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싸이키델릭 팩토리- 꿈의 설계도 @벨로쥬

2013. 4. 17. 10:45Review

 

싸이키델릭 팩토리- 꿈의 설계도 @벨로쥬 

꿈을 완성하다!

 

글_나그네

어릴 적에 1년 열두 달을 계절 별로 나누어보고는 했다.

6월부터 8월까진 여름, 9월부터 11월까진 가을, 12월부터 2월까진 겨울, 그리고 3월부터 5월까진 봄_

지금은 4월. 어릴 적 만들곤 했던 계절력에 따르면 지금은 봄의 한가운데에 있어야 하는 때인데, 아직도 아침과 저녁으론 바깥 공기가 쌀쌀하다. 봄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 상심하는 우리들을 달래기라도 하는 듯, 그 날은 봄비가 내렸다. 이 봄비가 내리고 나면 세상에 나와도 되는건지 아직은 아닌건지 헷갈려 하던 꽃들도 한둘씩 얼굴을 내밀겠지, 하는 들뜬 마음에 내리는 비와 찹찹한 공기 마저도 봄의 잔치로 느껴진 4월의 한 토요일. 싸이키델릭 팩토리의 여섯 번째 공연을 보러 카페 벨로주에 다녀왔다.

'풍경에 흐르는 음악'이라는 타이틀로 일상의 풍경에서 들리는 음악들을 사진으로 보여주려는 사진전이 기획되어 있었는데, 우천으로 인해 취소되었다는 소식은 비가 오는 것을 마냥 좋아하던 마음에 살짝 아쉬움을 더해주었다. 그렇지만 애정하는 네 팀의 공연을 한날 한 공연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봄비가 흐르는 행복한 토요일 밤을 보내기엔 충분했다.

 

 

첫 팀은 「오마쥬(Hommage)」

칵스의 기타리스트 이수륜이 몸 담고 있는 또 하나의 팀으로, 뛰어난 연주력을 지닌 네 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예전부터 오마쥬의 공연을 한번 보러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미뤄오다가 이 날 처음 보게 되었는데 칵스의 이수륜과, 솔로 앨범에서의 이수륜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그의 놀라울 정도로 폭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이 감탄스러웠다. 이 팀을 보면서 느낀 점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묘사를 해보자면, 네 마리의 용이 함께 하늘로 승천하고 있는데, 초반에는 푸른 용이 앞섰다가, 그 다음에는 붉은 용이 앞섰다가, 그렇게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며 끝도 없이 치솟다가 마지막엔 네 마리가 서로 엉키고 엉켜 하나의 거대한 용이 되어 불을 내뿜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각자의 연주력과 화려한 개인기로 무대 위에서 서로 불꽃을 튀기며 부딪치는데, 그 불꽃이 서로의 불꽃을 결코 꺼트리지 않고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명 한명이 저마다의 불꽃을 강렬하게 피워낸 후, 하나가 되어 에너지를 폭발시킬 때의 모습은 마치 오르가즘에 다다른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 만큼 그들의 음악은 강렬했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섹시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섹시한 밴드, 라는 칭호가 잘 어울리는 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마쥬의 강렬한 사운드가 헤집고 지나간 무대에 뒤이어 올라온 「이랑 밴드」

"아침과 쏜애플과 오마쥬의 여성팬 여러분, 반갑습니다." 라며 여성팬이 압도적으로 많은 공연장이 어색한지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이랑이 너무 귀여웠다. 이번 공연이 참 좋았던 이유는, 네 팀의 색깔이 너무도 분명했다는 것이다. 노래를 듣다보면 "어 이 노래 어디에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노래도 있을 수가 있는데 이 네 팀의 경우는 다른 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듯한 그들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고, 또 그 넷의 개성도 가지각색이라 영감이 넘쳐흐르는 네 편의 단편 영화를 연달아 보고 온 듯한 느낌이었다.

