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민영 개인전 <The night was young>

2019. 1. 4. 01:39Review


Silent night, holy night. All is calm, all is bright.

김민영 개인전 <The night was young> 

@플레이스막 

 글_예쁜사람


그 밤이 어째서 어렸을까? 이런 질문은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린 데에 이유가 있을 리 없잖아요. 산 지 얼마 안 되었으면 어린 것이죠. 어쩌다 어려질 수는 없습니다. 그 밤은 어렸습니다. 전시장은 유독 조용했습니다. 영상들에도 소리가 없었거든요. ‘동화 같다기괴하다모두 이곳의 이미지들에 붙일 수 있는 말들이겠지만, 이들은 동화의 원래 버전이라고들 말하는 어른동화 같은 잔인한 종류는 아닙니다. 심지어 그 움직이는 그림들과 삽화들은 정열적이지도, 아주 침울하지도 않아요. 그런 삽화들이 모여있는 전시장은 차분하고 약간은 명랑하기도 한, 그저 고요한 밤 같아요. 유명한 캐롤이죠.

Silent night, holy night. All is calm, all is bright.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The night was young.

그 밤은 어렸습니다.

전시의 제목인 문장을 위의 노랫말 뒤에 붙여보았습니다. 애초에 그러려고 저 노래가 떠올랐던 것처럼,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이 문장은 늘 그랬듯이, 마치 습관처럼 매일 내려오는 밤의 어둠 같아요. 역사가 없거든요. 그래서 이 문장은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질문도 허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사건의 시작이 될 뿐이지요. 제가 임의로 노랫말에 붙여보긴 했지만, 전시장을 채우고 있는 드로잉들을 모은 설화모음집 같은 것이 있다면 그 첫 장이 저렇게 시작할 것 같았습니다. 슬프기도 하지만, 있는 모든 것들은 calm평온하고 bright밝은 상태인, 첫 장입니다. 그리고 그 밤은 어렸습니다. 전시장의 네 개의 방에 전시되었던 작품들은 이 첫 장의 뒤에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일 것 같습니다. 

[남겨진 것들, 혼합재료, 2018]


남겨진 것들이라는 이름이 붙은 방에 들어갔습니다. 드로잉들이 잔뜩 붙어있는 방입니다. 대부분 흰 바탕에 이미지와 글자들이 떠다닙니다. 흰 종이가 아니어도 벽이 흰 색이라 결국 흰 바탕입니다. 간단해보이지만 뭐라 하나로 묶기 어려운 내용들의 온갖 드로잉들이 모여있어요. 그렇다고 아예 일관성이 없지도 않고 말이죠. 방의 세 벽 중에 두 벽이 그림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단면의 생각들도 있고, 찢겨진 생각, 여러 층 겹쳐있는 생각들도 있고, 이어지는 생각들도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머릿속에 들어온 것처럼 갑갑해졌습니다.

같은 방의 오른쪽 다소 널널한 벽에는 액자 안에 있는 드로잉들이 벽에 걸려있습니다. 가장 처음 보이는 작은 액자에는 흰 강아지가 묘 속에 들어가있는 그림과 함께 메리야 보고 싶어비슷한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처음에 갔을 때는 사진도 안 찍어두었던 그 그림이 글을 쓰려니 생각나네요. 이 방의 주인이 소중히 남겨둔 마음인가보다 생각했던 기억도 납니다. 조금 더 나에게서 벗어난 것 같은, 그런 벽입니다. 마음에 한 곳 비워둔 게 아니라 마음 벽 하나를 몽땅 비워서 나의 나머지 온갖 생각들이 닿지도 못하게 할 만큼 소중한 것 있잖아요. 나머지 벽들은 꽉 찬 생각들 때문에 바쁘고 피곤하지만, 이쪽 벽 하나를 몽땅 내어주는 여유가 그래도 이 방에 있습니다. 내게 남은 것은 액자에 담은 마음뿐이더라도 말입니다.

