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enbob(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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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실용서로 읽다
눈먼 희망의 시대 -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실용서로 읽다 글_김종우 1. 들어가기 한병철의 ‘피로사회’에서는 이 시대를 ‘긍정성 과잉’의 시대라고 정의한다. 긍정성 과잉의 시대란 더 이상 ‘무엇무엇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부정적 규율사회가 아니라, 스스로 ‘무엇무엇 해야 한다’고 믿게 만드는 긍정적 ‘성과사회’다. 한병철은 책에서 이 시대를 그렇게 정의한 뒤, 그런 사회에서는 주체가 ‘자기 착취’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
2012.11.15 -
[리뷰] 유랑축제 <숨겨진 시간들>
유랑축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도시의 바퀴벌레 그리고 예술가" 글_스카링 이런 수상한 축제를 보았나. 싸늘한 가을바람이 맴도는 도심 속을 정처 없이 떠도는 축제라니. 게다가 혐오라는 낙인을 달고 사는 바퀴벌레를 찾아다니며 소탕하는 임무라니. 이것도 모자라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을 곳곳에 숨겨 놓았단다. 지인들과 와도 낯설었을 텐데, 혼자 온 관객은 오죽했으랴. 그 1인 관객 중 하나인 나, 서울토박이는 익숙하다 싶은 공간에서 그만 숨이 막힐 뻔 했다. 축제에서 나눠 준 마스크를 내내 쓰고 다닌 탓도 있었으나 이를 넘어 묵직하면서도 뚝뚝 끊기는, 동시에 낚싯줄로 이어놓은 축제 현장-서울 혜화동 대학로-은 낯설어도 너무 낯설었다. 아무튼 축제란 참으로 신비롭다. 누군가가 즐기자고 모이면 힘이 ..
2012.11.13 -
[리뷰] 무릎 위에 놓인 욕망 - 극단 성북동비둘기 헤다 가블러
무릎 위에 놓인 욕망 글_지혜로운 늑대의 전사 산부인과 의자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본 기억은 많은 여자들에게 생생한 감각으로 새겨진다. 임신이나 출산, 낙태와 아무런 관련 없이도 한 여자가 그 의자에 앉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의심하는 대부분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는 일로부터, 감각의 여정은 시작된다. 예컨대 대기실에 들어설 때 그 시선들이 몸에 와 박히던 짜릿한 감각을 여자는 일평생 기억한다. 이어 몸을 뉘인 의자가 들어올려지는 감각, 차가운 검사 장치가 벌린 다리 사이를 헤집는 감각, 그 기계가 몸속에 들어왔다 쑥 하고 빠져나가는 감각도 여자는 잊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가진 먼 훗날, 행복한 마음으로 그 의자에 앉을 때에도 그녀의 다리는 그 감각들을 기억하며 벌어지리라..
2012.11.12 -
[리뷰] "모이다展" - 누구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만드는 곳
누구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만드는 곳 "모이다展" 글_성지은 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작게나마 글을 써서 먹고 살고 있고, 앞으로도 아마 꽤 오랜 시간동안 글 때문에 울고 웃으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글만 쓰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 주었던 십 여년 전 미술학원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아직도 제 책상 위에는 색연필, 파스텔, 연습장 등 자잘한 그림도구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타를 치기도 합니다. 비록 음악에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달아 버렸지만, 아직도 밴드를 만들어 무대에 서는 상상을 해 봅니다. 누구나 이렇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무언가를 만들어냅니다. 트위터의 140자 안에 온..
2012.11.10 -
[소개] 네번째 언리미티드 에디션 201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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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극단 성북동 비둘기 <헤다 가블러> 헤다 가블러가 피아노를 치던 그 때
헤다 가블러가 피아노를 치던 그 때 극단 성북동비둘기 / 김현탁 연출 글_김해진 연극실험실 일상지하 입구의 커튼이 걷히자마자 눈에 보인 건 무대 한가운데 묶여있는 배우였다. 묶인 것은 여자. 마취됐거나 술에 취한 것처럼 보였다. 탈진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자는 가늘게 눈을 떴다가 힘없이 눈을 감았다. 나는 슬쩍 벌어진 다리 사이를 쳐다보게도 되었다. 자리에 앉아 일상 지하의 곳곳을 둘러보다가 뒤이어 들어오는 관객들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오늘은 이곳이 헤다 가블러가 묶여있는 실험실이거나 병원이라는 걸 곧 알 수 있을 터였다. 근처를 지나고 있을 아무나 붙잡고 이곳에 내려온다면 그 사람은 아마 깜짝 놀랄 거라고 공상을 해볼 정도로, 의자에 묶인 헤다는 무대 정중앙의 무척 대범하고 공격적인 위치에 앉아 ..
2012.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