이랑은 어쿠스틱 셋과 청량한 목소리로 정말 '깨끗하고 담백한' 무대를 꾸며 주었는데, 내가 여태껏 들어 본 목소리 중 가장 곧고 맑은 음색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어린이 합창 대회에서 1등을 거머쥔 소녀와 같은, 그런 청량함과 순수함을 이랑은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에 당황하면서도 기분 좋아하던 그녀의 소녀스러움 역시 이런 순수함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지 않았나 싶다.

 

 

오마쥬와 이랑이 가진 두 가지의 전혀 다른 분위기는 무채색이던 공연장에 '붉은색'와 '녹색'의 색을 칠해주었고, '무지개색'을 더해주기 위해 무대에 오른 다음 팀 「아침」

아침의 음악에는 일곱 가지의 색이 모두 들어있는 듯, 알록달록하다. 이 멜로디 다음에는 보통 저런 멜로디가 이어지던데- 와 같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멜로디가 이어진다던지, 제목만 보고 이런 내용의 가사가 붙여 있지 않을까- 하고 예상한 바와는 전혀 다른 가사가 흐른다던지 하는, '예측 불가능한' 음악을 한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은, 그들의 무대 매너에도 오롯이 드러난다. 생뚱맞은 멘트를 하여 관객들을 뒤집어 놓기도 하고, 갑자기 오묘한 춤사위를 벌여 공연장을 더욱 더 달구기도 한다.

이 날의 아침 역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무지개색 그 자체였다. 싸이키델릭 팩토리가 기획한 공연에 쏜애플과 함께 세 번째로 함께 하게 된 단골 손님인 만큼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주었다. 쏟아지는 앵콜 세례에 끊어진 기타를 붙잡고 '기타 핸드싱크'를 선보인 마지막까지 예측 불가능한 권선욱 씨의 퍼포먼스는 과연 최고였다.

 

 

그리고 드디어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건 「쏜애플」

사실 쏜애플의 음악은 비오는 날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그런 만큼 쏜애플이 공연하는 날에는 비가 오는 일이 많았다. 이 날도 역시나 비가 오는 날 공연을 하게 되어 스스로를 '기우제 밴드'라고 칭하는 이들은 공연장에 조금 남은 무채색을 파란색 혹은 주황색과 같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색을 동원하여 덮어주었다. 현재 나와 있는 음반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신곡들부터, 비 오는 날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곡인 '아가미'까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이유'를 3시간 30분이라는 긴 공연의 끄트머리에 듣게 되어 공연의 여운이 더욱 길게 남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 보컬 윤성현 씨의 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매번 지금 하는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라는 생각으로 공연에 임한다고. 이들의 공연을 볼 때마다 이 말이 너무도 와닿는다. 늘 같은 마음 같은 상태로 공연을 보러 가는 나와는 달리, 그들의 열정은 그때 그때 조금씩 더 강렬해져 있다. 곡에 흠뻑 빠져들어 그 느낌을 노래와 연주만이 아닌 눈빛으로, 호흡으로, 이마와 목을 타고 한 줄기씩 흘러내리고 있는 땀방울로 그렇게 온 몸으로 전하는 그들 덕분에 듣는 이들 역시 그들의 아우라에 하나가 되어 곡의 느낌을 만들어나간다. 바깥에는 아직도 무채색의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공연장 안은 형형색색의 색이 흐르고 있었다. 군입대로 인한 기나긴 공백을 뒤로 하고, 활발한 음악 활동을 보여주며 이렇게 멋지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 젊은 밴드가 너무도 멋지다.

3시간 반 동안 수면 마취에라도 빠져 있었던 듯, 롤러코스터를 타고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고 나니 정신이 몽롱하였다. 차가운 바람을 코로 들이마시며 빗방울이 우산에 토도독 거리며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기나긴 꿈에서 깨어난 듯하였다. 그리고 "아, 이래서 이 공연의 이름이 싸이키델릭 팩토리(psychedelic factory, 환각의 공장)구나" 하고 깨달았다. 언젠가 무채색의 현실로부터 마음이 땅 끝에 떨어지는 날이 오면, 꼭 다시 알록달록한 꿈을 꾸러 그 공장에 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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