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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감히 한 연극 올리니<삼일로창고극장 봉헌예배>
감히 한 연극 올리니쿵짝프로젝트 글_권혜린라니, 제목과 주보 형식의 티켓(이자 팸플릿)만 본다면 연극이 아니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희생제의’에서 시작하여 ‘축복기도’로 끝나는 11개의 예배 순서도 얼핏 보기에는 평범해 보인다. (물론 전복적인 부제가 바로 옆에 있어 함께 읽어야 즐거울 것이다.) 그럴싸한 패러디는 다소 도발적이고 불온할 연극을 마주하게 될 긴장감을 누그러뜨린다. 공연 안내에서 ‘공연 중 혐오 발언이나 공연 방해 행동 시 즉각 퇴장 조치합니다.’라는 문구를 보았던 터라 ‘설마’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입장하면 벽에 “하나님이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가 적혀 있고, 붉은색과 초록색 옷이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다만 ..
2019.01.04 -
[리뷰] 김민영 개인전 <The night was young>
Silent night, holy night. All is calm, all is bright.김민영 개인전 @플레이스막 글_예쁜사람 그 밤이 어째서 어렸을까? 이런 질문은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린 데에 이유가 있을 리 없잖아요. 산 지 얼마 안 되었으면 어린 것이죠. 어쩌다 어려질 수는 없습니다. 그 밤은 어렸습니다. 전시장은 유독 조용했습니다. 영상들에도 소리가 없었거든요. ‘동화 같다’나 ‘기괴하다’ 모두 이곳의 이미지들에 붙일 수 있는 말들이겠지만, 이들은 동화의 원래 버전이라고들 말하는 어른동화 같은 잔인한 종류는 아닙니다. 심지어 그 움직이는 그림들과 삽화들은 정열적이지도, 아주 침울하지도 않아요. 그런 삽화들이 모여있는 전시장은 차분하고 약간은 명랑하기도 한, 그저 고요한 밤 같아요...
2019.01.04 -
[리뷰] 한 줌 또는 한 움큼의 윤리 <혼마라비해?>
한 줌 또는 한 움큼의 윤리 극단 실한 글_권혜린 극단 실한의 는 뜻을 알 수 없는 제목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제목의 의미가 결말 부분에서 밝혀진다는 점에서 수수께끼 같지만 전체적인 의미를 잘 담았다. 미리 말하자면 ‘혼마’는 ‘진짜’라는 일본말, ‘라비’는 ‘좋다’는 라트비아어, ‘해’는 한국말로서 삼국의 언어가 섞인 것이다. ‘진짜 좋아해.’ 또는 ‘진짜 좋아해!’가 아닌 ‘진짜 좋아해?’가 제목이라는 것은, 즉 마침표나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가 붙어 있다는 것은 자이니치 문제의 해결이 아닌 유보 상태로 결말을 남겨 두었다는 것이며, 가능한 것은 현실적인 해결이 아닌 감정적인 해결뿐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게다가 감정적인 해결조차 쉽지 않음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다. 이는 그만큼 자이니치에 대..
2018.12.19 -
[리뷰] 배우 김신록의, 누군가 할 때까지 일단 나라도 한다. 연기비평 <러브스토리>
배우 김신록의 누군가 할 때까지 일단 나라도 한다 연기비평 ‘배우-작가’ 나경민, 성수연, 우범진이 써내려간, 크리에이티브 바키 @두산아트센터글_김신록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의 배우들은 자타 공히 ‘배우-작가’라 부를 만하다. 그간 만나 본 바키의 무대에는 누군가의 인터뷰 글, 녹취 음성, 책의 몇 구절, 노래 한 부분 등이 재료 그대로 무대에 오르기도 하고, 그 구성은 배우들뿐만 아니라 연출가와 드라마터그, 조연출 등이 함께 완성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재료들을 해설하고, 조각을 이어붙이는 말하기로 연결해 내는 것은 모두 배우들의 몫이다. 바키의 무대에서 발화되는, 바키의 공연 대본에 올라 와 있는 모든 대사는, ‘다른 프로덕션보다 월등히 긴’ 바키의 연습기간 내내 배우들이 무수히..
2018.12.01 -
[리뷰] 푸른색으로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푸른색으로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원작_김연수 소설 /제작_극단 애인 글 유혜영 붐비는 극장이 아니었던 탓에 나는 재빠르게 극장 문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하철역은 코앞이었고, 어느새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솔직히 시큰둥했습니다. 푸른색 볼펜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맘에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건 줄거리를 후루룩 이해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연극을 보면서 마음이 떨렸고 얼굴이 뜨거워져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푸른색으로 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연극은 소설보다 훨씬 말수가 적었고, 느렸고, 왠지 편안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시(詩)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극장의 사방이 검은색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아서 그랬던 건지, 대학로의..
2018.11.25 -
[리뷰] 김신록의, 누군가 할 때까지 일단 나라도 한다. 연기비평 <애들러와 깁>
김신록의 ‘누군가 할 때까지 일단 나라도 한다’, 연기비평 배우와 인물 사이, 존재의 층위에 대한 탐구손원정 번역, 연출 / 팀 크라우치 작 / 극단 코끼리만보 글_김신록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서 오늘날의 예술과 소비, 그리고 욕망의 관계를 질문하다.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 ‘팀 크라우치(Tim Crouch)’는 연극이 현실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해 꾸준히 탐색해왔다. 그는 최신작 에서, 연극 특유의 놀이성과 허구성을 이용해 현대인들이 예술과 예술가를 어떤 방식으로 소유하고, 소비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소위 ‘사실주의’ 연극의 현실 재현 방식이 허구적인 세계의 내부적인 의사소통만으로 완결되는 닫힌 세계를 지향한다면, 팀 크라우치 작/손원정 연출의 은 내부적으로 완결된 허구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열린 세계를 ..
2018.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