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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실패를 빙자한 모험의 기록 : 구루부 구루마의 집 가는 길
실패를 빙자한 모험의 기록 : 구루부 구루마의 집 가는 길 @ 경의선공유지-만유인력 김민수 퇴근 시간의 아현동,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많이도 지나가고 있다. 국제주의 양식의 묵직한 빌딩들 사이로 교통체증이 막 시작되는 저녁이었다. 어디선가 쿵짝거리는 음악이 나오고, 총천연색의 페인트가 오히려 남루한 느낌을 주는 수레를 발견한다. 수레에는 장국영 배우의 얼굴이 나온 포스터가 바람에 반쯤 접힌 채 붙어있다. 수레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노란 헬멧에 빨간 바지를 입은 남자가 혼자 춤을 춘다. 이내 수레를 끌고 그는 행진을 이어간다. 팔을 들어 앞뒤로 흔든다. 그것은 춤 같기도, 어떤 투쟁 현장에서 구호를 외치며 앞으로 던지는 주먹 같기도 하다.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다. 익명의 짧은 시선들만이 그를 지나친다...
2020.04.16 -
[리뷰] <Streaming Scenery> 빌린 풍경의 값
빌린 풍경의 값 'Streaming Scenery : 홀로 있는 시간들' 리뷰 글_김세현 나름대로 인상적인 공연은 많다. 세련된 전시도 적지 않다. 하지만 만큼 충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를 따라 한 시간 남짓 머무르는 공간은 어느덧 어떤 공간에서, 나만의 그리고 우리의 ‘그곳’이 되어간다. 때로는 가장 내밀한 침실이기도, 고요한 명상의 방이기도, 하릴없이 거니는 마당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자유롭게 발을 구르며 춤을 추는 무대였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는 덧없이 흐르는 시간의 강물에 비친 내 모습을 불현듯 마주하게 되는 순간. 그리고 그런 순간이 조밀히 쌓여 일구어진 ‘홀로 있는 시간들’이다. 는 네 가지 경景, 차경借景, 장경場景, 자경自景, 취경聚景으로 엮어낸 무엇이다. 풍경을 바라본다는 점..
2020.03.12 -
[리뷰] 편지로 실험하는 애국적 광기 : 丙 소사이어티의 <Patriotic Insanity>를 중심으로
편지로 실험하는 애국적 광기 : 丙 소사이어티의 를 중심으로 丙 소사이어티의 'Patriotic Insanity : 애국적 광분' @242 글_조혜인 丙 소사이어티(이하: 병소)는 연출가 송이원을 중심으로 모인 공연창작집단이다. 병소는 갑(甲), 을(乙), 병(丙)의 위계관계에서 ‘병(丙)’이 되기를 자처하며 그 위계관계를 전복하고, 병(病)스러운 사회에 대항하여 병(丙)적인 이야기를 함으로서 마이너리티에 대한 지향을 드러낸다. 이러한 병소가 꾸준히 타겟(target)해온 작업의 화두는 ‘신토불이(身土不二)’다. 몸과 땅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신토불이 연작은 (2018)을 시작으로, 지난 여름 제19회 서울변방연극제의 (2019)을 뒤이어 반년이 흐른 겨울, 본 공연 로 나아갔다. 그렇다면 본..
2019.12.20 -
[리뷰] 개념과 제도의 덫 사이에서 <여름과 연기>
개념과 제도의 덫 사이에서 '시장극장'의 이머시브 씨어터 @영도시장 글_채민 전통시장의 구조를 무대로 삼은 ‘시장극장’의 는 공간의 연출이 돋보였다. 알마와 존의 어린시절을 보여주는 프롤로그는 이층에서 시작된다. 곧이어 동일한 건물의 일층에서 성인이 된 존이 달려나온다. 프롤로그 장면과의 실제적 거리감은 극 중 시간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알마와 존의 재회 후에 관객은 두 무리로 나뉘어 주인공 중 한 명을 선택한다. 나는 시장골목을 지나 도착한 어느 점포안으로 들어가는 알마의 뒤를 따라갔다. 배우와 넓은 창을 사이에 두고 관객은 밖에 서서 장면을 지켜본다. 공간은 알마를 둘러싼 환경을 은유한다. 시멘트로 된 방에 갓전등 하나가 건조하게 달려있다. 마치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는 알마가 자신의 내면을 ..
2019.12.05 -
[리뷰] 미정의 관계가 만들어낸 소통의 방식 <켜켜이 쌓인 나는 거짓말이다>
미정의 관계가 만들어낸 소통의 방식 : 2019 팜파피플 결과보고릴레이 김지은X정경인, 소리채집프로젝트 @플랫폼 팜파 글_성수연 팜파로 가는 길은 미정의 상태에서 오는 설렘과 긴장으로 두근거린다. 공연과 전시를 기획하고 창작자들에게 공간을 지원해주는 창작 플랫폼인 팜파는 연희동에 위치한 2층 집이다. 팜파의 기획자와 그의 가족이 살며 생활하는 거실, 부엌과 욕실 등 집 전체를 창작자들이 공연·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내어주고 있다. 가정집이자 공연·전시 공간이라는 팜파의 이중적 정체성 때문에 팜파에서 작업을 하는 창작자들은 먼저 공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에 따라 작업은 자연스럽게 텍스트나 퍼포머 중심이기 보다 공간에서 시작된다. 팜파를 찾는 관객이 두근거리는 이유 또한 이 때..
2019.11.18 -
[리뷰] 서울 시민 되기, 그 불가능한 연습 <아이 서울 유, 데이 서울 미>
서울 시민 되기, 그 불가능한 연습 - 서울거리예술축제 @서울도서관, 서울광장 글_김민조 (연극평론가) 2015년부터 사용된 서울시의 브랜드 ‘아이. 서울. 유(I. SEOUL. U)’는 이른바 3세대형 도시브랜드라 불린다. 하나의 도시 이미지를 강조하는 1, 2세대 브랜드의 한계를 넘어 ‘비 베를린(be berlin)’, ‘아이 암스테르담(I amsterdam)’, ‘앤드 도쿄(&TOKYO)처럼 해석의 개방성을 추구하는 것이 3세대형 도시브랜드의 특징으로 설명된다. 시민들 각자가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첨작하는 열린 브랜드를 지향한다는 것이다.1) 나와 너 사이에 술어의 형태로 삽입되어 있는 고유명사 ’서울‘은 그것을 발화하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대관해준다. 그러나 그 의미의 윤곽은 내가, 너에게 무..
2019.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