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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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8월 레터] 여기저기에서 본 것들
여기저기에서 본 것들 팔월에는 마음 먹은 대로 정동진독립영화제와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참여했습니다. 정동진이 올해로 20회, 프린지가 올해로 21회를 맞았으니 둘은 또래인 셈입니다. 독립예술이, 지역축제가 왕성하게 생겨나던 시기 만들어져 스무 번의 여름을 함께한 두 축제가 반갑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합니다. 정동진에서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스크린 너머로 기차가 지나가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 저편에선 바다 냄새가, 이편에선 쑥불 냄새가 나는 정동초등학교 교정에서 보내는 여름밤은 새로워도 익숙해도 좋습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와중 정동진에도 열대야가 찾아올까 걱정이 컸지만, 저녁이 되자 기적적으로 날씨가 선선해졌습니다. 에어스크린을 철수해야 하는 월요일 새벽 큰 비가..
2018.09.10 -
[인디언밥 7월 레터] 먼 곳이라는 말
먼 곳이라는 말 8월에는 정동진독립영화제와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있어 마음이 미리부터 들떴습니다. 그 전에 중국 시닝에서 열리는 퍼스트국제청년영화제에도 가기로 마음을 먹었던 차여서 긴 동선을 짰습니다. 지내고 있는 상하이에서 서른 시간 넘게 기차를 타야 갈 수 있는 시닝으로, 또 집에 가기 전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홍콩으로 건너 건너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티벳고원을 품고 있는 칭하이성의 성도 시닝에서 열리는 퍼스트국제청년영화제는 젊은 신인 감독들의 작품을 상영합니다. 자연스레 중국 국내와 해외의 독립영화를 다수 접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전 정보도 없이 SNS 공식채널을 팔로우해두고 영화제가 언제 열리는지, 티켓팅이 언제 시작되는지 딱 두 가지 정보만 알아둔 채로 기차표를 사고 숙소를 구하고 ..
2018.08.05 -
[인디언밥 6월 레터] 여름에 본 영화
여름에 본 영화 6월 중 열흘가량 열린 상하이국제영화제에 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상하이 곳곳 수십 군데의 극장에서 여러 국가에서 온, 신인부터 중견 감독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만든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저는 총 네 곳의 극장에서 와 4K 리마스터링 이렇게 여섯 편을 보았어요. 직접 예매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표를 사기도 하고, 친구가 예매했다가 가지 못하게 되어 넘겨준 표를 받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여성 감독의 신작 세 편, 일본 영화 두 편, 기존작 리마스터링 상영 한 편을 보게 되었지요. 는 전통적인 형식의 중매결혼으로 인해 독일로 이주하게 된 이란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영화는 언어의 장벽, 문화의 차이, (가깝고 먼) 관계의 부재로 인해 흔들리고 충돌하는 인물을 가..
2018.07.02 -
[인디언밥 5월 레터] 5월에 축제
오월에 축제 축제가 좋아요. 이 기간만 되면은 새삼스럽게 그래요. 5월의 달력을 보면서 안산국제거리극축제와 춘천마임축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갈 수 없다는 걸 생각하고 아쉬웠어요. 저는 오월의 세 군데 축제에서 모두 자원활동을 했어요. 이미 오래전 일이 된 첫 기억인데도, 이 계절만 되면은 바로 그 기억이 제게 꼭 거기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요. 그중에서도 월초에 있는 안산을 맨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안산은 축제 기간이 아닐 때의 안산과 여전히 닮은 데가 있어서, 오히려 그것이 매력이 되는 것 같아요. 번화가의 대로답게 아주 친숙한 사람들과 꽤나 낯선 사람들이 뒤섞여 있고, 위성도시답게 가족, 친구, 연인 같은 여러 분류의 사람들이 나란히 축제를 찾고, 그래서 산책 나온 개와 유..
2018.06.06 -
[인디언밥 4월 레터] 4월을, 4월에 기억하게 될 것들
4월을, 4월에 기억하게 될 것들 4월이 되자마자 초조함 비슷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매년 4월로 달력을 넘기기만 하면 그렇습니다. 4년 전부터 4월을 나는 것은 항상 그런 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정한 '날짜'의 존재라는 게 그런 것 같습니다. 입 밖으로 이야기를 공유하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들을 생각하고, 소리 높여 외쳐야 할 것과 직접 발로 뛰고 손을 내밀어야 할 곳을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은 일상의 실천이겠지만, 기억이 모조리 튀어나와 웅성거리는 날이 찾아온다는 건 아주 다른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물며 생일도 사람을 울적하고 심란하게 만들곤 하는 걸요. 4월 중순, 나흘 동안 중국의 무용가 원회가 진행하는 워크샵에 다녀왔습니다. 영상과 신체-동작을 결합하는 퍼포먼스, 구체적인 기억과 관련된 ..
2018.05.02 -
[인디언밥 3월 레터] 시절과 장소
시절과 장소 춘삼월이라더니 달이 바뀌자 정말 날이 풀렸습니다. 영영 풀린 것은 아니고 겨울이 기습하는 틈틈이 있기는 하지만, 또 따뜻한 기운이 햇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미세먼지 이불 아래서 오는 날들도 많기야 하지만, 그래도 얼추 봄이라고 불러줄 정도는 되었습니다. 삼월에는 익숙한 희곡이 무대에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중 첫번째는 였습니다. 원작 8막을 그대로 살려 긴 호흡으로 완성한 공연은 특별히 놀랍거나 새롭지는 않을지 몰라도 충실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소극장에서 무대전환을 하지 않고, 인물 세 사람이 가급적 백스테이지로 퇴장하지 않고 무대 위에서 목격자의 시선을 견지하면서 촘촘함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공연을 보고 나와 한참 마음 속을 자갈처럼 굴러다니던 것은 무대 위..
2018.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