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큐멘터리 영화<어른이 되면>

2019. 1. 4. 02:49Review


당신이 충분히 늙을 때까지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

_김민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면 세계는 사라진다. 까만 세상이 온다. 그러나 막지 못한 소리는 여전하다. 수많은 요구가 세어 들어온다. 간단히 자취를 감출 수는 없다. 중증발달장애인 혜정은 가끔 숨고 싶다. 사회는 잠시를 허락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시설로 보내졌다가 18년 만에 사회로 돌아온 혜정은 알아가야 할 것도, 증명해야 할 것도 많다. 어떤 날에는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또 다른 날에는 할 수 없음을 보여줘야 한다. <어른이 되면>은 혜정과 혜영 그리고 친구들이 함께 살아낸 얼마간의 기록이다.

 혜정은 좋아하는 게 많다. 트로트와 디즈니의 OST를 좋아한다. 음악이 있다면 어디든 무대가 된다. 매일 한 잔씩 아메리카노도 마셔야 한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잠이 오지 않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기회가 될 때면 믹스 커피 봉지를 뜯어 한입에 털어 넣기도 한다. 스티커 사진은 매일 찍어도 또 찍고 싶다.

언니 혜영은 혜정에게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혜정이 하고 싶어 하는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일러주고, 어떤 일들은 유예해야 한다. 혜정의 방 정리를 시키는 일부터 하루 마실 수 있는 커피를 제한하는 일, 사람들과 대화할 때의 태도까지 많은 것들을 청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혜정은 혜영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 거 같다. 그럼에도 혜영은 혜정에게 바라는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사회는 책임을 요구하고, 혜영은 혜정이 다시 사회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혜정과 혜영은 노력한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수업을 듣고,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활동보조 등급심사를 받는다. 혜영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증명하는 짧은 과정을 통해 이들에게 한 달 94시간의 활동 보조 시간이 주어졌다. 이 시간을 통해서 혜정에게 필요한 활동을 보조할 사람들의 급여를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다큐멘터리가 지속되는 동안 보조인을 구하지 못한다. 중증발달장애인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혜영은 혜정을 시설에서 사회로 데리고 나오기로 마음먹고, 당분간은 나의 시간이 아닌 혜정이 언니의 시간을 살기로 다짐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살기 위해서는 돌봄이 필요하다. 돌봄은 일방적으로 향하는 시간이 아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시간이다. 혜영이 집 밖의 시간을 살아갈 때도 한켠에는 항상 동생 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함께 돌봐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사회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온전한 자리를 내어준다면 혜영과 혜정은 분리된 시간 속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이들의 이야기가 지속되면서 등장하는 노래가 있다. 혜영이 부른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이다. 보통 살아가면서 노화를 두려워하기는 하지만,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지는 않는다. 가사 속에서 혜정은 누군가를 해를 가하거나 굶지 않으면서 혜영과 함께 늙고 싶다는 소망을 노래한다. 지금과 같이 개인과 가족에게 장애인 돌봄에 대한 책임을 돌리는 구조에서 이 노래는 구조 신호로 들린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중간중간 등장한다. 촬영감독과 혜정의 동생이자 음악 교사, 촬영을 돕는 이들이 나와 혜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은 단순히 영화를 같이 찍은 스태프들이 아니다. 혜영의 돌봄을 나누고, 혜정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료들이다. 사회 대신 혜영 주변의 공동체가 돌봄을 책임지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이러한 관계망은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크게 구분되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시절을 살아가는 친구들이다. 혜영은 혜정이 시설로 보내질 시기에 엄마에게 돌봄을 나눌 친구들이 있었다면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질문한다. 1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회는 돌봄에 대해 냉담하다.

혜정에게 주변 어른들은 어른이 되면할 수 있다며 많은 것들을 유예해왔다. 둘 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어떤 일들은 미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일까? 혹은 두 성인을 어른으로서 대우해주지 못하는 사회가 자라지 못한 것인지는 질문으로 남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돌봄은 특수한 것이 아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가족으로서 오래 살아가기 위해 적절한 방식의 돌봄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돌봄이 필요하다. 함께 하는 노년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까맣다. 

수많은 질문이 이어지는 초반부와 다르게 다큐멘터리의 후반부에는 혜정의 행복해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혜영 없이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춤출 때와는 다르게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 되어 신나게 춤을 춘다.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파티에서 부단히 연습한 노래를 자유롭게 부른다. 다큐멘터리는 한 번도 자신들의 상황을 읍소하지 않는다. 대체로 유쾌하고, 가끔 못마땅한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불안정의 안정이 지금 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다.

책임을 거부하는 사회에서 <어른이 되면>은 개인이 일군 공동체의 성공을 보여준다. 혜영이라는 개인에서 시작했지만, 주변 사람들과 연대해서 만들어낸 영화이자 시간이다. 혜정은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시설로 향했지만, 혜영의 지지와 함께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남고 있다. 언젠가 울고 싶은 날도 있겠지만, 오늘도 이들은 무던히 살아가고 있다.

혜정이 더 이상 지워내고 싶은 세계가 없기를 바란다. 혜영의 두 개의 시간이 균형 잡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문득 사라지는 일이 없는 세상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사진출처_네이버 영화 

 필자_김민범 

 소개_열심히 읽고 꾸준히 씁니다


감독 장혜영 JANG Hye Yeong

각본 장혜영 JANG Hye Yeong

제작 장혜영 JANG Hye Yeong

촬영 윤정민 (촬영) 장혜영 JANG Hye Yeong (촬영) 이은경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