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91)
-
[인디언밥 10월 레터]목소리가 들려
목소리가 들려 9월 상하이에서는 퀴어필름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저는 두 섹션을 관람했습니다. 한 번은 단편상영이었고 한 번은 장편상영이었는데, 단편은 영국문화원에서 상영됐고 장편은 레즈비언 바 ROXY에서 상영했습니다. 원래 단편 상영은 영국문화원이 아니라 더 전문적인 상영관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는데, 검열을 이유로 해당 공간에서의 상영이 취소되어 급히 장소를 변경하였다고 합니다. 여러 국가에서 온 여러 장르의 단편이 각자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를 외치고 속삭였습니다. 여러 편이 좋았지만 그중 캐나다로 이주한 아랍 성소수자 난민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들은 성매매와 성폭력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집안의 수치로 여겨지고 내쫓기기도 한다고 합니다. 캐나다에서..
2017.10.31 -
[인디언밥 9월 레터] 다른 데서 본 공연
다른 데서 본 공연 8월 말부터 잠시 저의 거처는 상하이가 되었습니다. 편의점 도시락과 포장해다 먹는 2위안—340원—짜리 찐빵으로 점심을 때우는 일과 사이사이로 공연을 많이 보았습니다. 바쁜 일을 제쳐두고 ‘편지에 적어야지’ 같은 변명을 혼잣말로 되뇌면서요. 첫 번째로 본 것은 한국과 동일한 프로덕션이 참여한 뮤지컬 였습니다. 공연이 열린 곳은 같이 간 친구들과 '아무리 여기가 뭐든 크고 번쩍이는 인민광장이라지만 이 건물은 그야말로 불시착한 UFO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휘황찬란한 상하이대극장이었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뮤지컬 스타가 캐스팅되었고 몇몇 팬들이 아이돌 콘서트장에서 착용하는 것과 같은, 불이 들어오는 머리띠를 착용하고 인증샷을 찍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연을 보고 나서 인상적이었던 ..
2017.09.30 -
[인디언밥 8월 레터] 기억하는 시간
기억하는 시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올해로 20회를 맞았다는 걸 아시나요? 지난 달 스무 돌을 맞아 준비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아카이브 전시에서 전시해설을 했습니다. 2012년 프린지에서 인디스트를 한 이후 때로는 인디언밥을 통해, 때로는 그냥 관객으로 프린지페스티벌을 찾았지만 이번 경험은 사뭇 달리 다가왔습니다. 구술사의 전달자로서, 또 다른 구술사의 발화자로서 관객을 맞이하는 것은 색다른 기분이었습니다. 해설을 위해 전해 듣고, 찾아보고, 되살려낸 많은 것은 고스란히 제 기억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중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1999년 프린지는 예술의전당에서 열렸습니다. 인천항에서부터 끌고 온 대형 선박을 앞마당에 정박해 두고, ‘전당’처럼 묵직굵직한 이름이 붙은 공간을 점거해 난장을 벌이겠다는..
2017.08.29 -
[인디언밥 7월 레터] 축제의 계절
축제의 계절 일 년 열두 달의 절반이 가고 어느덧 장마와 무더위, 그리고 축제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팔도 곳곳 별별 축제가 사시사철 성황이지만 그중에서도 7월엔 유독 많은 축제가 열리는 듯합니다. 축제 자체와 프로그램의 규모와 성격은 사뭇 다를지라도, 말하자면 모두 독립예술잔치는 아닐지언정 다양한 장르, 다양한 종류의 축제가 하루가 멀다하고 시작을 알립니다. 연극 축제만 해도 밀양, 거창, 통영에 서울에서는 변방연극제와 프린지페스티벌이 열립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여우락페스티벌, 미쟝센단편영화제, 상상마당의 음악영화제와 서울국제실험영화제, 충무로뮤지컬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만화축제, 시카프 등 독립, 기관, 상업, 지역 등 여러 분류로 나뉘기도 여러 부문에 걸쳐 있기도 한 축제들이 7월..
2017.07.06 -
[인디언밥 6월 레터] 준비하는 사람
준비하는 사람 5월 11일부터 6월 11일까지 시청각에서 열린 김동희 작가의 전시 의 지킴이를 했습니다. 전시를 관람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는 아주 간단하고 거칠게 말하자면 시청각이라는 공간 위에 새 틀을 씌운 형태의 전시입니다. 원래 있던 마루와 샷시, 계단과 옥상을 치우거나 그 위로 새것을 덮고 기존의 공간을 증축하거나 탈바꿈하거나 그 성질을 극대화하면서, 장소와 관계 특정성에 의한 의미와 감흥, 경험과 선험을 바탕으로 한 판단력, 몸의 근육과 감각의 요모조모를 불러냅니다. 그러기 위해서 희게 페인트칠된 목조 바닥과 가벽, 계단이 사용되었고 저는 그것들을 매일 청소하면서 한 달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번 편지는, 청소 일기입니다. 전시장의 문을 열기 전 조금 일찍 도착해 청소를 합니다. 어떤 날은 정..
2017.06.21 -
[인디언밥 5월 레터] 지갑 없이 걷기
지갑 없이 걷기 5월의 시작은 상하이에서 맞이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노동절은 큰 국경절 중 하나여서 노동절을 가운데로 3일 간의 휴일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더 오래 쉬었던 것이 줄어든 것인데, 여전히 학교 등에선 재량껏 일주일을 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메이데이 자체가 재량휴일인 서울에 있는 친구들은 이날 생각보다 많이 일하러 갔습니다. 노동절은 황금연휴의 ‘운 좋으면 옵션으로 쉬는’ 정도의 날이었던 것이지 그 자체로 황금연휴의 일원이 되기엔 부족한 까만날이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사람들이 휴가 때마다 그게 집에서 쉬는 것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는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럴 만한 시간이 평소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겠지요. 여행을 가기 전 여행책도 보고, 인터넷 ..
2017.05.16