[눈알섬, 혼합재료, 2018]


[The weird dream, 단채널 영상, 2017]


전시장의 홀에는 ‘The weird dream’이라는 짧은 영상이 재생되고 있습니다. 새부리를 가진 주인공이 거울나라로 들어가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라기엔 이야기 구조가 없어서, 그런 꿈 이야기라고 해야겠습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싶을 정도의 속도로 꿈이 진행됩니다. 꿈이 그렇잖아요. 주인공이 그림에서 먹칠되어 지워지기도 하고, 계속해서 어딘지 모를 시커먼 곳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누군가 등장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 같지만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고, 다른 인물이 등장하고 그 사이드 이펙트라고 해야할지, 그 뒤의 작은 결과들은 보입니다. 예를 들면 벌이 등장하고 벌에게 쏘이지는 않았지만 얼굴에 붉은 반점들이 잔뜩 생기는 장면이 있어요. 영문도 모른채 그냥 효과만을 얻게 되고, 출구인 줄 알았지만 출구가 아니었고, 꽃송이 속으로도 들어가고 결국은 OFF LIMITS로 마무리되는 꿈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설명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봐도 모르겠는데,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어요. 그냥 꿈인 거죠. 도대체 마음의 방에서도 꿈에서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는 남겨진 것들을 보고, 모래 위에 남은 눈알과 찌꺼기들이 양촛불에 비루어지고 거울나라 속에서도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과들은 보게 됩니다. 밤이 그런 것일까요? 모래밭의 눈들이 낮에는 해의 방향을 따라 각자 빛을 반짝일텐데, 밤에는 촛불에 의지한 초점없는 눈알들이 되어 자기들끼리의 부락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어리다는 게 그런 걸까요? , 좌우지간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 거요. 그런데 그 밤이 어렸던 거죠.

 이 이야기들이 시작했던 그 한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수많은 이야기들, 더 일차적으로는 그 이야기라는 사건의 시작에 그 한 문장들이 있을 겁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하는 작업들은 결국은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문장이 ‘The night was young’처럼 아리송한 것일 수도, 명료한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이 만든 문장일 수도 있지만 세상에 떠도는 문장일 수도 있고, 세상에 떠도는 것도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닌, 그냥 자신에게 어찌저찌 생겨버린 문장일 수도 있겠죠. 이 문장이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는 근본을 따지는 일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 문장이 있어서, 나에게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그 문장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이 문장들의 징한 부분이죠.

저는 The night was young이라는 문장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의 문장도 모르는데 남의 문장을 제가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 The night was young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저 떠다니는 이미지들 속에서 그 문장을 모든 것의 시작으로 잡아볼 뿐입니다. 나의 문장이 뭐라고 말할 필요는 있을까요. 그것을 재료삼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정리의 시간을 보내는 일을 하는 예술가가 아닌 이상,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남의 문장에서 나의 생각들을 더듬어보는 것도 해보면 좋을 일 정도이지 그럴 필요 있을까요. The night was young에서 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어떤 이야기들일지, 남의 이야기의 첫 장을 각자의 방식으로 입 안에 굴려보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면 그게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갑자기 뭔 헛소리냐면요, 해피 뉴 이어라는 말입니다. 


*플레이스막 웹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placemak.com/Laser_cu_exhibition?fbclid=IwAR2tqevmNwQQ_KlCycB2oetO5L5ah2I9YqmzOissvqD7W65OAKM-ABB5cwc

 

필자_예쁜 사람 

소개_체력은 나쁘지 않으나 생각이 주로 불순하고 복잡하며 꿈을 하나씩 지우다 못해 독립의 꿈조차 (포기가 아니라)꾸지 않고 빌붙기에만 점점 능해지는 잡스럽고 쿨하지 못한 고양이 키우는 사람.


THE NIGHT WAS YOUNG / 김민영 / animation,drawing / 2018. 12. 14 - 12. 28 

분절된 신체, 요정도 새도 아닌 생물들, 전형적인 마녀의 얼굴. 작가 김민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짧게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들은 한 화면에 한 명만 등장하지 않으며 늘 다른 누군가와 함께 존재한다. 또한 꿈(대부분 악몽으로 추측되는)같은 풍경 속에서 알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 묘한 말을 내뱉기도 한다. 가느다란 펜으로 그려진 그들은 그래서 어딘가 불완전하고, 약해보이며, 망가진 인형처럼 어색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들은 표정이 있지만 표정이 없다. 웃고 있지만 웃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자 신의 작품을 정의하는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보다 등장인물들의 텅 빈 눈이 가진 공허함에 더 끌린다. 생기 없는 검은 눈, 웃지도 울지도 않는 모호한 입꼬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의 기이함을 극대화시키며 멜랑콜릭한 감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작가는 마치 자동기술법을 사용하듯 종이에 무수한 드로잉을 그려낸다. 종종 그들은 애니 메이션이라는 장치를 통해 움직이기도 한다. 나와 부딪히는 것들, 즉 타인 혹은 사회에 자리한 편견과 날선 말에서 시작되어 그려진 드로잉들은 작가의 내면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감정들을 대신한다김미정 

*내용출처_플레이스막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