문장도 청산유수로 읊고, 홀딱 벗고 업히라는 말 앞에선 고라니마냥 수줍어도 수청을 들라는 수작질 앞에선 호랑이보다 무서우니 말입니다. <강남스타일>이 표방하는 전인적 인재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요즘엔 바깥에 나가 논다는 게 마치 스트레스를 향한 돌진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옷 고르고 화장하고, 세상에 여사원이 화장을 안 하고 출근하면 예의 없다고 면박을 주는 회사도 있다면서요? TV에서 연예인이 ‘뚱뚱한 여자는 자기관리를 안 한 것처럼 보여서 싫다’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하는 치들은 또 다른 사람들이려나, 모를 일입니다.

자가용이 없으니 외출을 하려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야 합니다. 근데 대중교통에서 치한 만나는 거, 네이트판에나 나오는 얘기가 절대 아니라 엄청 흔한 일이란 말이지요. 사람들을 만날 때엔 새로운 스트레스가 불어납니다. 대체 ‘남자친구 있니?’라는 질문은 왜 이렇게 많이들 하는 건가요? 없다고 하면 왜 어서 사귀지 않는지 종용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훨씬 열 받는 건 왜 남자친구 없다고 하면 수작질을 부리는 것인지? 남자친구 없다 그랬지 너랑 논다고 한 거는 아닌데?

따지고 들다 보니까 문득 춘향이가 남원바닥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몽룡이를 사귄 이유도 짐작이 가긴 합니다. 어쨌거나 몽룡이는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니까요. 첫인상이야 좀 ‘깼어도’ 어쨌거나 몽룡은 춘향을 ‘대화 상대’로 대합니다. 춘향을 무시하거나 이겨먹으려 드는 대신 양반인 자신과 충분히 ‘말이 통하는’ 상대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거지요. 아, 물론 춘향이는 그저 몽룡이 잘생겨서 좋아한 걸지도 모릅니다. 잘생겼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몽룡이도 저 멀리에서 춘향이 그네 타는 모양이 예쁘다고 반했잖아요. 하하 참 눈도 밝지. 그나마 가까이 다가갔다가 에구머니나 못 생겼네, 하고 내빼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설령 그랬어도 몽룡이가 욕을 먹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박씨부인전>을 보세요. 박씨가 천하 박색이라고 신혼 초장부터 별거를 하고 아내에게 눈길도 안 주던 이시백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지 않습니까.

 

 

<열녀춘향>의 마지막 순간, 아홉 명의 춘향이는 모두 신고 있던 하이힐을 벗어던집니다. 이 분명한 선언은 춘향이를 바깥의 시선에서 독립시키는 선전포고입니다. 아홉 명의 춘향이는 맨발로 무대를 벗어납니다. 앞서 말한, 좋은 구두와 좋은 목적지의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언니들,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이를테면 <꽃보다 남자>의 한채영)… 그렇대도 말입니다, 멋지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가는 데보다, 춘향이가 맨발로 씩씩하게 걸어갈 무대 뒤 어딘가가 훨씬 더 재미있는 길일 것 같다는 짐작은 감히 좀 해도 되겠습니까?

 

***사진제공_극단 성북동 비둘기

필자_김송요 소개_느낄 수 있는 모든 것에 호기심도 애정도 욕심도 많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혹해 대학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습니다. 꾸준히 감각의 그릇을 키워서 넉넉한 감정을, 이야기를 고봉으로 담아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